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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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명동 사순절 특강4: 사순절과 진정한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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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3-30 ㅣ No.121

[명동주교좌성당 사순특강] (4) 사순절과 진정한 휴식

 

 

우리 시대 사람들이 잃어버린 귀중한 인생의 가치 중에 하나인 '일과 여가'를 요셉 피퍼(Josef Pieper)의 「여가와 경신(敬神)」(가제)을 중심으로 생각하고자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 같다. 하지만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 "우리는 여가를 갖기 위해 여가 없이 지낸다"고 했다.

 

노동에는 활동력, 극도의 긴장이 들어 있다. 그것은 긴장이 가미된 능동적 활동이다. 정신적 인식도 순전히 행위이고, 그래서 하나의 노동이라는 결론이다. 노동에는 수고가 따르며, 유용한 것이고 사회적 기능이 있다. 현대인은 정신적 인식도 유용해야 하며, 실용성 없는 지식은 가치가 없다고까지 여긴다.

 

하지만 이러한 노동상과 반대되는 것이 '여가'다. 여가는 첫째, 활동성이 없으며, 긴장이 없고, 내적으로 분주하지 않다. 일이 되도록 그대로 두며, 고요함과 침묵을 의미한다. 또한 수용적으로 감지하는 태도이고, 존재하는 것들 안에 시선을 둔다. 그것은 세상의 신비 성격을 인정한다. 사물들을 그대로 둘 수 있는 창조주에 대한 맹목적 신뢰에서 오는 든든한 마음 같다.

 

둘째, 여가는 경쟁하는 등 수고의 마음이 아니라 긍정하고 수락하며 즐기는 마음, 잔치를 벌이는 마음에서 나온다. 인간이 자신의 참된 본질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의미와 일치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들을 즐기시고, 모든 것을 아주 좋다고 하신 것처럼, 인간의 여가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현실 세계를 내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즐거움과 동의의 마음으로 그 안에 잠기는 것을 포함한다.

 

셋째, 눈앞의 유용성을 벗어나 전체를 비춰본다. 여가는 어떤 무아지경이나 황홀경 영역 속에서 이뤄지고, 여가 속에서 사람은 순수 인간적인 것을 벗어나 신적인 영역과 접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가를 "인간은 인간으로 있는 한 여가의 삶을 살 수 없고, 오직 신적인 것이 인간 안에 사는 한에서만 그렇게 살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은 본래 인간적인 것의 영역을 거듭 떠남으로써 참으로 인간적인 것을 유지한다.

 

그만큼 여가의 최고 형태는 잔치이고, 잔치의 최종 기반은 하느님 흠숭이다. 잔치에서는 긴장 없음, 수고 없음, 유용성을 떠남이 하나로 모인다. 그리고 잔치의 최종 기반은 하느님 흠숭이다.

 

일상적이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에 동의하는 것이 잔치 의미인데, 세상에 동의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 세상 창조주를 기리는 것이다. 벌일 수 있는 잔치 가운데 가장 잔치다운 잔치는 하느님 찬양이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성전이 공간의 의미라면, 경신은 시간의 의미다. 성전은 밭이나 거주지로 사용됐을 땅 가운데 특정한 공간이 경계선을 긋고 울타리를 치고, 담을 쌓아 선별해 놓은 장소다. 그리고 그렇게 울타리가 쳐진 땅은 하느님 소유가 되고,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농사를 짓거나 살거나 장사하지 않는다. 그 땅은 이용과는 먼 땅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경신행위를 통해 평일에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간으로부터 특정한 시간 구간, 한정된 시간 구역을 따로 떼어내 그 시간 구역을 이용하지 않고 두는데, 이용과는 거리가 멀다. 주일은 그런 시간 구역이며, 경신행위를 위한 시간이다. 그리고 경신행위의 중심에는 희생제사인 미사가 있다. '희생'은 유용성과 가장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물론 날마다 잔치를 벌이며 살 수는 없다. 인간의 노동도 훌륭한 가치를 지닌다. 오늘 주제는 노동이 가치가 없고, 인간이 긴장과 수고로 일상을 열심히 사는 것이 틀렸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은 더 큰 가치 앞에 상대화될 때 인간을 행복으로 이끄는 노동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평일의 노동은 주일의 잔치 정신을 담아야 한다.

 

인간은 '잔치를 벌이면서 하느님과 지내는 가운데' 자신의 참되고 올곧은 모습을 되돌려받는다. 이것이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 길이자 인간이 인격체로, 정신으로 남는 길이다.

 

[평화신문, 2010년 3월 28일, 김진태 신부(한국 가톨릭 교리신학원장), 정리=이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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