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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24: 발터 카스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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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11-16 ㅣ No.362

[20세기를 빛내 신학자들] (24) 발터 카스퍼 (하)

교회 안에서 성령을 통한 새로운 창조와 쇄신 강조



- 지난 3월 독일에서 열린 발터 카스퍼 추기경 80세 생일 기념 행사에서 카스퍼 추기경(가운데)과 함께한 심상태 몬시뇰. 심 몬시뇰은 카스퍼 추기경 제자다.
 

카스퍼 신학의 중요사상

카스퍼를 포함한 현대의 대표적 신학자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위시한 신앙의 핵심 진리를 고대 그리스 철학 개념인 본성, 본질, 실체와 위격 개념 등을 사용해 의미를 밝힌 형이상학적 신학 경향을 탈피하고, 역사 안에서 만물과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전달하고 마침내 나자렛 예수 안에서 절정에 이르는 하느님의 구원역사(救援役事)의 실상을 구명하는 데 역점을 두는 구세사적 신학을 공통으로 전개한다. 그리고 교회를 불완전한 사회나 종교 집단과 구별되는 교계제도로 구성된 초자연적 완전 사회로 파악하던 개선주의 경향을 벗어나 구세사적 지평 안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로 형성된 하느님 백성으로서 친교 공동체로, 구원의 성사적 표징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보여준다. 이들에게는 신앙의 주요 진리에 대한 공통된 신학 사상이 형성돼 있지만, 튀빙겐 신학의 인식 원리와 방법에 입각한 카스퍼의 주요 신학사상 안에는 특유의 구별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제약된 지면 관계로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공통된 내용보다는 특성을 드러내는 몇 가지 주요 통찰만을 간략히 소묘하고자 한다.


신앙이해

신앙은 교회 생활에서 흔히 성경과 성전에서 증언되는 객관적 구원 사실을 진리라고 증거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카스퍼에게 성경과 성전에서 증언되는 하느님의 구원역사는 외부인 눈에는 숨겨진 역사로서 신앙 속에서만 포착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래서 신앙과 역사의 관계에 관련된 문제들, 예컨대 기적과 예수 부활 등을 이해하는 데에서 성경 본문이나, 교회 가르침을 진리 근거로 제시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고, 신앙의 주관적ㆍ역사적 국면이 결정적 주요성을 지닌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구세사는 인간에게 숙명론적으로 발생하는 역사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과 나약성, 일상의 비루함과 현실 세계의 불의와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당신 자신을 아낌없이 내주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 안에서 자신을 의탁하는 역사적 신앙 감행을 통해 발생한다. 신앙생활을 위해 구세사의 객관적 성격이 주요하더라도, 신앙의 주관적ㆍ역사적 국면을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라는 것이 카스퍼의 입장이다.


하느님과 그리스도 이해

카스퍼의 하느님 신학사상은 그분을 '절대적 자유로서의 사랑'으로 이해한다. 그는 성부로서의 하느님이 절대적 자유의 선물이고 성자는 성부가 지니고 있는 자유의 절대적 인정이며, 성령은 절대적 단일성과 절대적 상위성의 동일원천성이라고 이해한다. 하느님, 성령, 절대적 사랑은 하나의 관계이며 그것이 자유의 선물이고 시간 내지 가능성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랑으로서 자유의 선물이신 하느님이 당신 자신의 타자적인 것 즉 창조를 원하시는 데에서 필요하지 않은, 자유를 지닌 어떤 것이 생겨난다고 본다. 하느님은 창조주와 구속자로서 실제적인 무조건적 자유의 선물이다.

그리고 카스퍼는 그리스도가 창조 이전부터 존재한 아드님이자 로고스의 성령 역사로 이뤄진 육화이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는 상위성을 단일성과 함께 성령적으로 시야에 담을 때에만 적절히 이해된다고 본다. 이어서 그는 예수가 참 하느님이자 참 인간으로서 성자의 위격으로 존재한다고 가르친 칼케돈공의회 교의의 의미를 '사랑의 관계'로서 '인격' 개념 설명을 통해 밝힌다. 그는 인격이 구체적으로 '오직 관계 안에서'만 자신을 실현하는 사랑을 본질로 지닌다고 규정하면서 이 내용을 예수에게 적용한다.

그분을 신적 인격으로 특징짓는 정체성은 성부께 대한 그의 사랑의 관계, 곧 성부를 향한 사랑에서 발하는 그의 순명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인간적 순명이 천주 성자의 순명인 한, 순명이 그를 성부로부터 구별할 뿐만 아니라 성부와의 일치도 이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카스퍼는 성자의 위격이 현실적으로 인간 예수로 존재하기에 성자는 인간으로서 특정한 의미에서 인간적 위격이기도 하다고 논증한다. 성자가 자신의 신적 위격성을 이제 인간적 유형 양식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느님 말씀의 육화 안에서 신적 '누구'의 인간적 '나', 천주 성자가 있다는 것이다.

