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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유럽 수도원 순례: 교회 일치를 위한 체험 장소, 영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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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8-28 ㅣ No.355

[전통 영성의 샘을 찾아서 - 유럽 수도원 순례] 교회 일치를 위한 체험 장소, 영국 (중)


수도자 합창 어우러진 장엄한 전례에 고난의 시간 견딘 신앙의 역사 묻어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는 더햄 대성당. 1540년 이후부터 성공회 대성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스코틀랜드를 떠난 순례단은 잉글랜드 지역의 뉴캐슬과 요크 방면으로 향했다. 토끼 모양의 영국 지도를 본다고 할 때 등뼈를 타고 런던 쪽으로 여정을 옮기는 형상 이었다.

 

먼저 ‘뉴캐슬’이라 불리는 뉴캐슬어폰타인 (Newcastle upon Tyne)의 주도, 더햄(Durham)에 도착했다. 순례객들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는 더햄 대성당( Durham Cathedral)을 찾았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 전체적으로는 라틴형 십자가형의 위용을 보이고 있었다. 성당 앞 광장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라 건물 전면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다.

 

1093년 8월 12일 짓기 시작, 1133년 공사가 마감됐으나 13세기와 15세기에 보완 과정을 거쳐 오늘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의 성당으로 출발했으나 1540년 이후부터 성공회 대성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빛을 발했던 14세기에는 당시 주교가 머물던 더햄 궁전이 지어졌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 더햄 대성당 내부.

 

 

687년 선종한 북잉글랜드의 가장 중요한 성인이자 주교, 수도자였던 성커스버트 린디스파른의 성지로도 알려져 있어 지역 순례객들의 발길도 잦아 보였다. 중앙 제대 뒤쪽에는 이 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이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성가대원 복장과 비슷한 특별한 옷차림으로 순례객들을 안내해 주는 봉사자들에게서 차분함과 진지함이 묻어났다.

 

영국 교회 순례를 하면서 느낀 점은 성공회 성당이건 가톨릭 성당이건, 차이를 구별시켜 주는 특별한 건물 표시가 없다는 점이다. 더 햄 성당은 유명한 순례지라는 점에서 ‘성공회 성당’이라는 사전 기본 정보가 있었으나 그 외 소도시에서 마주치는 성당들은 직접 성당 내에 들어가 물어보지 않으면 구별점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성공회로 대변되는 영국교회는 1534년 헨리 8세가 영국교회를 가톨릭교회로 부터 분리한 역사적 배경 속에 독일 이태리등 유럽 대륙의 교회들과는 다른, 특별함을 지니고 있었다.

 

영국에 신앙이 전파된 흔적은 비교적 빨리 찾아진다. 3세기 중엽이나 4세기 초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있었다는 기록과 429년 성 알반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 또 314년 아를 종교회의에 주교 3명이 참석했다는 내용은 이미 교계 제도가 있었다는 증거로도 받아들여진다. 역시 파트리치오 성인과 골룸바노 성인의 영향은 영국교회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견해다.

 

6세기경 성 대 그레고리오가 파견한 선교사 40명의 영향, 그리고 그들 중 대표자였던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노 주교와 함께 601년 파견된 빠울리누스 주교가 625년경 요크지역까지 신앙을 확대시키고 베네딕도 규칙서를 전달한 것은 초기 영국교회 영성 발달사에 매우 중요한 자리매김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바이킹들을 통한 방해 등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으나 수도원 문화를 통해 라틴 문명의 유산과 교부시대의 영성이 널리 퍼져 나갔던 것으로 학자들은 평한다. 특히 에그버트 주교가 세운 요크 학교는 8~9세기 알퀸을 비롯 그리스도교 사상에 투철한 학자들을 배출, 깊이 있는 영성적 문화 유산을 이뤄나갔다.

 

이 시기에 주목해야할 성인이 수도자, 사제, 신학자이며 교회박사 칭호를 가진 성 베다(672/3-735)이다. 영국 요크 출신이었던 그는 뛰어난 교육적 열성으로 제자들을 양성했고 더불어 성덕의 삶을 실천,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었다. 또 교회 제도와 수도원 제도에 도입된 악습들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밝히는 등 교회 영성에 크게 기여했다.

 

- 영국 북부 지역의 요크는 7세기에는 주교좌의 소재지로서 또 8세기에는 유럽 학문의 중심지로 큰 역할을 맡았다. 시내 거리 모습.

 

 

베다 성인의 활약상에서도 보듯 영국 북부 지역의 요크는 7세기에는 주교좌의 소재지로서 또 8세기에는 유럽 학문의 중심지로 큰 역할을 맡았다. 그만큼 교회적으로도, 학술적으로도 중심이 된 도시다. 중세시대를 통털어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요크로 여정을 옮겨가면서 그러한 역사적 배경의 도시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이곳에서는 무엇보다 영국 가톨릭교회 안에서 특별하게 현존하고 있는 암플포스 수도원(Ampleforth Abbey) 방문 시간이 마련돼 있었다.

 

요크 시내를 벗어나서도 30분 넘게 시골길을 달려가 당도한 요크 수도원은 버스 기사도 그 위치를 찾는데 당황할 만큼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암플포스 수도원은 베네딕도회 영국연합회중 가장 규모가 큰 수도원이라고 한다. 80여 명의 회원이 있는데 그중 50명 정도의 수도자들이 본원에 살고 있고 나머지 수도자들은 본당이나 분원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 암플포스 수도원내 흄 추기경 흉상.

 

 

손님 담당 수사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니 수도원 역사는 그야 말로 영국 가톨릭교회가 걸어온 흐름이 아닐 수 없었다. 원래 런던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나 헨리 8세의 수도원 해산으로 수도자들은 프랑스로 건너가게 됐고 프랑스 혁명이 일자 1802년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현재의 수도원을 설립했다는 것이다.

 

암플포스 수도원은 기숙학교 운영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가톨릭의 ‘이튼스쿨’로 불릴 만큼 영국내에서 명성을 얻고 있다고 했다. 학생수는 600명 정도이고 13~18세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수도원서 멀지않은 질링 성 인근에는 3~13세 어린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또 있다. 옥스퍼드 대학 안에서도 수도원이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교육기관 성 베넷 홀(St. Benet's Hall)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의 작은 아버지가 이곳 수도원 출신이어서 어릴 적부터 자주 수도원을 방문했다는 여담을 들을 수 있었다. 수도원과 연관된 또 한 명의 인물은 흄 추기경이다. 수도원 학교 출신으로 졸업후 수도원에 입회, 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수도원 아빠스(1963-1976)로 선출됐고 이어 웨스트민스터대교구장(1976-1999)으로 임명됐다. 20년 넘게 영국 가톨릭교회를 이끌며 성공회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도원 내부를 돌아보고 저녁기도에 참석했다. 학교 직원들로 보이는 이들과 피정차 수도원을 방문한 것으로 보이는 30~40명의 평신도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함께 수도자들의 합창이 어우러진 장엄한 전례가 연출됐다. 그들의 기도 소리 속에 숱한 고난의 시간을 견디며 지켜온 신앙의 역사가, 수도원의 발자취가 묻어나는 듯 했다.

 

영국 요크에 위치하고 있는 암플포스 수도원 전경. 베네딕도회 영국연합회중 가장 규모가 큰 수도원이다.

 

 

암플포스 수도원내에 보관된 주보 성인 라우렌시오 성인의 유해.



- 암플포스 수도원의 저녁기도 모습.



- 암플포스 수도원이 운영하고 있는 기숙학교 전경.

 

[가톨릭신문, 2011년 8월 28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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