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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목] 지식인, 북한학자, 그리고 평화와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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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8-03 ㅣ No.859

[통일을 준비하며] 지식인, 북한학자, 그리고 평화와 통일



한반도에서 북한을 연구하는 지식인의 정체성은 조금 혼란스럽다. 지역 연구의 대상으로 북한은 될 수 있는 대로 객관적이고 중립적이고 엄정한 관찰의 대상이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최대한 과학적 분석으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러나 연구와 분석의 대상인 북한은 다른 한편으론 우리와 대치하고 있고, 또 언젠가는 더불어 살아야 할 민족의 반쪽이다. 관찰의 대상인 북한은 객관적 시선이 필요하지만, 민족의 반쪽으로서 북한은 연구자의 가치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우리 동포이다.

이른바 지식인의 ‘존재 피구속성’(지식이 사회적 상황에 의해 규정된다는 사고방식. - 편집자주)이라는 현실적 제약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바로 한반도에서의 북한 연구일 것이다. 북한을 타도와 적대의 대상으로 간주하거나 지구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악마화된 대상의 가치가 개입될 경우, 지식인의 북한 연구는 그 방향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북한을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언젠가는 보듬고 같이 살아야 할 공존 대상의 가치가 개입될 경우, 연구자의 북한 관찰은 또 다른 방향으로 정형화될 것이다.

예컨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을 접하면서 북한 연구자라는 객관적 사회과학도라면 북한의 수령제와 후계체제, 그리고 체제 내구성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할 때, 김정일의 권력 승계와 이후 북한 정권의 안정성에 그리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북한 연구자의 대부분은 김정일 정권이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객관적 관찰이 아니라 주관적 기대와 연구자의 자의적 가치 개입이 불러일으킨 가장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 타도의 대상이자 존재해서는 안 될 체제로 여길 경우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엄연한 북한의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반대로 북한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북한 당국의 공식 담론을 금지옥엽으로 수용하는 친북적 성향의 가치 개입이 우세할 경우에도 객관적 현실의 북한 연구는 다른 의미에서 제한받게 된다. 예컨대, 1991년 북한의 국제연합(UN) 동시 가입 결정이 발표되기 전까지도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북한이 지속해서 강조해 왔던 분단 고착화를 위한 유엔 동시 가입 반대 견해만을 믿고 북이 그럴 리가 없다는 철석같은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 주장과 선전용 담론과 북한이 택하는 정치 현실은 충분히 동떨어질 수 있는 것이 바로 북한 정권의 현실이다. 공존과 협력과 장차 통일의 대상으로서 북한을 넘어 북한의 견해를 무조건 지지하고 수용하는 친북적 가치 개입 또한 북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편향의 이념인 셈이다.


북한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핵심

북한의 현실을 분석하고 설명할 때 우리는 지금도 객관적 실제와 가치 지향적 전망이 공존하면서 충돌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김정은 후계체제 등장에서도 주관적 가치가 지배하는 전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최근 떠들썩한 관심을 끌었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숙청과 관련해서도 김정은 정권에 대한 북한 학자의 전망은 제각각이었다.

한반도에 사는 북한학자로서 그리고 정치학자로서 현영철 숙청과 관련해 그나마 바람직한 접근은 김정은 정권의 현실적 안정성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동시에 정치학적 입장에서 공포정치의 미래를 여러 모로 전망함으로써 현실에 토대한 미래 예측과 바람직한 대북정책을 고민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북한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은 북한 연구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이를 토대로 북한 체제와 정권의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최대한 객관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이끌고 촉진해야 할 북한의 변화 방향과 한반도 정세는 모름지기 ‘평화’를 증진하게 하는 주관적 가치가 우선되어야 한다.

김정은 체제의 미래는 세상 이치가 대개 그러하듯 안정과 불안정의 측면이 공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맹목적 안정성을 강조하는 것도, 근거 없는 불안정과 붕괴 가능성만을 고집하는 것도 현실에서는 동떨어진 분석이 될 것이다. 오히려 핵심은 각각의 전망에 대비한 평화 지향의 대북정책 방향을 일관되게 고수하는 것이다.

김정은이 구사하는 이른바 공포정치의 미래는 안정과 불안정이 공존한다. 공포정치는 가공할 정도의 두려움을 조장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하고 행사하는 방식이다. 전체주의에서도 가장 가혹하고 초법적인 권력행사를 통치 기반으로 삼는 전제정치가 이에 해당한다. 지배자가 심어주는 두려움은 피지배자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한다.