카스퍼의 그리스도론은 성령과 긴밀한 연계 안에서 그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예수 안에서 성령의 충만이 세계 안에서 작용했다고 본다. 그리고 예수가 "하느님 성령의 새로 마련된 현존과 실재의 목표이자 정점"이면서, 또한 "성령 파견을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거를 찾는다. 그 다음 논거로는 예수와 그의 성령을 통해 종말시대가 이끌려졌다는 점을 꼽는다.
 

교회 이해

카스퍼의 교회론 역시 성령론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는 교회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충실하듯이 '시대의 물음'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열려 있고 은사일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성령이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와 연계하면서 일치시킬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하는 분임을 아울러 역설한다.

그는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교회 안에서 일종의 그리스도 일원론적 경향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성령을 교회 제도에 연계하는 경향이 점증하며 '교계적 교회의 영혼'으로 기술하는 경향이 고착화되다시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성삼 위격들의 외부로의 공동 역사를 강조하는 아우구스티노적 신학 명제가 강조되는 나머지 신자들의 개별 인격이 독자적 존재가 되도록 자유롭게 하는 성령의 내주(內住)에 대해서 공언하는 분위기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셋째로 성자 시대 이후에 성령의 시대에 대해서 언급한 중세 피오레의 요셉 수도원장을 거슬러서 예수 그리스도를 넘어서는 구세사적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고 규정하는 분위기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카스퍼는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성령을 통한 새로운 창조를 강조한다. "성령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화는 죽은 문자의 양식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유의 양식 안에서 발생한다.… 성령은 우리에게 늘 반복해 그 새로움 안에서 이 새로운 것을 자유에 맡긴다. 성령은 늘 새로운 것의 하느님으로부터 열린 공간이며 새로운 존재의 늘 새로운 힘이다."

카스퍼는 교회를 "성령의 성사"로 지칭하기도 한다. 성령의 성사로서 교회 이해는 성령과 교회의 관계를 폐쇄적으로 파악하는 입장에 비해 본질적으로 개방된 입장을 견지한다. "교회는… 종말론적 하느님 나라가 가시적으로 돌입할 때까지 와 있는 실재이다.… 교회는 한 번은 전체 실체를 포괄하게 되고, 교회 밖에서도 어디서나 숨겨진 가운데 돌입하고 있는 하느님 다스림의 선취적인 표징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일치 교령」이, 성령이 구원의 중재를 위해 다른 교회적 공동체를 사용하신다고 말할 때, 그로써 우리의 학교 교의학에서는 전혀 해서는 안 됐어야 할 양식으로 성령이 작용하도록 자신에게 허용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카스퍼는 또한 '성령'과 '성사' 개념의 연계를 통해, 그리스도의 성령 작용이 항상 구체적인 가시적 일치로 이끈다고 강조한다. 그는 분열을 극복하려는 교회는 가시적 다양성의 가시적 단일성에로 이르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성령의 성사인 교회 안에서 단일성이 다양성 앞에 위치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개진한다. 여기에 보편교회와 지역교회 사이의 관계규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안에서 드러난 라칭거와 카스퍼 사이의 입장 차이의 핵심이 있다. 그는 다양성에 앞선 단일성의 존재론적 우선성을 주장하는 라칭거와는 달리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분리불가능성을 지시하면서 '성령의 성사'로서 이해된 교회의 삼위일체적 성격에 따른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상호침투성을 말한다. 즉 많은 지역교회들이 단지 하나인 교회의 한 부분이나 구역에 그치지 않고, 이들 안에서 하나인 교회가 구체적으로 현존한다고 보는 것이다.

카스퍼는 성령의 성사로서의 교회 개념의 장점으로 교회에는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것, 새로운 것, 계획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제조할 수 없는 것" 등이 속하는 사실을 꼽는다.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작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새로움 안에서 항상 되풀이해 새롭게 현재화하는 데에서 이뤄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은 죽이는 문자로부터 (자유로운) 자유의 성령이다.… 성령은 교회 안에서 현상 유지의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잠금장치가 아니라 지속적 쇄신의 성령이다."
 

한국교회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애정

끝으로 카스퍼가 한국교회에 비상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음을 밝혀야 할 것 같다.

그는 지난해 10월 방한, 며칠간 머물면서 자신은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같이 '아시아 복음화'가 제3천년기 보편교회의 최대 도전이자 과업이 돼 있는 현 상황에서, 실패한 서구교회를 대체하고 이 과업을 수행할 여건을 제대로 구비한 지역교회로 한국교회를 꼽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서구 선교사들에 앞서 50년 동안 복음을 신앙진리로 스스로 수용하고 박해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일으켜 세우고 지탱하고자 진력한 창설 주역들에 대해 찬탄 어린 경의를 나타냈다. 그는 이들의 시복시성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기에 실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는 큰 신학자이기도 하다.

 

[평화신문, 2013년 11월 17일, 심상태 몬시뇰(수원교구,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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