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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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가정폭력은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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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8-03 ㅣ No.861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준비하며] 가정폭력은 남의 일이 아니다



가정폭력은 가정 구성원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성적,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한 행위를 말한다. 가정 구성원은 배우자, 직계존속과 직계비속, 동거하는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 등으로, 이들 간의 폭력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인 것이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지요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통합 상담소인 우리 가톨릭여성상담소가 하는 일 가운데 여성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과 가해자들에 대한 교정치료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피해자들 가운데에는 그들의 고통에 대한 호소조차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없어 자해하거나 자살을 기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상담소로 오는 도중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도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며 담담히 말하던 한 피해자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그녀는 십년도 훨씬 넘게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이대로 가다가는 죽을 것 같아 결국 경찰에 신고하였다. 법원에서는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보호처분을 내려 남편은 가해자 상담을, 그리고 아내는 피해자 상담을 받는 중이었다.

첫 상담 때 가해자인 남편은 오히려 아내가 맞을 짓을 했다며 때리게 만든 장본인이 더 나쁘다고 주장하였다. 말대꾸를 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아 게으르다는 말로 아내를 비난하며, 때려서라도 고치려 하였다고 한다. 신체적인 폭력에는 언어폭력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러한 폭력은 평생토록 시달리는 정신적 고통까지 수반하게 되는데, 오랫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린 아내는 급기야 자살 충동에까지 이른 것이다.

맞을 짓을 했다고 당당히 말하는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그 아내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며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발소리에 늘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한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폭력 없이 무사히 지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떤다고 호소하였다.

그럼에도 그 지옥 같은 가정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아이들 때문이라고 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는 아이로 자라는 것은 자신이 맞는 것보다 더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없는 데에서 아이가 자신처럼 폭력에 시달릴 것이 뻔한데, 그것은 생각만 해도 더 큰 지옥이라고 덧붙인다.


가정폭력은 남의 가정사

가정폭력의 심각성은, 그것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가해자가 폭력을 중단하지 않는 한 지속된다는 것에서, 그리고 공개된 장소보다 집이라는 실내에서 이루어진다는 폐쇄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정폭력의 가해자를 상담해보면, 많은 가해자 또한 어린 시절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경우가 많다. 가족을 폭력으로 억압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자기는 결코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마음 먹으면서도 결국 똑같은 가해자가 되었음을 스스로도 인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왜 맞으면서도 참고 견디었던 자기의 어머니처럼 살지 않느냐?’며 오히려 아내를 비난하고 자녀들 또한 가정폭력에 울게 만드는 일이 다반사이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대로, 가정폭력은 대물림한다는 이론이 현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 사회의 통념은, 가정폭력은 남의 가정사로 여기고, 거기에 개입하는 것은 개인의 사사로운 문제에 대한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생각한다. 곧, 그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폭력을 가하고 그 폭력을 당하는 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부장적 문화에 빠진 가장은 가족을 소유물로 생각하기에, 때려서라도 자기의 뜻대로 하려고 하고, 가족에게 왜 맞을 짓을 하느냐며 오히려 피해자에게 그 탓을 돌린다. 다른 한편, 여성 피해자가 심한 폭력 속에서도 가정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녀들에게 무책임한 엄마가 되고, 오랜 전업주부로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현실, 설령 맞아죽더라도 누구의 엄마와 아내, 며느리로서 그 자리에 끝까지 있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어머니는 희생의 상징에 불과한가

사회는 어떤가? 어머니는 희생과 봉사, 헌신의 상징이라고 내세우면서,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에 대하여 오히려 그 희생과 헌신을 끝까지 다하지 못했다며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더 나아가 아버지 없는 아이보다 어머니 없는 아이들이 더 비참하다고 피해자들의 죄책감을 부채질하는 경우도 많다.

폭력을 폭력이라 생각하지 못하는, 폭력에 허용적인 가정은 가정폭력이 근절되지 못하는 큰 이유가 된다. 이웃집에서 비명이 들릴 때 다른 가정사라며 모른 척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오죽하면 때렸겠냐며 맞을 짓을 하였을 것이라고 폭력을 피해자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 신고를 하거나 문을 두드려 이웃이 가정폭력을 좌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가정폭력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만일 아내 아닌 다른 여성이 못마땅한 말대꾸를 하더라도 자신의 아내에게 하듯 폭력을 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폭력 뒤 자신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말대꾸 했다며 가차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가해자에게는 이미 피해자가 자신의 동반자가 아닌 소유물인 까닭이다. 그래서 아내는 때려도 구속되거나 위자료를 주지 않아도 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 가해자에게 피해자는 한낱 화풀이의 대상일 따름이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족의 인권

타인에게 폭력을 행하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궁극적으로 그 개인의 인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중한 내 가족의 인권은 왜 생각하지 못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가족은 공기와 같은 존재’라는 말이 있다. 바로 자기와 같은 공간에서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이라는 자리의 역할을 하며 서로에게 꼭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서로 고마운 마음보다는 폭력조차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그릇된 자세이다. 인권은 인간답게 사는데 필요한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이다. 다른 사람의 인권은 물론,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인권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가정폭력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가정폭력을 근절할 수 있는 우선적인 대처는 신고다. 가정폭력을 개인적인 일로만 생각하는 피해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폭력 사실을 감추거나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가해자들은 죄책감 없이 폭력을 일삼게 되고, 그 강도도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신고하면 가해자는 조사받는 과정에서 반복되는 자신의 폭력의 양상에 대하여 생각하게 될 것이고, 보호처분을 받게 되면 개별 또는 집단 상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또한 피해자는 가정폭력상담소 등의 도움으로 자신의 아픔을 덜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누구를 때려서도, 누가 누구에게 맞아서도 안 된다. 그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소중한 가족이어서 더욱 사랑하고, 서로 사랑함으로써 귀하고 귀한 가정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가족 모두 노력해야 하겠다.

* 김은랑 로사 - 가톨릭여성상담소 소장. 12년 동안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피해 여성들을 도와주고 있으며, 상담심리학 박사과정의 수료를 앞두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7월호, 글 김은랑 · 사진 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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