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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헌재의 낙태 합법화 판결의 문제점과 가톨릭교회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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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4-14 ㅣ No.1823

[알아볼까요] 헌재의 낙태 합법화 판결의 문제점과 가톨릭교회의 입장 (1)

 

 

2019년 4월11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형법상의 ‘자기낙태죄’(형법 269조 1항)와 ‘의사낙태죄’(형법 270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습니다. 형법의 ‘자기낙태죄’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며, ‘의사낙태죄’는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를 시술한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낙태죄 위헌 여부는 지난 2012년 8월에도 헌재에서 심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재판관 8명의 의견이 4대 4로 갈리면서 낙태죄가 합헌으로 유지됐으나, 7년 후인 이번에는 재판관 2명은 ‘합헌’, 3명은 ‘단순위헌’, 4명은 ‘헌법불합치’로 의견을 냄으로써 최종으로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것입니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기는 하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르는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고자 법을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헌재의 결정을 말합니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형법의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성이 있지만,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임신 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하도록 함으로써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헌재는 2020년 12월31일까지 개선된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위 조항들은 2021년 1월1일부터 그 효력을 상실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후 형법 개정과 관련된 정부와 국회의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다가 2020년 10월7일 헌재가 정한 시한을 불과 두 달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 되어서야 법무부는 임신 14주까지 전면 낙태 허용, 임신 24주까지는 상담을 전제로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 허용’을 골자로 하는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습니다. ‘사회경제적 사유’란 돈이 없어서, 미혼이라서, 혹은 직장생활에 방해가 되어서 등과 같은 이유를 말합니다. 현재 모자보건법은 강간이나 근친상간, 유전병, 전염병, 산모의 건강 등을 이유로 낙태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위에서 말한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한편 작년 11월 말까지,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자는 권인숙 의원 법안부터, 낙태의 허용범위를 임신 10주 이내로 제한하자는 조해진 의원 법안까지 총 6개의 낙태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데, 국회는 결국 헌재가 정한 시한을 넘기고 법안 논의를 중단한 상태입니다. 2021년 1월1일부터 형법의 낙태죄 처벌조항의 효력이 상실됨에 따라, 현행 모자보건법상 허용하지 않는 24주 이상 태아에 대한 낙태나, 사회경제적 사유를 이유로 행하는 낙태에 대해 법적으로 아무런 처벌을 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교회는 태아의 생명권이 근원적 가치이자 권리임을 지적

 

이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입법 공백을 초래하여 현재 법적으로 태아를 전혀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국회를 비판하고 있지만, 태아의 어느 발달 단계에서의 낙태도 반대하는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 일정 기간 낙태를 허용하는 법을 만들어야 하는 국회의 입법 활동을 촉구하는 것도 모순일 수밖에 없기에, 이 문제를 대처하는데 애매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물론 최소한 낙태죄를 유지하고 낙태의 한계를 정하면, 적어도 22주 내외 이상의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회의 입법 활동을 촉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형법의 처벌조항은 태아를 보호할 최소한의 장치로서, 또 최소한의 윤리적인 원칙을 선언하는 의미에서도 반드시 개정 법률안에 들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초 일정 기간 낙태를 합법화해버린 2019년 4월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자체가 법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헌재는 이를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동등하게 조화를 이루기 위한 판결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태아의 생명권을 회복할 수 없이 일방적으로 박탈해 버린 결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는 2017년 12월부터 헌재의 낙태죄 위헌 결정을 앞두고 ‘낙태죄 폐지반대를 위한 100만 서명운동’을 벌이면서 태아의 생명권이 근원적인 가치이자 권리임을 지적해 왔습니다. 2018년 3월22일 천주교 주교회의는 헌재에 서명지를 전달하며 발표한 탄원서에서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생명의 시점을 늦추려고 하는 시도가 있지만, 우리와 같은 인간 존재의 시작은 당연히 유전자형이 시작되는 순간부터라는 것을 생물학적, 발생학적, 철학적, 신학적 근거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권은 한 인간 생명이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인간에게 생명권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 등이 인간답게 살 소중한 권리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것들이 생명권과 충돌된다면 당연히 생명권이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지난 2012년 낙태죄에 대한 위헌 소송에서 현행 낙태죄가 합헌이라고 결정을 내린 판결문에서 “태아가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母)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되어야 할 뿐 아니라 나아가 “임부의 자기 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하여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결정은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당연한 판단이었습니다.”

