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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28: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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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1-03 ㅣ No.372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28)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상)

그리스도교 신앙과 과학적 탐구의 조화로운 통합 제시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과학과 종교, 혹은 과학과 신앙의 관계는 과연 무엇인가. 이는 본격적인 세속화와 더불어 과학기술의 발달이 이뤄지기 시작한 근대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된 질문이다. 하지만 이는 현대에 이르러 더욱 심각하게 다가오는 중요한 문제다. 오늘날의 종교들, 특히 그리스도교는 '과학주의'라는 광대한 흐름의 도전과 위협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즉, 현대의 극단적인 과학적 세계관은 무신론적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며 그리스도교 신앙관과 가치관에 맞서고 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의 개인적 삶의 여정 안에서 과학적 탐구와 그리스도교 신앙의 조화로운 통합을 시도하고, 여러 저서를 통해 우주적 관점의 보편적 그리스도론을 전개한 프랑스의 예수회원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1881~1955) 신부의 신학사상을 살펴보는 것은 현대의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대 과학주의의 무신론적 도전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앙에 큰 도전과 위협으로 다가오는 과학주의는 그야말로 과학기술의 놀라운 힘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과학기술지상주의' 혹은 '과학기술만능주의' 관점에서 먼저 이해할 수 있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는 현대 과학기술 문명 속에서 인간은 한편으론 매우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론 과학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져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치 그 노예가 된 것 같은 삶을 살아간다. 더욱이 과학기술의 힘이 그 전통적 한계를 넘어서 인간의 모든 삶을 통제하고 지배할 것 같은 착각과 환상에 빠지게 된다.

이는 마치 하느님 영역에 도전해 과학기술의 힘으로 바벨탑을 쌓는 시도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창세기 11장 1-9절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는 목적과 동기는 바로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대의 우주론적 세계관에서 하늘은 곧 신의 영역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는 자신이 하느님의 자리에까지 오르고자 하는 인간의 독선과 교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렇듯 인간의 본분을 잊고 있어야 할 자리를 넘어 하느님의 권능에까지 침범하려 도전하는 오만함이야말로 오늘날 극단적인 과학주의 흐름이 보여주는 뚜렷한 경향이다.

이러한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에서 바라볼 때 그리스도교 가치관과 인간관 및 세계관은 그 관심에서 철저히 배제되며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윤리적 가치관 또한 도외시된다. 과학기술의 힘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제 그것이 자연과 인간에 대해 거의 신적인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하늘을 바라보거나 초월적 차원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게끔 만든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과학기술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종교적 믿음에 관한 가치가 근본적으로 의문시되기에 이른다.

나아가 과학기술만능주의 관점에서 매우 명시적이고 공격적인 현대 무신론이 등장한다.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무신론 저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2006)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 등 여러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인간의 이성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진리의 근거와 기준은 오직 현대의 자연과학적 방법론뿐이기에 모든 종교적 믿음은 근거 없는 미신과 맹신에 불과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첫 회칙 「신앙의 빛」을 통해 "과학으로 제작하고 측량할 수 있는 것만이 진리로 여겨지는"(25항) 오늘날의 과학주의 경향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신봉하는 찰스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은 이제 인간의 모든 정신적 사회 현상까지도 설명 가능한 우주적 보편 원리로 등장한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생물학 교수인 에드워드 윌슨은 이러한 진화론적 관점에서의 사회생물학을 주창했고, 바로 이것이 리처드 도킨스 등에게 영향을 미쳐 보다 급진적인 과학적 무신론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스티븐 호킹 등의 세계적 이론 물리학자들 역시 우주의 자체적 생성을 주장하며 명시적인 무신론을 내세우게 됐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 필요성

이러한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급진적 주장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해 과연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학적 탐구는 반드시 무신론적 경향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과연 그들은 생물학적 결정론이나 환원주의에 근거한 무신론적 과학주의 입장에서 무한히 광대한 우주와 심오한 인간 생명의 신비를 모두 충분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정말 믿는 것인가. 사실상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인간 영혼의 신비는 인간 이성에 의해 어느 정도 탐구될 수는 있지만 온전히 파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인간 영혼의 문제는 여전히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적 영역에 속하기에 과학적 실증주의 입장으로 파악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과 신학의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현대 교회의 가르침은 하느님 권능에 의한 세상과 인간의 창조를 가르치면서도 진화론을 전적으로 배척하지 않는다. 과학과 신학의 책임 있는 대화를 통해 이에 관한 연구가 진지하게 지속되기를 권고하면서도 인간 영혼에 관한 영역은 반드시 존중돼야 함을 강조한다.

