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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안락사, 존엄사, 연명치료 중단과 교회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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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4-30 ㅣ No.826

[생명의 문화를 향하여] 안락사, 존엄사, 연명치료 중단과 교회의 가르침

 

 

인간 생명은 보호받아야 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2258항)는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생성 시초부터 하느님의 창조 행위에 연결되며 또한 모든 생명의 목적이기도 한 창조주와 영원히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만이 그 시작부터 끝까지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무죄한 인간을 직접 파괴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라고 선언한다.

 

교회는,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서 인간은 다른 동물이나 사물과 비교할 수 없는 존엄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 생명 역시 어느 누구도 제외됨 없이 수정되는 순간부터 자연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보호받아야 하며, 그 생명을 침해하는 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에 대한 도전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교회의 가르침과 너무 다르다. 특히 생명의 초기와 마지막 단계에 있는 연약한 생명에 대한 공격인 낙태와 안락사는 과거보다 더 광범위하고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가장 연약한 상태에 있는 생명을 공격하는 낙태와 안락사를 개인의 권리라고 주장하고, 합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을 ‘죽음의 문화’라고 지적하면서 인간 생명에서도 ‘효율성’만을 우선시하는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호소하셨다.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사건 이후

 

우리나라의 경우 1960년대 이후 정부가 경제 개발을 위해 산아제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피임과 낙태가 만연하게 되었는데, 가톨릭교회는 이를 지속적으로 반대해 왔다. 그러나 ‘안락사’ 문제는 최근에 와서 이른바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존엄사’ 논쟁과 함께 사회적인 이슈로 크게 부각되었다.

 

지난 2008년 11월 28일 서울 서부지방 법원이 식물 상태의 환자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연명하던 ‘김 할머니’에 대해 “회복 가능성이 없어 치료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하고 환자가 치료 중단을 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면, 환자의 자기 결정권에 의해 병원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는 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다.”라고 판결하였고, 2009년 5월 21일 대법원도 같은 결정을 내림으로써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더욱 확대되었다.

 

이 논란과 관련해서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는 2009년 7월 8일 공식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존엄사’라는 용어로 부르는 것과 ‘존엄사법’ 제정을 반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존엄사’라는 용어는 환자가 고통 없이 존엄과 품위를 지니고 맞이하는 죽음이라는 미화된 이미지를 지닌 용어이지만 실제로는 죽음을 의도하면서 치료를 포기하는 ‘안락사’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안락사와 존엄사

 

따라서 ‘안락사’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이해하려면 ‘존엄’, ‘연명치료 중단’과 같은 비슷한 용어들의 의미를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가톨릭교회는 1980년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발표한 ‘안락사에 관한 선언’과 1981년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에서 발표한 ‘중환자와 임종자에 관한 윤리 문제’ 등을 통하여 안락사와 연명치료 중단 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밝힌 바 있다.

 

우선 안락사는 “특수한 행위로 환자의 생명을 끝나게 하는 것” 또는 “환자에게 베풀어야 할 치료 행위를 중지함으로써 환자의 생명을 끝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그런데 안락사(euthanasia)라는 말의 어원은 고대에는 심한 고통이 없는 ‘편안한 죽음’을 뜻했지만 오늘날 그 의미가 변해서 극도의 고통을 종식시키거나, 가족과 사회에 무거운 짐을 지울 수 있는 병에 걸린 이들을 죽이려는 ‘안락 살해’를 뜻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교회는 분명히 이런 ‘안락 살해’를 단죄하며 어느 누구도 결코 인간의 살해를 용납할 수 없고, 누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살인 행위를 요청하거나 동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비록 오래 지속되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말미암아 선의로 환자에게 죽음을 선택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믿게 되는 일이 일어나도 살인 행위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인간은 자신은 물론 이웃 생명의 완성을 위해 세상 끝날 때까지 생명을 성장시키고 열매를 맺을 소명이 있는데, 안락사는 이렇게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진 현세 생명의 보존과 완성이라는 소명에 위배된다.