마키아벨리도 군주는 백성에게 사랑을 주기보다 두려움을 주는 것이 통치에 더 효율적이라고 설파했다. 그래서 김정은의 공포정치는 권력층을 장악하고 그들의 충성심과 복종을 끌어내는 데서 나름대로 성공하고 있다. 극도의 두려움은 저항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포정치가 오래 지속하거나 지나치게 잔인무도하거나 특히 가진 것마저 빼앗아갈 때 지배자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순간 미움으로 바뀐다. 두려울 때는 복종하지만 두려움이 지나쳐 지배자를 미워하게 되면 저항이 일어나면서 통치는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두려움이 미움으로 바뀌지 않도록 군주는 사랑과 은혜를 베푸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김정은식 공포정치와 우리의 대북정책

김정은 체제도 공포정치를 오랫동안 무도한 방식으로 지속한다면 두려움은 미움으로 바뀌고 권력층은 저항하게 될 것이다. 특히 권력층과 백성들의 가진 것을 빼앗아갈 때 두려움은 미움으로 바뀌게 된다.

김정은식 공포정치의 미래에 우리가 관심을 두는 이유는 앞으로 김정은 체제의 안정 또는 불안정 상황에 맞게 우리의 대북 접근과 평화통일의 방략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가 안정적이라면 우리는 북한을 맞춤형으로 관리하면서 개혁개방과 내부의 변화를 위한 유도에 대북정책의 목표를 맞추어 나가야 한다.
 
공포정치를 통해 권력의 안정성이 보장된다면 우리의 대북정책은 도발방지와 평화증진에 관심을 가지고 북한 내부로부터의 변화 유도에 힘써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과 교류협력 확대로 한반도 평화를 증진하면서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끈다는 이른바 대북 포용정책이 교과서에 나오는 모범답안이 된다.

반대로 김정은 정권이 불안정하다면 우리의 대북정책은 정치변동 이후 평화통일이 가능하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극단적 비정상적 공포정치는 권력층의 저항을 가져오고 두려움은 미움으로 변질하여 김정은의 통치는 무력화될 수 있다. 이른바 급변사태의 정치적 변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의 몰락과 권력교체가 종착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권이 무너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무너진 이후가 더 중요하다. 김정은 정권의 불안정성을 전제할 경우 우리의 대북정책은 정치 변동 이후 우리가 바라는 평화통일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정상적 경로의 교과서 답안 외에도 비상시를 대비한 ‘비급서(備急書)’도 준비해야 한다.

정치 변동 이후 남쪽과의 통합을 원치 않고 오히려 더 강경하고 더 친중(親中)적인 대체권력이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다. 급변사태로 김정은 체제가 붕괴되더라도 독일식의 자발적인 흡수통일이 저절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날 이후 북한 주민과 권력층이 스스로 한국을 선택함으로써 평화적인 통일이 가능해지려면 오랫동안 화해협력과 관계 확대를 통해 북한 구성원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교류협력의 분야를 확대함으로써 남북관계를 통해 경제적 혜택을 얻는 세력이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

결국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과 급변사태를 상정하더라도 우리의 대북정책은 교류협력의 확대로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는 대북 포용정책일 수밖에 없다.

결국 공포정치를 통한 김정은 체제의 안정 또는 불안정의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바람직한 대북정책은 교류협력과 관계개선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대북 포용정책이 안정적 공존의 경우나 불안정한 급변의 경우 모두에 합당한 정답이 되는 셈이다. ‘포용’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engagement’가 ‘관여’ 또는 ‘개입’으로도 해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객관적으로 분석하되 평화에 이바지해야

한반도에 사는 북한 연구자는 객관적 관찰의 대상으로서의 북한, 그리고 언젠가는 평화롭게 같이 살아야 할 민족의 반쪽으로서의 북한을 균형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전망과 대북정책 방향은 무엇보다도 평화통일이라는 가치가 최우선이어야 한다. 적대와 대결이 커지고 갈등과 대립이 확대되는 것은 결코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

김정은 정권의 안정 또는 불안정의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화해와 협력, 대화와 공존의 포용정책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 또한 그 방향만이 한반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가 없는 통일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독일 통일이 부럽고 아름다운 것은 한쪽이 붕괴하고 다른 쪽이 흡수해서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된 국가가 재결합하면서 유일하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평화로운’ 통일이기 때문에 축복이었다.

지금 우리의 북한 분석과 변화 전망 그리고 대북정책 방향도 철저히 한반도의 평화를 전제한 통일과 연관되어야만 한다. 지속되고 있는 남북 적대와 심화되고 있는 남남 갈등의 우리 자화상은 평화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평화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현실적으로 평화를 조금이라도 신장시켜야 하는 북한학자로서의 역할은 여전히 소중하다. 군사주의와 안보 담론이 득세하고 남북의 기 싸움과 상호 적대가 지속되는 지금, 북한학자로서 북한이라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되 늘 한반도 평화에 이바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김근식 - 경남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이자 서울시 남북교류협력 위원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일본 게이오대학교 방문교수를 지냈다.

[경향잡지, 2015년 7월호, 김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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