 

 

생명을 보호받을 권리는 다른 모든 권리행사의 기본적인 조건

 

이러한 교회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2019년 4월 헌재는 현행 형법상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침해하여 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판결하고 임신 14주까지는 낙태 전면 허용, 그 이후는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태아의 독자생존이 가능한 22주 내외까지는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낙태를 허용하는 법률을 새로 만들라고 주문하였습니다. 2020년 10월7일 법무부가 제출한 형법 개정안도 헌재의 결정과 주문에 충실히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이와 같은 헌재 결정에 대한 논리적이고 윤리적인 반박 논증은 전체 재판관 중 낙태죄가 ‘합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두 명의 재판관의 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소수의견은 다음 호에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헌재의 결정을 마냥 무시할 수 없기에 국회는 머지않아 낙태를 일정 기간 허용하고 처벌하지 않는다는 법안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교회는 신자들에게 먼저 양심에 따라 낙태 대신 출산 선택하라고 호소할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수정된 순간부터 시작되기에, 낙태는 시기를 불문하고 무고한 인간 생명을 고의로 죽이는 행위이므로 사회가 용인해서는 안 되는 부도덕한 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또한 가톨릭 신자들은 자연법과 교회법, 그리고 양심에 따라, 낙태라는 죽음의 문화가 아니라 출산과 태아 보호라는 생명의 문화를 선택할 의무가 있습니다. 인간 생명은 그 자체로 다른 어떠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존엄과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 생명을 보호받을 권리는 다른 모든 권리행사의 기본적인 조건이 됩니다.

 

가톨릭교회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판결은 언젠가 재판관 구성과 사회의 도덕적 인식이 바뀌면 또 달라질 수 있는 판결입니다. 계속해서 이 지면을 통해서 헌재의 각종 판례에서 밝힌 태아의 생명권, 2019년 헌재 판결에서 낙태죄 합헌 의견을 낸 두 헌법재판관의 소수의견,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2019년 헌재의 결정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낙태 합법화 시대에 한국 교회가 추구해야 할 생명 운동의 방향을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4월호, 박정우 후고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알아볼까요] 헌재의 낙태 합법화 판결의 문제점과 가톨릭교회의 입장 (2) 태아의 생명은 자기결정권의 대상 아냐

 

 

2019년 4월11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해 임신 14주까지는 아무런 제한 없이 낙태를 허용하도록 하고, 그 이후부터 22주 내외까지는 상담을 거치면 낙태할 수 있도록 지침을 내렸습니다.

 

헌재 판결문 중 ‘단순위헌의견’을 낸 3명은 구체적으로 “태아가 덜 발달하고, 안전한 낙태 수술이 가능하며, 여성이 낙태 여부를 숙고하여 결정하기에 필요한 기간인 임신 제1삼분기(마지막 생리 기간 첫날부터 14주까지)에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여 그가 자신의 존엄성과 자율성에 터 잡아 형성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 숙고한 뒤 낙태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헌재의 결정은 초기 단계 태아의 생명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기에 부당합니다. 임신 14주까지의 태아의 생명이 단지 덜 발달하고 안전한 낙태가 가능한 시기라는 이유로 그 생명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인간 존엄성에서 나오는 인격의 발현으로서 중요한 가치라면 고유한 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닌 태아의 생명권은 그 인격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이고 우선적인 가치로서 더욱 존중받아야 합니다.

