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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58: 루크 필즈의 노숙자 임시 수용소 입소 허가를 기다리는 지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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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1-01 ㅣ No.1461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8) 루크 필즈의 ‘노숙자 임시 수용소 입소 허가를 기다리는 지원자들’


‘새로운 사태’ 산업화의 그늘,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빈민들

 

 

루크 필즈, ‘노숙자 임시 수용소 입소 허가를 기다리는 지원자들’(1874년).

 

 

비오 9세(재임 1846~1878) 교황 시절인 1870년. 이탈리아의 통일과 교황령의 종식, 그리고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교회는 지금까지 수 세기에 걸쳐 살아온 것과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교회다운 ‘제1차 바티칸 공의회’ 편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교황은 세속의 모든 영토를 잃게 되어 통치 기반이 사라졌지만, 그로 인해 이제 세계의 모든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영적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교회는 약자들과 동행하는 데 주력했고,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죽지 않고서는 부활할 수 없다’는 걸 교회 역사가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권력자의 길에서 돌아와 백성과 더불어 호흡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제 더는 ‘교황(敎皇)’이 아닌, 백성을 섬기는 교회의 어른 ‘교종(敎宗)’으로 20세기를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비오 9세 이후 레오 13세(재임 1878.2~1903)를 시작으로 교종이라는 칭호가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산업 사회, 비참한 도시환경과 인권 문제

 

지난 호에 이어 비오 9세 재임 말기부터 레오 13세 재임 초기 사회 현상에 좀 더 집중해 보기로 한다. 20세기 교종들의 사목 방향이 결정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등장한 ‘사회적 리얼리즘(Social Realism)’이라는 사실주의 회화의 한 분파를 통해 당시 사회 하층 계급 사람들의 열악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레오 13세의 「새로운 사태」를 예고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프랑스 대혁명을 앞두던 1760년경부터 혁명 정부에 의해 유럽 대륙이 아수라장이 되던 1820년 사이,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기술 혁신과 새로운 제조 공정으로 엄청난 변화가 준비되고 있었다. 이른바 세계 근대화의 촉매가 된 제1차 산업 혁명을 앞두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유럽 대륙에서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한 건 1800년대 중ㆍ후반기였고, 사회적, 경제적 변화의 거대한 물줄기였다.

 

산업 사회가 시작되면서 농촌 인구의 대규모 도시 유입으로 도시 환경은 말이 아니었다. 도시 행정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맞이한 인구 집중화 현상은 의·식·주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어디를 가나 악취가 심한 비위생적인 도시환경에 자본가들의 탐욕에 내몰린 공장 노동자들의 심각한 인권침해도 전혀 다른 차원의 사회 문제로 대두하기 시작했다. 남성 노동자는 물론 여성과 어린이 노동자까지 사회 발전에 가려진 인간의 비참한 삶의 현실로 결국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운동과 정치와 철학이 몰입하는 요인이 되었다. 노동자 계급과 사회 약자의 고단한 삶이 한 개인의 운명이나 불행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적 리얼리즘

 

이 시기에 이런 사회 문제를 그림으로 표현한 화가들이 있었다. 그것을 일컬어 ‘사회적 리얼리즘’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사회 현상을 있는 그대로 ‘리얼(real)하게’ 붓으로 표현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주의 회화와 같은 맥락에 있고, 실제로 유럽의 사실주의 회화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리얼리즘’을 ‘사실주의’와 약간 다르게 보는 것은 ‘리얼리즘’이 사회 문제에 집중하여 작가가 자신의 신념을 담아 표현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토양에서 성장한 자유주의 회화의 한 면을 보는 동시에 20세기 다양한 사회 문제를 예술로 표현했던 거대한 흐름의 시발점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밀레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농촌 사회에 치중했다면 오늘 소개하는 루크 필즈(Luke Fildes, 1843~1927)는 도시 빈민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작품은 판화로 제작되어 시사잡지에 실렸다. 이런 그림들이 영국에서 많이 나온 것은 당시 자본주의 발전을 선도했던 영국의 현실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자유방임주의 원칙에 따라서 자본가들은 노동자 계급을 무제한 착취했고,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과 생활 수준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글이나 훗날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글에서 보듯이 말이 아니었다. 열악한 주거 시설, 비위생적인 상하수도와 환경, 빈곤과 기아에 시달리며 살인적인 노동량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질병도 만연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시기에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그런 런던의 현실 속에서 「자본(Das Kapital)」(1867년, 1885년, 1894년)을 집필하고 있었다.

