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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26: 크리스토프 쇤보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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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12-09 ㅣ No.367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26) 크리스토프 쇤보른 (중)

하느님 나라로 순례하는 교회, 끊임없이 정화 · 쇄신돼야



쇤보른의 영성 강좌
 
하느님의 인간 창조, 그리고 교회
 
쇤보른은 "그리스도교의 사제직은 다른 종교의 사제직과 달리 겸손과 사랑으로 낮추고 내어주고 섬기는 봉사직"이라고 말했다. [CNS]


교황청은 해마다 재의 수요일 직후 일주일간 영성수련을 가진다. 당연히 영성과 사목과 신학에서 깊은 가르침을 전하는 이들이 피정 지도자로 선정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추기경 시절 바오로 6세 교황 앞에서 피정을 인도했는데 이때 피정은 「반대받는 표적」으로 출판됐다.

쇤보른은 1996년 대주교 시절 피정 강사로 초빙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교황청 위원들 앞에서 교회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 역시 책으로 나왔는데(「교회를 위한 삶, 교황님을 위한 사순절 피정 강의」) 한국어 번역본도 있다. 그는 「가톨릭교회 교리서」 책임편집인답게 교리서를 십분 인용하고 해설하며 강연했는데, 피정을 시작하는 첫 마디 역시 교리서 제1항이었다. "스스로 한없이 완전하고 복되신 하느님께서는 순수한 호의로 계획을 세우시고, 자유로이 인간을 창조하시어 당신의 복된 생명에 참여하도록 하셨다"(「가톨릭교회 교리서」 제1항).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는 당신의 생명과 사랑을 전달하시기 위함이다. 인간 편에서 보자면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 생명과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으로 충만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파견하시며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과 사랑을 부여하셨다. 하느님의 아드님은 아버지께 대한 사랑의 순종과 세상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십자가 죽음을 맞으셨고, 그리하여 십자가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이 빛을 내며 우리에게 전해지는 사랑과 구원의 사건이 됐다.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창조됐듯 이제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생명과 사랑으로 교회가 탄생했다. 교회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앞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생명을 받아 완성되도록 모든 이를 불러 모은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창조의 목적이 되고, 교회는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의 질서 안에서 창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죄와 악에 대한 성찰을 꺼린다. 하느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악의 세력에 승리를 거두시며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 죄는 이미 용서받았고 세상 일은 모두 선으로 정향돼 있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충분한 말도 아니다. 죄는 인간의 자유와 하느님의 사랑을 기점으로 생각해야 한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당신과 사랑의 일치 관계를 맺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고 당신의 자유를 부여하셨다. 여기서 사랑은 강제나 억압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자유로이 사랑하고 자유로이 사랑받고 자유로이 응답할 때만 사랑이 실현된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관계를 원하시기에 인간의 자유를 끝까지 존중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하느님과 일치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거나 배척할 수도 있다. 인간의 위대한 자유의 능력이다.

인간의 자유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서 연유한다. 죄는 이 자유를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동기로 사용하는 데서 발생하다. 그래서 "죄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에 대한 모욕이고,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의 단절이며 동시에 교회와 이루는 친교에도 해를 끼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440항)고 교리서는 말한다. 원죄를 의식하고 죄를 인식하면서 우리는 스스로 구원이 필요하다고 절감하게 된다. 십자가 위에서 전달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마음 깊이 수용하며 우리는 죄의 용서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다. 교회는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하며 인류와 세상을 섬기는 구원의 성사다. 쇤보른은 교회를 사랑하기를 촉구한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불완전하고 죄로 얼룩져 있지만,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기에 교회는 그 자체로 거룩하다. 동시에 교회는 이상적이고 완전한 사회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향해 순례하는 하느님의 백성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정화되고 쇄신돼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으로 부활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듯,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기도하고 일하고 고난받으며 하느님 나라의 영광에 들어간다. 우리는 교회의 품 안에서 사랑이 되어 세상에 사랑을 전하고 하느님 사랑의 품 안으로 귀향할 교회의 사람이다.
 

사제의 해에 사제의 직분 되새기며
 
쇤보른 추기경이 지은 「사제로 존재하는 기쁨, 아르스 성자의 발자취를 따라서」 표지.
 

2009년 6월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사제의 해를 선포, 사제들이 내적 쇄신을 통해 현대세계에서 더욱 힘차고 분명하게 복음을 증거하도록 격려했다. 이어 9월 프랑스 아르스에서 일주일간 국제 사제피정이 열렸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제 1000명 이상이 본당 사제의 수호성인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의 고장에서 사제의 신원과 사명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숙고했는데, 이때 피정을 인도한 이가 쇤보른이었다. 그의 피정 강연은 「사제로 존재하는 기쁨, 아르스 성자의 발자취를 따라서」로 활자화됐다. 아르스의 성자는 "사제직은 예수님 사랑의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당신 자신을 바치며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께 그리스도교 사제직의 기원이 있다.

