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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25: 크리스토프 쇤보른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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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12-01 ㅣ No.365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25) 크리스토프 쇤보른 (상)

「가톨릭교회 교리서」편집 이끈 최고 신학자이자 사목자



크리스토프 쇤보른(Christoph Maria Michael Hugo Damian Peter Adalbert Graf von Scho"nborn)은 누구인가? 20세기의 다른 위대한 신학자들에 비해 아직은 낯선 이름이지만, 사실 그는 로마 가톨릭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친숙한 사람이다. 바로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그의 손을 거쳐 최종 편집됐기 때문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5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임시총회에서 요청한 교리서를 편찬하기 위해 이듬해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책임을 당시 신앙교리성장관 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 추기경에게 맡긴다. 교리서편찬위원회는 세계 각국의 주교와 전문가들과 협의해 작업을 진행했고, 마침내 1992년 교회의 신앙 진리를 제시하는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승인, 공포된다. 이어 1993년부터 다양한 제안 사항을 수렴하고 통합해 1997년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라틴어 표준판이 출간됐다. 이 교리서는 "가톨릭 교리를 온전하고 완전하게 설명함으로써 교회가 일상생활에서 고백하고 거행하며 생활하고 기도하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라틴어 표준판 승인과 공포에 관한 교황교서 '큰 기쁨'). 쇤보른은 라칭거 추기경에게 교리서 편집인로서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는데, 그의 신학과 사목과 영성이 교회 정신에 매우 부합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생애와 사목활동

쇤보른은 1945년 1월 22일 보헤미아 리톰녜리체 서부 스칼겐 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신성로마제국의 여러 공직자와 가톨릭교회의 고위 성직자를 무수히 배출한 명문 집안이다. 그는 1963년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해 파리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보른하임과 빈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한 후 소르본대학교에서 동방 그리스도교를 연구했다. 1970년 12월 27일 빈에서 사제품을 받고, 레겐스부르크 대학교의 요제프 라칭거 문하에서 신학을 심화 연구하고 파리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유캣

이후 1975년부터 1991년까지 스위스 프리부르대학교에서 교의신학과 동방그리스도교신학을 가르쳤다. 1980년 그는 국제신학위원회 위원이 됐고, 1987년 가톨릭교회 교리서 편집자로 위촉됐다. 1991년 빈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그는 1995년 교구장 주교가 됐다. 199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됐고, 신앙교리성, 동방교회성, 가톨릭교육성, 교황청 문화평의회 등에서 다양하게 활동했다. 현재 2011년 새로 설립된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위원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사목자와 신학자로서 가톨릭교회와 세계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쇤보른의 뛰어난 사목적 역량과 신학 활동, 영적 가르침에 매혹을 느낀 많은 이들은 최근 두 차례 교황 선거에서 그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했다. 2005년 선거에서 개혁적인 성향을 지닌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의 쇤보른은 주요 교황 후보로 꼽혔고, 2013년 선거에서는 베네딕토 16세의 업적을 효과적으로 계승하며 보편교회의 일치를 증진할 이로 그의 교황 즉위를 예상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라칭거는 신학 교수 시절 많은 신학자와 사목자를 배출했는데, 그의 제자들은 그룹을 형성해 매년 시의적절한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2013년의 토론 주제는 '세속화의 상황에서 하느님 물음'이었으며, 쇤보른은 이 그룹을 이끌어 가는 대표로서 현대 신학의 심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빈대교구장, 복잡한 사목 환경

빈대교구장이 된 후 그는 어렵고 복잡한 사목 환경에 처한다. 오스트리아교회는 극단적 전통주의자와 급진주의자들이 공존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가 교회다'(Wir sind Kirche) 운동이 이곳에서 출범했는데 현재 여성사제 허용과 결혼한 사제의 직무 복귀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최근 쇤보른은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의장으로서 '사제 발의'로 알려진 급진적 성직자 운동과 마주했다. 2005년 시작한 이 운동은 오스트리아 성직자 10% 이상이 참여, 여성도 사제직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사제 독신제는 개인의 자유에 맡기도록 하고, 이혼 후 재혼한 가톨릭인과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이 영성체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식하기, 신앙을 심화하기 위한 자극」

2011년 '사제 발의'는 교황청에 대한 '불순종 운동'을 전개했고, 쇤보른 추기경은 이들을 만나 대화하고 경청하면서도 그들의 주장 자체를 공식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2012년 9월 그는 "사제 독신제를 지지하며 사제직을 남성에게 국한한다"고 재확인하며, 사제서약에 위배되는 불순종 운동을 계속하는 이는 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쇤보른의 이러한 자세는 교황청에서는 환영받았지만 급진주의자들에게는 반발을 샀다. 그러나 그는 교황청에 대해 건전한 비판을 아끼지 않으며, 동시에 전통주의자 주장에도 동조하지 않는다.


