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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연극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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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7-18 ㅣ No.855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연극 ‘회복’


헝클어진 관계 이야기



2015 ‘파다프’ 포스터.


올해로 5년째를 맞는 PADAF(Play Act Dance Art-tech Film Festival)는 문화 융,복합시대를 선도하는 융복합공연예술축제다. 무용, 연극, 영화, 사진, 음악, 미술, 패션 등의 서로 다른 장르를 충돌시켜 하모니의 미학을 찾고, 그를 향유하는 것이 기획의도라는 파다프 측의 설명이다. ‘충돌과 하모니’ 피정 제목 같지 않은가. 서로의 다름을 허물어 하나가 되고 행복해지는 것. 그 ‘하모니의 미학’이 무언지 그게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줄지 부쩍 궁금해진다.

파다프 축제의 오프닝으로 공연된 ‘회복’은 그 제목에서부터 ‘충돌과 하모니’가 느껴지는 20분짜리 짧은 소품으로 서로 다른 세 쌍의 헝클어진 관계의 이야기다.

하얀색 사각으로 테 둘러진 텅 빈 무대. 떨어져 놓인 하얀 작은 의자 세 쌍 뒤로 바닥과 천정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하얀 사각틀이 있다. 좁고 완고한 이 바닥에서 저 시원한 공간으로 탈출하라는 분명한 메시지가 어떻게 풀릴지 궁금증을 부추기는데, 두 개의 사각이 어떤 변수를 가져올지 지켜볼 터였다. 곡선과 직선이 교차되는 무용수의 몸짓, 비명처럼 고함처럼 노래하는 가수, 달라도 너무 다른 연기법의 배우들은 사랑하고 싸우고 상처를 주고 붙들고 빠져나가고 결국은 후회와 상실의 괴로움으로 만신창이가 된 채 서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웅크리고 있다. 사각틀은 그들을 완고하게 욱조이고 있어 저기를 어떻게 빠져나오나 관객들도 암담한데, 뜬금없이 아이가 하나 나온다.

아, 뜬금없지는 않다. 저 아이는 연극시작에 술 취한 아빠곰과 함께 관객에게 작은 웃음을 선사하며 맑은 기운을 뿌렸었다. 룰루랄라 들어온 아이는 사각안의 찌그러진 사람들을 본다. 아이 눈에는 어른들도,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사각틀도 다 이상하다. 아이는 틀을 툭 건드린다. 사각틀은 어이없이 쉽게 무너져 내리고 사람들은 질겁한다. 으쓱해진 아이는 자신이 제일 잘 부르는 노래를 한다.

머리가 멍해진 사람들의 눈이 서로 부딪치고 이윽고 그들 가슴 깊은 곳의 아이가 하나, 둘씩 나온다. 머리허연 노배우가, 날렵한 춤꾼이, 한다하는 소리꾼이 ‘달려라 태권브이’ 하면서 주먹을 쳐들고 낄낄 웃으며 뛰어다닌다. 관객들은 좀 민망하다. 아직은 무대 위의 즐거움이 낯설다. 거기에 전염되어 자신 속의 아이가 불쑥 고개를 내미는 관객도 있고, “아 유치해” 하고 몸을 더 도사리는 관객도 있다. 연출자인 임형택씨는 맑은 기운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다. 사실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작고 단순한 맑은 기운 한줌이 관계회복의 명약이라고 믿는 쪽이 안 믿는 쪽보다 사는 데 훨씬 유리한 건 맞다. 벗어날 수 없는 관계가 헝클어졌다면 약을 먹든 입원을 하든 회복되어져야하는 것도 맞다.

“비오는 날 우산 쓰는 동물은 사람뿐”이라고 누가 그랬지만 공연하는 동물도 이 온 우주에 사람뿐이다. 지금 여기 공연되어지는 작품들에 보다 관심을 갖는 일은 어쩌면 우리 신앙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을지 모른다. 시대와 마음을 읽어내는 공연에는 사람 사는 길이 있고 그건 결국 다 사랑이기 때문이다.

* 이원희(엘리사벳ㆍ연극배우 겸 작가) - 뮤지컬 ‘서울할망 정난주’ 극작가이자 배우로서 연극 ‘꽃상여’ ‘안녕 모스크바’ ‘수전노’ ‘유리동물원’ 등에 출연했다.

[가톨릭신문, 2015년 7월 19일,
이원희(엘리사벳ㆍ연극배우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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