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ㅣ우화
[사랑] 동전에 담긴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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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에 담긴 '사랑'
"여 보, 생일 선물이야." 어색하다는 듯, 미안하다는 듯 남편이 머뭇거리며 빨간 리본으로 묶은 작은 나무상자 두 개를 내 앞으로 밀어놓았다. 늘 기대만으로 지나갔던 생일이라 뜻밖이었다. 아이 둘 키우랴, 남편 학비 대랴, 빠듯했던 세월. 공부를 마친 남편은 이제 겨우 시간 강사이고, 그 주머니 사정이야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터였다.
리본을 푸는데 손이 조금 떨렸는지도 모르겠다. 뚜껑을 열자, 나온 것은 수북이 쌓인 500원짜리 동전들. 다른 상자에는 100원짜리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걸 얼마나 오래 모았을까.' 남편이 다시 보였다. "실망하지 말아줘. 더 좋은 건 다음에 해줄게. 이거 1년 동안 모은 거야. 나 동전 넣을 때마다 당신 생각했어."
당시 형편으로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갖고 싶은 거 있으면 사라고 남편은 말했지만 그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통장을 만들어 넣어두었다. 다음해를 약속하며 남편은 빈 상자를 가져갔다. 이제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동전을 모을 필요가 없을 만큼 자리가 잡혔다. 남편의 나무상자 선물은 그러나 그 후로도 10여 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간혹 동창회에서 다이아몬드 반지나 모피 코트를 선물 받았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을 만난다. 그에 비하면 초라할지 모르지만, 남편의 1년 동안의 정성이 담긴 동전 상자는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다.
[조선일보 98년 2월 5일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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