 

초기 단계의 작고 연약한 인간 생명의 생존 여부가 아기의 어머니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결정되는 것도 부당합니다. 우리 중 누구도 과거에 태아가 아니었던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태아로서의 생존권을 보호받지 못했다면 지금 여기에서 존엄한 인간, 자기결정권을 지닌 자율적 주체로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과연 모체와 구분되는 고유한 유전자와 개별적 특성을 지닌 한 인간의 생명이 그 모체인 여성의 가치관, 도덕관에 따라, 즉 임부의 출산 수용 의사 여부에 따라 그 생사가 좌우된다는 것이 과연 합당하고 용납될 수 있는 일일까요?

 

과거 2012년의 헌재는 4명의 재판관에 의한 합헌결정에서 “인간으로 형성되어 가는 단계인 태아는 모체와는 별개의 생명체이고, 생명권의 주체”임을 분명히 밝히며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고 결정했었습니다. 그런데 겨우 7년이 지난 2019년에 이 의견이 두 명의 소수의견이 되어 헌재의 결정이 뒤집힌 것입니다. 언젠가 헌법재판관이 바뀌게 되면 그들의 가치관에 따라 다시 이 결정이 뒤집힐지도 모를 일입니다. 수많은 무고한 생명의 생사가 달린 판단이 이렇게 재판관의 성향에 따라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일까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근본적으로 비교대상이 아냐

 

반면에 2019년 헌재의 소수 ‘합헌의견’은 훨씬 일관성 있고 확고한 윤리적 관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합헌의견’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한계와 태아 생명 보호의 필요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상 낙태할 권리는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고, 헌법제정권력인 국민이 그와 같은 권리를 부여할 의도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근본적으로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낙태는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에 어긋나는 생명침해행위이다. 법질서는 자신의 신체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허용하지도 않는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행사는 타인의 자유 또는 권리를 침해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는 일반적인 한계가 있다. 따라서 태아가 모체의 일부라고 하더라도 임신한 여성에게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소멸시킬 권리, 즉 태아를 적극적으로 죽일 권리가 자기결정권의 내용으로 인정될 수는 없다. …

 

생명의 침해는 회복 불가능하고, 생명에 대한 부분적 제약을 상정할 수 없기 때문에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과제를 이행하기 위하여 국가는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낙태를 금지할 수 있는 것이다. …

 

낙태는 생명에 대한 고의적인 파괴행위이므로, 국가의 생명보호의무는 임신한 여성의 태아에 대한 침해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태아와 임신한 여성이 매우 특별한 유대관계를 갖는다는 점은 분명하나, 태아가 모체와는 별개의 독립된 생명인 이상 태아의 모가 태아의 생명을 해치는 자기낙태 행위의 경우에는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법질서는 태아에게 그 존재 자체만으로 생명권을 보장하는 것이지, 태아의 모의 수용을 통해 비로소 생명권 보장의 근거를 갖는 것이 아니다.”<재판관 조용호, 재판관 이종석의 합헌의견, 6(1)(가)>

 

 

아기를 없애지 않고 키울 수 있도록 인식과 사회 조건 바꿔야

 

