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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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명동 사순특강2: 교회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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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03 ㅣ No.164

명동성당 사순특강 (2) 교회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

사랑으로 하나된 삼위일체 신비


교회는 신앙과 교회가르침을 「가톨릭교회교리서」와 공의회 문헌, 교황 회칙 등에 보존하고 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신자들이 믿어야할 신앙의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오늘은 가톨릭 신앙의 핵심인 삼위일체에 대해 알아보겠다. 사도신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사도신경에 나오는 12조항은 '나는 성부 성자 성령을 믿나이다', '나는 교회를 믿나이다', '나는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도신경 내용을 다 믿는다. 하느님을 믿는 종교는 많이 있다. 이슬람 신자는 알라신을 믿는데 '알라'는 유다인들이 믿던 '야훼'와 어원이 같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같지만 이슬람교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 또 유다인은 예수님을 예언자로 생각하지만 하느님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기에 다른 종교와 구분된다.

그리스도교에는 동방교회, 개신교, 가톨릭이 있다. 모든 그리스도교가 사도신경을 믿지만 타 그리스도교 신자와 가톨릭 신자를 외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십자성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십자성호를 긋는 것은 가톨릭 신자들 특징이다. 가톨릭 신자는 삼위일체를 믿는 사람들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을 십자성호를 그으며 삼위일체 신앙과 함께 한다.

삼위일체 신앙은 어렵다. 수학적 논리로 이해되지 않는다. 하나가 셋이고, 셋이 하나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삼위일체 신앙은 철학적 사고에서 출발한 게 아니고 그리스도 신앙인의 역사적 체험에서 시작됐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스라엘 백성 신앙을 물려받았다. 한 분이신 하느님이라는 유일신 신앙을 물려받은 것이다. 구약에 나오는 백성들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과 같은 조상들의 하느님을 자신의 하느님이라고 믿었다.

조상들의 하느님은 아버지들의 하느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에서는 아버지들의 하느님이 아닌 '아버지이신 하느님'이 됐다. 이것은 획기적 가르침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도록 가르치신 것이다.

많은 학자와 주교들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삼위일체 이론 중에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느님 성부의 모습으로 나타나셨고, 2000년 전에는 성자의 모습, 부활 승천 뒤에는 성령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는 주장이 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이 역사에 따라서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삼위일체 신앙을 이해하려 한 것이다.

그러면 삼위일체 하느님을 쉽게 설명할 수 있었지만 교회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이 "아버지, 하실 수만 있다면 제 뜻대로 하지 말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하고 하느님께 기도드렸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이론에 따르면 예수님은 자기가 아버지고 아들이자 성령인데 마치 아들인 것처럼 행동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신비는 인간 이성으로 알 수 없다. 우리는 내 자신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하느님을 알 수 있겠는가. 삼위일체 신비를 가장 열심히 연구했던 사람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이다. 성인은 삼위일체 신비를 깨우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이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성인은 "만일 당신이 하느님을 이해한다면 그건 하느님이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건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이해한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부분적으로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면 당신이 속았을 뿐입니다"하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부분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 삼위일체 신비는 우리 지력으로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고백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삼위일체 신비는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일 수도 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부부와 공동체, 남북 등이 하나가 돼야한다고 이야기한다. 왜 하나가 돼야 한다고 말하는가? 바로 하느님께서 삼위일체 신비를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부부와 공동체, 인류, 남북이 하나 되는 방법은 사랑이다. 삼위가 하나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앞서거나 뒤쳐지는 것이 없고, 높고 낮음도 없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신다.

[평화신문, 2013년 3월 3일, 조규만 주교(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정리=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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