과학과 신학은 상호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적 비판에 입각한 상호 대화를 통해 함께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 둘은 우주의 기원과 인간 생명의 신비에 대한 진리 탐구적 열망의 동일한 원천에서 비롯해, 각자 고유한 길에서 위대한 근원적 신비를 향한 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긍정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학적 견해를 무시하고 간과하는 신학자의 맹목적 입장도 큰 문제지만, 신학적 전망과 가치를 배격하고 무조건 앞으로만 달려가려는 과학적 세계관의 독주 역시 매우 위험하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앙의 빛」을 통해서 과학의 한계를 조정하고 보완하는 신앙 역할을 강조한다. "과학의 시각은 신앙으로부터 도움을 받습니다. 신앙은 과학자들이 실재의 고갈될 수 없는 모든 부(富) 안에서 실재에 늘 열려 있도록 격려합니다. 신앙은 과학적 연구가 몇 가지 공식으로 만족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비판적인 감각을 일깨워주고, 자연이 언제나 더욱더 큰 실재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창조의 신비 앞에서 경이감을 갖게 함으로써 신앙은 이성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줍니다. 이는 과학적 탐구에 개방되어 있는 세상에 더 큰 빛을 비추기 위함입니다"(34항).


샤르댕의 생애와 공헌

이러한 '과학과 신학의 관계'라는 주제를 다룸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으니, 그는 바로 지질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이면서 동시에 신학자였던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이다. 샤르댕은 1881년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 지방에서 태어나 18세에 예수회에 입회한 후 신학과 과학을 두루 공부했다. 1911년 사제품을 받은 후 지질학과 고생물학, 고고인류학 등의 분야를 계속 연구했다. 1915~1919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긴 체험은 그의 신학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1922년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자연과학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23~1946년 중국에 머물며 과학 연구를 진행했고 1929년 '북경 원인' 발굴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1946~1951년 프랑스 파리에서, 1951~1955년 미국 뉴욕에서 연구를 계속하다가 미국에서 1955년 부활 대축일에 세상을 떠났다. 2005년 샤르댕 사후 50주년을 기념해 유엔(UN) 본부가 '인류의 미래-테이야르의 현대적 의의'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개최했을 정도로 그의 업적과 사상적 발자취는 높게 평가되고 널리 인정받고 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샤르댕은 현대 조직신학적 차원에서 처음으로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 개념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과학과 신학의 통합을 시도했던 공로를 인정받는다. 샤르댕의 여러 저서를 통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우주 전체의 진화와 발전을 역동적으로 촉진해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완성으로 인도하는 '우주적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적 전망이다. 샤르댕은 우주의 발전과 동시에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점진적 진보를 강조했다. 그리고 이 모든 자연적 진화와 발전 과정이 최종적으로 수렴되는 종말론적 완성으로서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를 제시했는데, 바로 이를 그리스도와 연결시켜 신학적으로 개념화하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신약성경 바오로서간에 나오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에페 1,3-10; 콜로 1,15-20; 필리 2,6-11 참조)을 근본 바탕으로 샤르댕은 자신의 독창적인 우주적 그리스도 개념의 제시와 전개를 통해 과학적 세계관과 그리스도교 신앙관의 역동적인 통합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묵시 22,13)는 성경 말씀에 근거해 그리스도를 우주의 알파요 오메가로서 우주적 발전과 진화의 출발점이자 또한 종착점으로 제시한다.

[평화신문, 2014년 1월 1일,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신학과사상합회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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