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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명동주교좌본당 사순절 특강3: 밤이 지나가면 아침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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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3-31 ㅣ No.112

명동주교좌본당 사순절특강 (3) 밤이 지나가면 아침이 온다


고통 말고 '주님의 선물' 봐야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고 산다면 수난의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사랑해" "고마워"라는 말을 자주 해야 한다.

 

고통이 없는 삶은 없다. 그렇다면 고통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나보다 더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의 말을 들으면 나의 고통은 작아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수많은 고통을 겪으며 삶을 살아왔다. 내가 35살 때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남편은 의식이 없는 채로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그렇게 20일이 지났을 때 나는 우연히 혜화동성당에 갔다. 걷다보니 우연히 혜화동성당 앞을 지나친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성모마리아와 예수님을 만났다.

 

그때 나는 무척 외로운 상태였다. 남편은 아팠고 집안 형편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성당에 들어갔을 때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 예수님은 나에게 그저 "다 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예수상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그칠 줄 몰랐다.

 

성당에 간 지 3일째 되는 새벽 남편은 기적처럼 깨어났다. 그는 나에게 편안한 목소리로 "나 많이 잤지?"라고 말했다. 남편은 깨어났지만 그의 몸은 마비가 됐고 나는 수많은 날 동안 그의 몸을 문지르며 남편의 몸이 깨어나길 기도했다.

 

남편은 조금씩 나아졌고 마침내 퇴원했다. 퇴원한 날 남편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기쁠 줄만 알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살아난 것에 대한 회의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치료비는 걷잡을 수 없었고 남편은 폭력적으로 변해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남편을 살려낸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가 살아있는 것이 저주스러웠고 성모님께 "남편을 왜 깨어나게 했냐"고 원망했다.

 

고통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함께 살던 시어머니마저 쓰러졌고 의사는 시어머니가 한 달 이상 살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도 잘 해드리자'는 생각으로 정성을 쏟아 간호를 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을 때 시어머니의 몸은 회복되기 시작했다.

 

나는 신부님을 찾아가 "시어머니 좀 빨리 돌아가시게 해주세요"라고 하소연도 했다. 신부님은 "조금만 더 참아보라"며 시어머니의 영세를 권유했다. 시어머니가 세례를 받은 후 함께 손을 잡고 묵주기도를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몇 개월이 지나니 다시 마음에 폭풍이 일고 시어머니가 귀찮아졌다.

 

그렇게 두 환자 병수발을 하다가 어느 날 내가 쓰러졌다.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 "이렇게 죽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일어나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

 

다음날 새 삶의 의지를 다지고 대학원을 가기 위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중환자를 둘이나 돌보며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네 번의 도전 끝에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이번엔 돈이 없었다. 친척 언니 도움으로 겨우 대학원을 등록했다.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해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는 내 품안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나는 "어머니 한 달, 아니 일주일만 더 사세요"라고 외치며 통곡했다. 시어머니는 '나라도 미워하며 이를 악물고 살라'고 그렇게 오래 사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주님의 깊은 뜻이었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남편은 끊임없이 나를 힘들게 했지만 나는 더 이상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2000년, 23년 간 긴 투병을 끝내고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남편이 죽고 나서야 그가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내가 붙잡고 힘들다고 하소연할 사람도 생활비를 내 놓으라고 화를 낼 사람도 없다.

 

이제 고통은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2005년 내가 암에 걸려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도대체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냐"며 하느님을 다시 원망했다.

 

수술대 위에 올라 "이제 주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고통을 주실 거면 지금 다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마침내 수술을 받았고 오랜 치료 끝에 완쾌했다.

 

나는 살면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받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축복이었다. 고통의 십자가는 예수님이 나에게 주신건데 내가 예수님이 주신 것을 내려놓는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더 무겁게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생각을 갖게 해 주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하느님은 고통을 주시면서 좋은 선물도 반드시 함께 주신다. 고통은 혼자 찾아오지 않고 반드시 좋은 것과 함께 온다. 고통이 올 때 고통만 보지 말고 눈을 돌려보면 하느님이 주신 좋은 선물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오늘 나의 고백을 듣고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고통과 상처가 작아지길 바란다. 하느님이 나를 이곳에 세우신 이유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평화신문, 2009년 3월 29일, 신달자(엘리사벳, 시인). 정리=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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