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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사유하는 커피37: 커피 부자와 가난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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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2-02 ㅣ No.642

[사유하는 커피] (37) 커피 부자와 가난한 마음


상술 가득한 커피계, ‘가난한 마음’ 새겨야

 

 

가난이 미덕일까, 부유함이 미덕일까? 구약 성경에서 부자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만하다고 칭송한다. 풍요롭게 먹고 사는 것을 선하게 살고 있음을 드러내 주는 징표로 보는 것이다. 창세기 13장은 아브람이 가축과 은과 금이 많은 부자였다고 전한다. 욥은 동방인들 가운데 가장 큰 부자였으며, 요셉과 다윗 등 구약시대에 하느님의 자녀로 일컬어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유했다. 그러나 신약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바뀌어 가난함이 칭송을 받는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것보다 어렵다”고 비유할 정도다. 부자에 대한 인식이 왜 이렇게 나빠진 것일까?

 

약한 사람들을 착취해 재산을 불리는 일이 횡행하면서 부자는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전락했다. 반면 이들의 폭정으로 인해 압제를 받고 물질적 결핍을 겪는 가난한 사람들은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대명사가 됐다. 특히 기원전 6세기 유다인들이 바빌론 포로생활로 인해 고통받은 후에는 억압받는 사람 또는 가난한 사람이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의인들로 은유됐다.

 

예수의 시대로 접어들어 가난의 의미는 심오해진다. 가난은 ‘결과’가 아니라 ‘지향점’이라는 메시지가 드러난다. 루카 복음 6장 20절엔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라고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의 말씀이 적혀 있다. 불의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에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고행 같은 일이다. 그러나 ‘가난하게 살아라’는 성경의 말씀은 개인 수준에서 금욕주의 실천을 요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방점은 모든 사람이 잘살 수 있도록 가진 자들이 자선을 베풀 것을 촉구하는 데 찍혀 있다. 가난을 향한 길에 자선과 청빈의 꽃이 핀다. 가난한 자를 돕는 것에 축복이 내려지고 억누르는 것에 불의 심판이 가해지는 것은 결국 ‘공동선’을 이루려는 하늘의 디자인이라 하겠다.

 

부자와 가난을 키워드로 인간사를 풀 때 시간이 흐를수록 인류가 진화한다는 명제는 거짓이다. 인류의 품격은 퇴보하고 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갈수록 쉽지 않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작금의 커피계를 들여다봐도 그렇다. 행복을 전해야 할 커피가 일부의 탐욕으로 인해 되레 우리의 마음을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듯이, 커피의 본질적 가치는 위아래가 없다. 출처가 명확하고 올바르게 관리된 커피는 인격처럼 각각 소중하게 대접해야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향미 잠재력이나 가공 정도에 따라 커피에는 등급이 매겨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평가라는 것이 가격으로 치면, 생두 1kg에 1만 원에서 4만 원가량 차이가 나는 정도이다. 비싸더라도 10만 원을 넘기는 것은 파는 사람도 민망해 했다. 그때는 비싼 값을 받은 재배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성실함의 대가인 만큼 비싸게 팔아서 부자가 되라는 덕담도 뒤따랐다. 하지만 여기에 탐욕에 찬 상술이 판치면서 사정이 바뀌고 있다.

 

얼마 전 생두 450g에 1300달러(약 143만 원)에 팔린 커피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수년 전부터 비슷한 시기가 되면 터져 나오는 뉴스인데, 해마다 가격이 치솟는다. 450g을 볶으면 원두의 무게는 380g 정도로 줄어든다. 한 잔의 드립 커피를 제공하는데 원두 20g가량을 사용한다고 할 때, 이 커피 한 잔의 원가는 7만 5200원이다. 원두 60알이 7g~8g이므로 커피 한 알의 가격이 500원에 육박하는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값에 팔리는 커피의 이면에는 농간을 부리는 부자들의 네트워크가 있거나 여기에 기대어 한몫 챙기려는 상술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하늘나라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조장하는 커피 부자들의 것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가난한 마음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월 31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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