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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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명동본당 사순특강2: 나를 넘어 그 넘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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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14 ㅣ No.242

명동본당 사순특강 (2) ‘나를 넘어 그 넘어로



1. 잠심(潛心)이란

사람은 자기 생각에 따라 세상을 둘로 나눈다. 몸이 아플 때는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으로 나눌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을 넘어 그 너머로 가면 어떤 세상일까? 그것은 아마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의 구분을 넘어 건강과 병듦을 알되 그것이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바로 ‘잠심(潛心)’이다. 잠심은 ‘알되 그 앎이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지금 여기저기서 기침하는 소리가 들린다. 잠심은 기침 소리가 들려도 그 소리가 나에게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다. 기침이 신경 쓰이는 사람은 그 소리에 잡혀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하는데 별 잡념이 다 떠오른다. 사순 특강을 듣는 지금도 여러분은 자녀가 저녁은 먹었는지 걱정이 든다. 잠심은 내가 분심이 들건 고통을 받을 때건, 화가 날 때라도 그것들이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 즉,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2. 잠심을 하면

기도의 목표는 ‘하느님과의 일치’다. 그러려면 먼저 하느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런데 하느님 뜻을 알기 전에 내 생각을 하느님께 관철하려 하기에 문제가 생긴다. 참된 기도는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내 생각과 문제를 하느님께 아뢰고 내 것을 모두 내려놓는 잠심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아는 것이다.

그러려면 일치할 대상의 뜻을 알고 하느님 뜻을 알아야 일치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의 일치가 아니라 하느님을 부리겠다는 일치를 하려 한다. 그래서 안 된다. 하느님을 부리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용서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서로 다퉜다고 하자. 그들에게 용서란 싸운 사건을 잊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다. 현실적으론 그렇게 되기는 매우 힘들다. 그래서 용서를 위한 용서를 한다. 성경에서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 용서하라는 말은 완전한 용서를 하라는 의미다. 나는 용서했다고 하는데 그 사람만 만나면 어제 일이 생각나는 것은 용서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하느님의 역할은 용서해 주시는 것이고 나는 내 역할만 하면 된다. 막연한 용서가 아니라 용서의 참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3. 행복과 불행의 차이

여러분이 돈을 믿으면 돈에 휘둘려 살고, 권력을 믿으면 권력에 휘둘려 산다. 믿는 대상에 따라 사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삶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 예수님 말씀 알아듣고 이것이 예수님 뜻인지 내 뜻인지 계속 기도하면서 알아내야 한다. 그래야 진짜 하느님 말씀이라는 확신이 들 수 있다.

행복이 무엇일까. 무엇을 해도 행복이 안 찾아온다고 믿고 살아온 사람한테 행복을 말할 수 있을까. 만약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가진 생각이 이렇다’ 혹은 ‘이것이 행복이다’ 하고 여기기 때문에 행복이 오지 않는 것이다. 여러분 앞에 닥친 불행이 과연 불행일까. 대학에 합격한 것이 행복이고 떨어지면 불행인가? 대학에 떨어진 것이 외려 당사자에게는 더 넓은 세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

잠심을 해야 한다. 잠심하면 그냥 행복해진다. 내 안에 하느님께서, 그리스도께서 사시기에 행복하다. 내가 비록 가난하고 건강이 좋지 못하다 하더라도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하느님이 주신 고통이나 슬픔도 모두 좋은 것일 수 있다.


4. 잠심을 위해 실천해야 할 세 가지

첫째, 하느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믿음이다. 둘째는 하느님 뜻을 알아듣는 것이고, 셋째는 하느님 뜻을 실천하는 것이다. 실천이 가장 어렵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곳이 머리에서 가슴까지인데, 이보다 더 먼 것이 가슴에서 발까지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실천이 어렵다.

속담 중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과거의 경험 때문에 우리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거를 정화하고 내려놓는 작업이 잠심이다. 생각과 과거의 경험을 알아내고 잠심을 해야 한다.

실천이 어렵다는 의미는 어려운 길을 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를 편하게 한다. 하느님께 다가가려는 수고 없이 하느님 뜻을 편하게 알려고 한다. 수고하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가 없다. 배우자가 뭘 좋아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

틀을 깨야만 한다. 우리가 가진 생각을 깨라는 의미다. 이것을 깰 때만 하느님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다. 바로 깨는 작업이 잠심이다. 잠심을 제대로 해야 하느님 뜻을 알아들을 수 있다. 사순을 지내면서 잠심을 화두로 삼으며 자기 생각의 틀을 깨는 실습을 해보면 어떨까.

[평화신문, 2015년 3월 15일,
정규한 신부(예수회), 정리=이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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