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연중 26 주일-나해-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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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9-27 ㅣ No.500

연중 26 주일 (나해)

 

        민수기 11,25-29      야고보 5,1-6        마르 9,38-43.45.47-48

    2003. 9. 28.

 

한 주간 안녕하셨습니까?

이 시간이 되면 늘 반복하는 인사입니다만, 진정으로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평화와 기쁨을 여러분이 누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가 이렇게 인사를 드린다고 하더라도 여러분 각자가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제 인사도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루가 복음 10장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떠올리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그 집에 살고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집안에 내릴 것’이라는 말씀은 오늘 2003년 9월의 마지막 주간을 보내는 우리에게도 유효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이겠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말씀이 오늘 독서와 복음의 내용입니다.  복음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대로만 실천되는 세상이라면 분명 그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갖추었을 것입니다.  애석한 것의 한 가지는 우리 눈에 불구자가 많이 보이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부탁이나 명령은 그대로 실천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첫째 아무리 둘러봐도 죄를 지었다고 자기 손이나 다리를 잘랐다는 사람도 들은 적이 없고, 그렇게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더 힘들기 때문입니다.  둘째, 꼴 보기 싫은 세상 때문에 눈을 뺀 사람이 있는지는 몰라도 죄를 지었기에 하느님과 일치하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 사람을 찾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천국(天國)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왜 그렇게도 하느님의 뜻에서 멀어지는지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것은 저마다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욕심은 인정받을 만하다고 여기고, 내가 하는 잘못된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비리(非理)에 비교하면 오히려 깨끗한 것이라고 여기는 마음이 우리들안에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말 그대로 사실이라면 참으로 좋을 것입니다.  민수기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서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이것입니다.  훗날 모세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된 여호수아마저도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자신의 생각을 함부로 말했고, 모세의 꾸중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의 뜻을 직접 듣고, 그 말씀대로 확실하게 사는 ‘신들린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마저도 하느님의 뜻을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신들린 사람’의 의미를 오늘날 우리가 알아듣는 왜곡된 의미로 받아들였기에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훗날 맡아야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어떨지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좋은 마음을 갖는 것, 내 것을 다 퍼주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이론에 불과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 될 때라야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진정 하느님의 나라가 될 수 있을 텐데, 그 이론 같은 세상이 언제나 가능할 거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모두 부자입니다.  적어도 오늘 우리가 들은 야고보서의 말씀에 따르면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야고보서간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그와 같지 않은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부자는 누구이겠습니까?  올바로 알아듣는 사람만이 올바로 행동할 수 있는 법입니다.  지식이 전부는 아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올바른 길을 갈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는 말씀과도 같은 것입니다.

 

신앙인의 현실 생활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엊그제 들은 어떤 사람의 이야기입니다만, 돈 앞에서 부모를 제대로 모시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다른 아들과 딸도 있는데 왜 나만 부모님을 모셔야하느냐고 소리치는 세상이고, 형제의 돈은 모두 내 돈이므로 내가 맘대로 가져다쓰고 갚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돈이 갖는 위력은 큽니다.  그 대표적인 힘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파리 목숨으로 보게 만듭니다.  

 

이런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올바로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교회의 외침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어찌 생각하면 하느님의 뜻을 이야기하는 교회의 가르침은 그래서 더 힘이 없다고 여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은 100년을 넘기기 힘들지만 하느님의 가르침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합리적인 조건을 이야기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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