이 ‘합헌의견’이 바로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지켜왔던 생명 중심의 가치관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만에 이것이 소수의견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이제 사법부의 최고기관에서 낙태를 실질적으로 완전히 허용하는 법을 만들라고 강제하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게 될지 심히 우려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자연법적인 권리”, “근원적인 권리”로 여겨졌던 인간 생명은 어느 시기부터인가 강자의 논리에 의해 상대화되고 주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태어난 인간과 태중에서 인간의 초기 생명체로서 자라는 임신 14주 태아의 생명 보호 사이에 차이를 두어야 할 윤리적으로 분명한 근거는 없습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태아는 너무 작고 약해서 자신을 방어할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019년 헌재가 생명이 시작된 배아, 태아를 법적으로 “독립된 생명권의 주체”이며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으로 주어진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고 선언하면서도 전적인 생명 보호를 하지 않고 14주, 22주, 출생 등으로 시점마다 차별을 두고 그 생명권을 무효화시키는 결정을 내린 것은 참으로 불합리하고 비윤리적인 처사입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위의 ‘합헌의견’이 밝힌 것처럼 타인의 권리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계 내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여성이 임신하기 전 자신의 성적 행위에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원하지 않은 임신과 낙태를 예방하는 것이 진정한 책임 있는 행동입니다. 이미 본인의 결정으로 성관계 후 임신이 이루어졌다면(강간은 예외지만), 자신과는 구별되는 고유한 인간으로 존재하기 시작한, 더구나 자신의 자녀인 그 무고한 생명을 수용하고 보호하는 결정만이 헌법상 인간존엄성에 근거를 둔, 자율성을 행하고 인격을 실현하는 참된 ‘자기결정권’의 행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낙태의 실상은 결국 임부가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약자인 태아를 희생시키는 일입니다. 태어나면 아기도 엄마도 불행할 것이라는 임의적인 판단이 태아의 생명을 제거할 명분이 될 수 없습니다. 이미 임신된 아기는 그 삶을 시작했고, 태어나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원하지 않거나 양육이 어렵다고 낙태를 허용하여 아기를 없애려고 할 것이 아니라, 아기를 제대로 키울 수 없게 만드는 잘못된 인식과 사회적 조건을 바꾸는 일이 우선이 아닐까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5월호, 박정우 후고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알아볼까요] 헌재의 낙태 합법화 판결의 문제점과 가톨릭교회의 입장 (3) 임신 22주 내외까지의 ‘사회경제적 사유’ 낙태 허용의 문제

 

 

2020년 10월 발표한 형법과 모자보건법에 대한 정부 개정안의 핵심은 임신 14주 태아 낙태는 무조건 허용, 15주~24주 태아의 경우는 정해진 절차에 따른 상담과 단지 24시간의 숙려기간을 거치면 낙태를 해야 할 ‘사회경제적 사유’(미혼이라서, 학업이나 직장생활에 방해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등의 이유)를 증명한 것으로 간주하고 낙태를 허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임신 15주-24주의 태아 낙태는 임신 14주 이하보다 임부에게 훨씬 위험한 시술임에도, 단지 상담과 24시간 숙려기간만 거치면 허용하겠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더구나 연속적인 발달과정에 있는 생명을 14주와 15주, 24주와 25주 등 특정 시점을 전후로 생명의 보호 정도를 달리한다는 것 자체도 어떤 윤리적이거나 과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조치이기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임신 24주까지의 낙태를 실질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이 조항에는 작고 연약한 태아가 태어나서 살아갈 권리에 대한 존중은 전혀 없습니다.

 

2019년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결정의 또 다른 문제점은 WHO와 산부인과 학회의 입장을 근거로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로 “22주 내외”를 제안하면서, 이 정도 기간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보장할 수 있는 충분한 시기라며 낙태를 허용하도록 권고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태아의 “독자적 생존 능력”이라는 낙태 허용 기준은 과연 합리적이며 윤리적일까요?

 

형법상 낙태 처벌조항을 합헌이라고 결정했던 2012년 헌재는 이미 생명 보호의 기준으로 흔히 제시되는 태아의 독자적 생존 능력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냈었습니다. 즉 “태아의 생명 보호는 인간으로 될 예정인 생명체라는 이유 때문이지 정신적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므로, 독자적 생존 능력이 낙태 허용의 기준이 될 수 없”고, 인간 생명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습니다.

 

2019년 헌재 판결 중 소수 ‘합헌의견’을 냈던 두 사람의 입장도 이와 같습니다. 의학의 발달로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의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고, 생명권 보호는 생명의 단계에 따라 차등을 둘 근거가 없으므로, 형법의 ‘자기낙태죄’ 조항이 태아의 발달 정도와 무관하게 임신의 전 기간에 걸쳐 태아의 생명권을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우선해서 보호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낙태 허용은 무책임한 생명경시 풍조 유발

 