 

이 문헌들은 또한 오래 지속되는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 환자들이 죽여달라고 요청하는 경우에 환자의 고통을 끝내주려는 것은 ‘거짓 자비’이며, 그러한 중환자들의 간청은 오히려 “거의 언제나 도움과 사랑을 구하는 고뇌에 찬 간원”이며 실제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과 지지임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존엄사’라는 용어는 안락사와 어떻게 다를까? 의학계에서 안락사는 말기 환자가 이성적인 판단으로 동의할 경우 환자의 고통을 줄이려고 의사가 치사량의 극약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자비적 안락사)와, 말기환자에게 적극적인 치료를 중지함으로써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소극적 안락사로 구분하는데, 소극적 안락사는 ‘존엄적 안락사(Euthanasia with Dignity)’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의 언론이나 일부 단체들이 주장하는 ‘존엄사’는 이 ‘소극적 안락사’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에 교회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사라고 부르는 것은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편안하고 품위 있게 죽는 것을 ‘존엄한 죽음’이라고 여기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존엄한 죽음은 고통 속에서도 삶을 잘 정리하고 가족 친지들에게 감사와 용서와 사랑의 인사를 전하며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여기며 맞이하는 죽음이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과 안락사, 존엄사

 

그렇다면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은 ‘안락사’, ‘존엄사’와 어떻게 다른가? 교회문헌에는 더 이상 소생할 가능성이 없이 죽음이 임박한 환자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면서 “균형을 넘어서는” 과도한 의학적 수단이나 예외적 치료 장치 등을 사용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합당하며, 고의적으로 죽음을 이끌어내는 ‘안락사’와 다른 개념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고통스런 죽음의 시간만을 연장해 줄 뿐이기에 인간의 조건인 죽음을 이제 받아들이려는 환자의 결정은 양심 안에서 허용된다는 것이다.

 

의사는 환자의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충분한 치료법이 없다면, 여러 가지 조건들을 종합하고 판단해서 새롭게 시도되는 진보된 의료 기술이 환자에게 꼭 필요한지 판단해서 그것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환자의 동의를 얻어 중단할 수 있다. 오히려 담당의사가 자신이 맡은 환자들 가운데 완치될 수 없는 환자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의료 집착’ 수준의 지나친 연명치료를 고집한다면 그것이 윤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전제되는 것은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정상적이고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수단, 곧 영양 공급, 수혈, 주사, 간호, 보편적 투약 등은 언제나 제공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연명치료라기보다 통상적 치료이며, 이러한 최소한의 조치마저도 중단시키는 것은 실제로 환자의 생명이 끝나기를 의도하는 것이므로 소극적 안락사에 해당한다.

 

아울러 어떤 것이 ‘의료 집착’이고 어떤 것이 ‘정당한’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포기인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생명에 대한 윤리적 가치를 기초로 한 담당의사의 ‘전문 지식과 양심’이 되어야 할 것이며, 담당의사 혼자서 판단하기 어려울 경우 병원윤리위원회 등에서 함께 숙고하여 판단해야 할 것이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

 

우리 사회는 최근까지 존엄사나 연명치료의 중단과 관련된 입법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있고 존엄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았지만 사실 많은 이가 아직 안락사나 존엄사,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개념도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교회는 관련 입법을 시기상조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존엄사 허용을 찬성하는 여론이 높은 이유는 자신은 물론 가족에게도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지우기 싫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말기환자의 치료가 장기화되면서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만일 정부가 말기환자의 치료 비용을 부담하고, 임종을 준비하는 이들을 영적, 정서적으로 도와주는 호스피스 제도를 지원한다면 굳이 ‘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지의 죽음을 재촉하는 시도를 찬성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존엄사 입법’을 반대하는 이유는 우선 이 법이 제정되면 안락사로 남용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존엄사 입법을 시도하기 전에 먼저 이와 관련된 용어들의 개념들을 올바로 정립하고, 인간의 생명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보호해야 할 가치라는 생명존중의 정신을 확립하며, 의료비와 호스피스 지원 등 제도적인 보완을 통해 경제적인 이유로 생명을 단축시키려는 시도의 여지를 방지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생명의 끝을 하느님께 맡겨드려야지 어떤 사람도 다른 이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할 수 없다는 것과 동시에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을 준비하는 순간은 피해야만 할 고통의 순간이 아니라 이승의 삶을 마감하고 영생의 길을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결코 인간 생명을 경제적인 효율성의 잣대로 바라보고 말기환자의 생명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며 그 생명을 단축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존엄한 죽음’은 고통을 피하려고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 또는 치료 가능성과 효율성을 잣대로 선택하는 죽음이 아니라, 고통마저도 수용하면서 하느님으로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으로서의 생명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거부하지 않고 인생의 한 부분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화해와 용서를 통해 이 세상에서의 삶을 잘 정리하고 평화롭게 맞이하는 죽음이다.

 

[경향잡지, 2011년 4월호, 박정우 후고(서울대교구 신부, 가톨릭 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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