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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뮤지컬 서울할망 정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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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6-27 ㅣ No.847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뮤지컬 ‘서울할망 정난주’


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뮤지컬 ‘서울할망 정난주’ 포스터.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좌우 전면에 위치한 연주자들의 어렴풋한 움직임뿐. 이윽고 한 서린 노파의 구음이 들려온다. 자신의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정난주 마리아가 노파의 모습으로 되었다. 멍한 그녀의 눈길이 머무는 곳엔 황새바위에 버려져 울고 있는 자신의 아이 황경헌을 누군가 안아들고 있다. 성극 뮤지컬 ‘서울할망 정난주’의 인트로는 이렇게 시작된다. 

 

주교요지를 쓴 정약종의 조카딸이자 황사영의 아내였던 정난주는 신유박해(1801년)로 남편을 잃고, 자신은 제주도 관아의 노비로, 아들은 추자도에 보내져 헤어지게 된다. 아들을 평생 노비로 버려둘 수 없었던 그녀는 사공에게 부탁하여 죽어 수장했다 이르게 하고 추자도 황새바위에 버렸는데 어부 오씨에게 발견되어 장성한다. 정난주는 노비로 37년을 살았으며 죽기까지 아들을 만나지 못하였다. 

 

애초에 이 작품은 온전히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성극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작가 이엘리씨를 비롯하여 나 역시도 가능하다면 작품이 비신자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래서 오래도록 공연되면서 완성도를 더해가는 작품이기를 바랐다. 삼년 째 제작되면서 비록 작은 극장이기는 하지만 대학로 한가운데로 들어와 일반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것은 이런 바람이 조심스런 현실로 이어졌다 할 것이다. 매 공연 때마다 새롭게 다듬어지는 노래들과 새 연출가의 다른 해석들, 이를 위한 만만치 않은 제작비를 생각해봐도 이 작품은 좀 더 많은 관객을 필요로 한다. 

 

이번 공연은 초기 버전의 엄숙주의에서 벗어났다고 할까 좀 더 코믹한 부분이 늘고 전체적으로 극적 갈등의 수위가 줄어 보였지만 후반부 절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의 극적인 증폭은 오히려 이전 버전에 비해서 더 크고 단단해졌다. 작가 이엘리씨는 신유박해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대신 정난주 마리아 개인의 삶에 천착하면서 극적 구체성을 획득하고자 한다. 그래서 ‘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하고 울부짖는 주인공의 절규와 죽음 직전 판타지 속의 아들 경헌과의 만남 등이 아프고 슬프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공연을 보고 있으니 주문모 신부, 정약종, 황사영으로 이어지는 순교 과정과 그들의 철학과 사상에 대한 세부, 그 대척점에서 정순왕후를 비롯한 당대 조선 사회 위정자들 모습도 궁금해진다. 조선사회에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가해진 가혹한 박해는 민중들의 근대적 의식의 성장과 급속히 변화하는 주변 세계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조선왕조의 위기감이 만들어낸 역사적 퇴행의 산물이다. 개인적으로는 ‘서울할망’이 한국사의 보다 큰 맥락 속에서 조망되었을 때, 보다 대중성에서도, 그리고 극적 완성도에 있어서도 작품의 가능성이 열리리라 생각한다. 

 

작가 이엘리씨를 중심으로 한 극단 대월은 가톨릭 내의 흔치 않은 예술 단체의 하나로서 몇 년 사이 쉴 새 없이 창작과 봉사활동을 지속해왔다. 뮤지컬 ‘서울할망 정난주’는 이후로도 극단 대월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겠지만 대표 일인의 믿음과 열정으로 충분히 감당해내기에는 버거운 시기가 온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 전문 스텝의 지원이 아쉽고 무대장치도 디자이너와 전문 제작자의 손길이 꼭 필요하다. 관심을 기대한다.

 

[가톨릭신문, 2015년 6월 28일, 이상구(펠릭스ㆍ연출가 겸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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