인간의 존엄성은 ‘독자적 생존 능력’ 혹은 그 사람의 다른 지적, 사회적, 육체적 능력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가치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아기들도 역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는 없습니다. 2019년 헌재의 ‘헌법불합치의견’이 태아의 ‘독자적 생존 능력’의 여부를 따지는 논리는, 식물인간 등 기계나 타인에게 의존하는 사람, 장애인 등 남에게 의지해야 하는 사회적 약자의 인격과 생명권은 마음대로 침해할 수 있다는 강자의 논리로 연결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15주~24주 사이 어느 정도 성장한 중기의 태아를 임부에게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을 때 낙태를 허용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이는 “돈이 없어서…”, “직장 때문에…”, “미혼 임신이라서…”, “더 이상 낳기 싫어서…”와 같은 주관적인 부담감, 혹은 양육을 위한 불편과 희생을 감내하기 싫다는 자기중심적 이기심 때문에 태아 생명의 희생을 허용하기로 한다는 것이고, 그만큼 태아 생명의 가치는 평가절하되고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되는 것입니다.

 

2019년 헌재에서 소수의견을 낸 두 재판관은 태아가 여성의 삶에 불편을 끼친다는 이유로 제거하려는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의 허용은 안락사, 고려장 등 불편을 주는 노인이나 말기 환자들도 같은 논리로 제거할 수 있다는 사고와 이어질 수 있고, 결국 무책임한 생명경시풍조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또한 출산과 육아가 공동체를 유지하고 공동선과 개인의 완성에 이바지하는 중요한 가치라면 육아를 어렵게 만드는 사회경제적 문제들과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 문화의 문제들을 먼저 해결하려고 노력해야지, 죄 없는 소중한 생명을 없애버리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생명 존중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가야 할 올바른 방향입니다.

 

결론적으로 형법 및 모자보건법에 대한 정부의 개정안은 헌재의 판결 취지를 충실히 따랐지만, 헌재의 결정문에서는 태아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라고 표현하며 태아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면서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태아의 생명을 파괴하는 낙태를 허용하라는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헌재의 결정에 대해 우리는 전혀 찬성할 수도 없지만, 최고 사법 권위의 결정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시기의 낙태도 무고한 인간 생명을 죽이는 행위이므로 찬성할 수 없는 교회 공동체는 이제 일정 기간의 낙태가 합법화된 시대에, 새롭게 생명의 존엄성의 가치를 고양하고 실질적으로 낙태를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출산 친화적인 환경 조성으로 낙태 선택하지 않는 시대 되길

 

앞으로 새로운 낙태 관련법 제정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낙태 가능 시기가 최소한으로 줄어들 수 있도록 애를 쓰되, 어떤 시기의 낙태이든 (14주 이내라도) 반드시 상담소에서 여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상담 과정이 필수적으로 제공되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상담 과정을 통해서 여성들은 태아가 고귀한 인간 생명임을 인식하고, 낙태 시술의 실상과 후유증의 위험을 인지하고, 처음에 자신이 낙태를 생각하게 했던 사회경제적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용감하고 지혜롭게 맞설 수 있도록 돕자는 것입니다.

 

또 낙태를 원했던 여성들이 상담을 통해 마음을 바꾸어 출산을 결심하기만 하면, 사회 공동체가 제공하는 새 생명과 산모를 위해 물질적, 심리적, 사회적 도움과 지지를 통해 충분히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서, 궁극적으로 출산을 선택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생명운동 방향은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와 가치관을 새롭게 정비하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태아의 생명과 임신한 여성의 모성이 함께 보호받고 환영받는 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익명출산법’을 제정하여 미혼모가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지 않고도 출산하여 입양을 보낼 수 있게 하고, ‘다자녀지원법’을 통해 다자녀 가정에는 세금, 공공시설 이용 등에서 큰 혜택을 누리게 하고, 직장 여성을 위해서는 안전하고 질 높은 어린이집을 확충하고 직장에서 눈치 보지 않고 출산휴가와 육아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출산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낙태를 허용하는 법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우리 사회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출산 친화적인 제도와 정책의 입법 활동을 통해, 언젠가는 굳이 임신한 여성들이 낙태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시대를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그때야말로 진정으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동시에 조화롭게 지켜지는 날이 될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6월호, 박정우 후고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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