 

소개하는 작품 루크 필즈의 ‘노숙자 임시 수용소 입소 허가를 기다리는 지원자들’은 원래 1869년 12월 4일 자 「더 그래픽(The Graphic)」 삽화 신문 첫 호에 ‘노숙자와 배고픔(Homeless and Hungry)’이라는 제목으로 싣고자 판화로 제작되었다가, 「선데이」 「콘힐」 「젠틀맨」과 같은 다른 정기 간행물에 실리면서 유화로 다시 제작한 것이다. 필즈의 대부분 작품과 마찬가지로 그림을 통해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만큼, 분위기는 무겁다. 작품이 단순하고, 인물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동시에 불결하고 절망적인 부분이 많다는 평을 받았다.

 

 

영국 출신 화가이자 삽화가

 

루크 필즈는 영국 리버풀 출신의 화가며 삽화가다. 워링턴 미술학교, 사우스 켄싱턴 미술학교를 거치며, 프랭크 홀과 휴버트 폰 허코머를 만났다. 세 사람은 1870년대 영국의 사회 현실주의 운동을 주도하던 프레데릭 워커의 영향을 받아 영국 사회를 조명하는 ‘사회적 리얼리즘’ 삽화들을 여러 시사잡지에 실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어릴 때부터 신앙심 깊었던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조건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래서 그가 처음 사회생활을 한 것도, 사회 개혁가며 「더 그래픽」 신문 발행인 루손의 요청으로 그의 신문에 사회 문제를 다룬 삽화를 싣는 일이었다.

 

필즈와 룩손은 ‘가난과 부정부패에 관한 문제에 있어 여론을 바꾸는 시각 이미지의 힘’에 관한 생각에 공감했다. 그의 삽화는 주로 흑백으로 제작했는데, 그것 역시 당시 사회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어 프랑스와 독일에서 인기를 얻었다. 이후 그는 신문사를 그만두고 예술가로 활동했다. 1874년 소개하는 작품을 시작으로, ‘홀아비’(1876), ‘웨딩 빌리지’(1883), ‘야외 화장실’(1889), ‘닥터’(1891)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닥터(The Doctor)’는 미국에서 의료 민영화 사업에 이용되기도 하는 등 정치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의 첫째 아들 필립이 사망했을 때(1877년), 아들 곁에서 헌신하는 의사의 직업에 크게 감명을 받아 그린 걸로 알려져 있다. 이후 로얄 아카데미 회원(1887년)으로 선출되어 활동하다가, 1927년 런던에서 사망했다.

 

 

그림 속으로

 

작품은 안개가 짙게 낀 겨울밤, 도시 빈민들의 춥고 배고픈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찰서 밖에서 표를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는 여성과 어린아이들도 있다. 표를 받고 임시 수용소에 들어가려면 거기에 있던 사람이 죽어야 하지만, 경찰이 시급한 경우라고 인증해주면 통상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나와야 했다. 그리고 다음 밤을 위해 다시 줄을 서야 했다. 빅토리아 시대 런던은 숙박과 빈곤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임시 수용소의 표는 1864년 약 20만 장에서 1869년에 40만 장 발행하여 두 배 증가했다고 한다.

 

작품 속 사람들 뒤 벽보판에는 추위 속에서 떨며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는다며 20파운드 후사’라는 광고가 있다. 필즈가 의도적으로 삽입한 걸로 추정되는데, 개보다 못한 당시 빈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라는 걸로 보인다. ‘인간’이 상실된 당시 산업 사회의 발전은 분명 ‘새로운 사태’였고, 작가는 그 문제를 이렇게 붓으로 고발했다면, 이제부터 교회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보호하고 그 존엄성과 결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것이다. ‘새로운 사태’는 교회의 새로운 삶의 방식과 함께 교회가 가야 할 길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0월 31일, 김혜경(세레나, 부산 가톨릭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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