2009년 린츠교구 보좌주교로 게르하르트 바그너 몬시뇰이 임명됐는데, 그는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타리나가 동성애와 낙태에 대해 하느님이 내린 형벌이라고까지 발언하는 극단적 인물이었다. 그의 주교 임명은 교구 사제들이 반대하고 오스트리아 주교회의에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쇤보른은 긴급히 로마에 우려 의견을 표명했고 이후 바그너 몬시뇰은 스스로 사임했다. 쇤보른과 주교단은 이 사건에 대해 교황청의 일방적인 주교 임명을 비판하며 교회의 성사적 본질을 강조했다.

같은 해 교황청은 교회일치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르페브르 추종 주교들의 파문을 철회했는데, 그중에는 나치의 유다인 학살을 부인한 리처드 윌리엄슨 주교도 포함돼 있었다. 교황청 의도와는 달리 이 사건으로 오스트리아와 유럽의 교회는 큰 충격을 받고 가톨릭 신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쇤보른 추기경은 교황청 결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신자들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사목적 노력을 기울였다.

사제의 유아 성추행 사건으로 전 세계가 시름하던 때, 2010년 교황청 전임 국무원장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은 공적 자리에서 이 사건을 말하는 것은 '쓸모없는 잡담'이라고 발언했다. 쇤보른은 그가 이 위기에 대해 아무런 이해나 감각도 없다고 몹시 질타했다. 후에 교황청은 소다노 추기경과 쇤보른을 함께 불러 모았고, 소다노는 그 사건에 대해 큰 아픔을 느끼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는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의도였다고 해명한다. 과거 교황청은 사제 추문에 대해 진상규명보다는 은닉하고자 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 빈대교구도 유아 성추행 사건에 연루됐는데 쇤보른은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하려 했지만, 교황청 국무원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아무튼 현재 교황청은 '불관용' 원칙으로 그러한 사건에 대처하고 있다.


사목적 관심사

쇤보른의 주된 사목적 관심사는 교회의 세속화와 교회 구성원의 교회 이탈 문제다. 그는 "우리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사람들이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을 인식하고 수용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는 청년들이 교회를 더욱 친숙하게 느끼도록 전통주의자들 반대를 무릅쓰고 전례 중에 조명을 설치하고 풍선을 띄우고 록 음악을 허용하는 등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또 성 스테파노주교좌성당에서 월 1회 교리강좌를 실시한다. 그리스도교의 심오한 진리를 간결하고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직접 대중에게 전달해 하느님 신비에 더욱 가까이 접근하도록 초대하는 자리다. 2005~2006년에는 창조와 진화에 관한 강좌를 개최하기도 했다. 진화 과학이론과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 신앙은 오히려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내용으로, 창조 신앙은 진화 과학을 습득하면서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강의는 2007년 「목적인가 우연인가? 성찰하는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창조와 진화」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목적인가 우연인가? 성찰하는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창조와 진화」

또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에서 출발해 그리스도의 생애 신비를 다룬 2000년 대희년 강의도 활자화돼 중요한 영성서적으로 손꼽힌다(「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식하기, 신앙을 심화하기 위한 자극」, 2002). 그밖에도 2008년 하느님 자비주간의 강연 역시 「하느님의 자비를 입었습니다」(2011)라는 책으로 출간, 자비에 대한 깊은 신학적 성찰을 제공했다. 「행복한 생활」(2011)에서는 세상의 척도에 따른 행복과 구별되는 그리스도인의 참 행복에 대해 찬찬히 설명했다. 이와 함께 그는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책임편집인으로서 교리서를 주제별로 간략하고 명료하게 해설해 일반 신자들이 신앙 진리의 정수를 이해하는 데 기여했다. 이 책은 「가톨릭교회 교리서 해설」(김정우 옮김, 대구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3)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쇤보른은 청년들 사정에 귀 기울이며 청년을 위한 교리서도 편찬했다. 오스트리아 주교회의는 2011년 세계청년대회를 맞이해 「유캣」(YOUCAT, Youth Cath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교리서를 출간, 「가톨릭교회 교리서」 내용을 청년들의 문화와 정서에 알맞게 전달했는데, 쇤보른이 총책임자였다. 이 교리서는 교회의 주요 가르침을 친근한 방식으로 풀이해 전 세계 젊은이들이 애독하고 있다.

빈대교구는 유럽의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사제와 신자들이 급감하는 추세다. 하지만 쇤보른은 여기에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초대교회 공동체 경험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였다. 기존의 방대하고 비대한 교회 조직과 건물을 재편성해 본당을 통합ㆍ소규모화하며, 비어 있는 본당 건물은 평신도단체에 넘겨주고 가정과 직장이 신앙공동체가 돼 새로운 복음화에 이바지하도록 애를 쓰고 있다.

빈대교구장이자 추기경으로서 쇤보른의 뛰어난 사목적 역량은 분명 자신의 영성과 신학에 바탕을 둔다. 그에게 사목과 영성과 신학은 통합적으로 작용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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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우재 신부(부산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 1998년 사제수품(부산교구)
▲ 1999~2009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교의신학 전공)

[평화신문, 2013년 12월 1일,
노우재 신부(부산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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