사실 초대교회는 사도와 제자들에게 '사제'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그 당시 유다교와 로마 제국 종교의 사제는 권력자이자 재력가였는데, 예수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히브리서에서 해석학적 전환이 일어난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섬기시고자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봉헌하셨다는 점에서 다른 사제들과 확연히 다른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히브 5,10)라고 호칭한다. 그리스도교의 사제직은 다른 종교의 사제직과 달리 겸손과 사랑으로 낮추고 내어주고 섬기는 봉사직이다. 만일 그리스도교의 사제가 탐욕을 부리고 군림하려 든다면 스스로 제국 종교의 사제가 되려는 것이다. 비안네 성인이 아르스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꼬마 아이를 만나 길을 묻고는 말한다. "친구여, 네가 아르스로 가는 길을 내게 알려주었으니, 나는 하늘로 가는 길을 네게 알려주겠다."

사제는 예수님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고 하늘의 영원한 행복을 세상에 전달하는 행복의 봉사자다. 예수님은 자비로운 연민의 마음을 가지셨다. 병든 이들, 굶주린 이들, 가난한 이들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용서하고 치유하고 일으켜 주며 하느님 말씀을 가르치셨다. 자비가 없는 세상은 자기 정당화만 작용하는 황량한 영적 사막일 뿐이다. 고해성사는 용서하며 다시 살아나게 하는 하느님 자비의 성사다.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용서를 받을 때 우리 또한 이웃을 자비로이 용서할 수 있다. 고해성사 집전자인 사제 역시 먼저 고해성사를 겸손하고 성실하게 받아 주님의 은총을 경험해야 하느님 자비의 충실한 봉사자가 될 수 있다. 사제생활의 중심은 성체성사이다. 생명과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 만나는 미사성제는 기쁨과 생명의 원천이다. 그런데 형식적이고 의무적으로 미사가 거행되는 경우가 많다. 쇤보른은 "우리는 과연 어떻게 미사를 준비합니까?"라고 물으면서 기도와 침묵, 묵상을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을 의식하며 미사성제를 정성스럽고 또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거행하도록 사제들을 격려한다.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는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신앙생활에 전념하며 하느님의 기쁨과 행복을 세상에 전할 수 있다.
 

창조 신앙, 진화 과학에 대하여

쇤보른은 2005년 7월 7일자 '뉴욕 타임스'지에 '자연 안에 깃든 계획 찾기'(Finding Design in Nature)라는 짧은 기고문을 게재한다. 무신론은 50년 전까지만 해도 특정 철학자들이 주창했는데, 이젠 유물론적 진화주의자의 신념과 주장이 됐다. 세상은 우연과 필연의 법칙에 따라 스스로 생성하고 발전하며 그리스도교의 창조주 신앙은 종교적 환상에 불과하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6년 교황청 과학 아카데미 총회에서 진화는 "가설 이상의 것"이라고 언급했고, 이에 대해 무신론을 표방하는 신-다윈주의자들은 가톨릭교회가 유물론적 진화주의를 수용 또는 인정했다고 여겼다. 쇤보른은 여기서 분명한 구분을 설정한다. 생명체와 우주 탄생, 발전의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진화론은 과학이지만, 이와 달리 진화 원리에 입각해 처음부터 하느님을 배제하고 세상을 설명하는 진화론은 무신론적 세계관이다. 과학으로서 진화론은 가톨릭교회에서 존중하지만, 이데올로기로서 진화주의는 수용불가하다. 베네딕토 16세는 그의 교황 즉위미사 강론에서 "우리는 우연하고 무의미한 진화의 산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생각에서 생겨났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를 원하셨고 또 사랑하시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필연적으로 존재합니다"라고 밝혔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진화 과학을 존중하고 또 연구를 장려하고자 진화를 가설 이상의 것이라고 언급했고, 베네딕토 16세는 세상을 완성으로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섭리와 사랑을 강조하며 무신론적 이데올로기인 진화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2005년 가을부터 쇤보른은 창조와 진화, 이성적인 신앙을 주제로 빈대교구 주교좌성당에서 1년간 교리교수를 진행한다. 그는 창조 신앙과 창조주의를 구분한다. 창조주의는 창세기 1장 창조 이야기를 근본주의적으로 이해해 이를 우주에 대한 역사 보고서로 전제하고, 6일간의 창조를 근거로 6000년의 지구 나이를 주장하기도 한다. 과학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진화 과학을 배척하는 창조주의 과학은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개신교 근본주의자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 흔히 창조를 믿는지, 진화를 믿는지 하고 물을 때 말하는 창조가 창조주의의 내용이다.

가톨릭교회는 창조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우습게 만드는 논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옹호해서는 안 된다. 이런 논쟁은 이성과 상반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이다. 창조 신앙은 세상의 기원과 목적이 하느님께 있다고 고백하며, 세상에 깃든 하느님 생각과 섭리를 알아보고 우주 만물을 통해 창조주께 경배드린다. 진화 과학은 우주와 생명체의 진리를 더욱 깊이 알도록 하기에, 창조 신앙은 진화 과학의 도움을 받으며 하느님께서 얼마나 지혜롭고 오묘하게 만물을 창조하셨는지 인식해 창조주를 믿는 신앙을 심화할 수 있다. 창조 신앙은 창조주의와 진화주의의 양 극단을 배제하며 진화 과학과 상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평화신문, 2013년 12월 8일,
노우재 신부(부산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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