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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상담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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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8-03 ㅣ No.263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1) 상담을 시작하며


삶의 진통들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번 주부터 삶과 신앙 전반에 관한 궁금증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상담코너,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가 개설됩니다. 김정택 신부님과 이나미 원장님께서 답변해주실 본란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랍니다.

 

본격적인 상담에 앞서 김정택 신부님의 소개 글을 게재합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광야에서 양을 치며,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싶어하던 청년 ‘산티아고’는 똑같은 꿈을 연달아 두 번이나 꿉니다. 꿈에 한 아이가 나타나서, “만일 당신이 이집트의 피라미드로 간다면 숨겨진 보물을 찾게 될 거예요” 하고 말합니다. 산티아고는 어느 날 살렘의 왕이라는 한 노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일러줍니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세상 만물은 모두 한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이어서 그 노인은, “보물이 있는 곳에 도달하려면 표지(標識)를 따라가야 한다네. 신께서는 우리 인간들 각자가 따라가야 하는 길을 적어 주셨다네. 자네는 신이 적어주신 길을 읽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날부터 ‘산티아고’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참조) 

 

우리는 모두 ‘자아의 신화’를 찾아 길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그 길은 바로 하느님이 적어주신 표지(標識)로, 우리들 삶의 곳곳에 놓여 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그릇된 욕망과 욕심에 사로잡혀 그 표지들을 제대로 읽지 못합니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유일한 의무라고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대표작인 ‘연금술사’에서 이야기 합니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이자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칼 융은, 이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개성화의 과정(Individuation process), 자기실현의 과정이라 불렀습니다. 그도 똑같이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그 길은 바로 우리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알게 모르게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엄청난 부와 풍요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인들은 대부분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숱한 삶의 질곡에서 허둥대며 어렵게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이나 두려움, 삶의 공허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칼 융은 현대인들이 바로 ‘신화를 잃어버린 세대’라 표현하며, 그것이 바로 현대인들을 방황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라 지적합니다. 

 

이 ‘상담코너’를 통해서 저는 여러분들과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삶의 진통들을 함께 나누고, 잘못 들어선 길을 바로잡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다시 돌아서 열심히 삶을 살아 나가도록 여러분들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제요, 수도자인 제가 이 ‘상담코너’를 통해서 여러분들을 만나려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이 ‘자아의 신화’를 찾아나가는 길에서 혹 방황하고 있을 때, 슬쩍 제가 손만 잡아주어도 큰 힘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도 여러분의 삶의 이야기들을 통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상담이란 바로, 서로가 성장해 나가는 배움의 과정이요, 깨달음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상담’을 저는 둘이 함께 추는 ‘춤’이라 비유하고 싶습니다. 상담에서는 내담자와 상담자가 서로 잘 협력해야만 경쾌하게 스텝을 밟으며 춤이 주는 ‘신바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신바람’을 저는 성령의 바람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어떤 주제이든지, 어떤 어려움이든지 그 사연을 보내주시면, 여러분과 제가 함께 손을 잡고 신나는 스텝으로 춤을 출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바로 하느님의 ‘신바람’을 함께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가 ‘자아의 신화’를 찾아나가며 행복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자아의 신화’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바로 진정한 나 자신, 즉 하느님이 내 안에 심어주신 이마고 데이(Imago Dei), 바로 ‘하느님의 이미지’를 찾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신문 독자 여러분들이 이 뜻 깊은 여정에 적극적으로 함께 해 주시기를 고대합니다!

 

-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는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로 진행됩니다.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삶에서 겪는 어려움을 나누고 싶은 분은 아래 주소로 글을 보내주십시오. 

 

※ 보내실 곳 133-030 서울특별시 성동구 무학로 16 (홍익동 398-2) 가톨릭신문사 신앙상담(가제) 담당자 앞

· E-mail: sangdam@catimes.kr [가톨릭신문, 2015년 8월 2일, 김정택 신부(예수회 · 서강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2) 상담을 시작하며


힘들고 아픈 마음 함께 나누고파

 

 

삶과 신앙 전반에 관한 궁금증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상담코너,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가 개설됩니다. 김정택 신부님과 이나미 원장님께서 답변해주실 본란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랍니다. 

 

김정택 신부님에 이어 이나미 원장님의 소개 글을 게재합니다.

 

 

내담자들이 처음 방문하면 우선 지금 무엇이 가장 힘든지 묻게 된다. 가까운 가족이 세상을 떠난 사람, 건강이 나빠진 사람, 거액의 손실을 경험한 사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지위에서 쫓겨 난 사람… 이들은 모두 상처받은 마음을 부여잡고,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다. 약의 도움을 받아 증상이 완화되고,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공감과 위로를 받으며 조금씩 상처가 회복되긴 하지만, 상담과정에서 근본적으로 이들과 씨름할 문제는 ‘고통의 의미’이다. 

 

우리는 종종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면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런 벌을 내려 주는 것일까”라고 묻게 된다. 실제로 죄 하나 짓지 않은 어린아이를 갑자기 병으로 잃은 부모, 평생을 정직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사기꾼(요즘엔 큰 증권회사나 신용금고 같은 기관들) 때문에 전 재산을 날린 노인,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며 오로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았는데 자식이 엇나가 행패를 부리기에 인생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부인 등… 특히 신앙이 있는 경우는 오히려 사랑이신 하느님이 우리에게 왜 고통을 주시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완전한 사랑의 화신이자 만물의 창조주인 하느님께서 어째서 인간이 고통을 겪게 그대로 놔두시는 것인지(혹은 그조차 계획을 하신 것인지)에 대한 신학적 논의는 기독교뿐 아니라 타종교에서도 오랫동안 씨름해온 질문이며, 여전히 많은 철학자들이 지금도 묻고 있는 질문이다.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그것이 인류의 원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의 죄를 고통받는 사람이 대신 받는 것이라 말하기도 하고, 고통으로 더욱 겸손하게 만들고 신앙을 단련시켜 천국에 들게 하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인생 그 자체가 생로병사라는 근본적인 조건에 더해서,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고, 자기 욕심과 본능에 휘둘리는 육체 그 자체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상담 과정에서도 이런 유사한 질문을 할 때, 필자는 어떻게 설명하는가. 종교나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도 아니고, 또 고통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할 입장은 되지 못해서 원인에 대해 말해 줄 수는 없다. 다만, 고통스런 상황에 처했을 때 역설적으로 우리가 과연 무엇이 내 인생의 본질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예컨대 갑자기 신변에 이상이 생겨 사회의 밑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끝까지 남는 사람은 누구인지, 돈과 지위와 건강과 사람까지 모두 잃고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 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까지 깊이 들어가는 내담자들이 꼭 많은 것만은 아니다. 

 

짧은 몇 가지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진 상담 코너는 사실 여러 가지 제한이 많아서 특히 오랜 기간 분석을 하면서 참자기를 찾도록 도와주려고 하는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그 의의에 대해 회의가 가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분석가나 상담가를 찾아가지 못하는 사람, 또 지면으로라도 크고 작은 도움을 받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짧은 글이 가질 수밖에 없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상담코너를 시작하려고 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각자의 문제가 가장 무겁게 느껴진다. 남의 아픈 마음에 대해 객관적으로 “뭐 그까짓 것 갖고 그래”라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운명은 견딜 수 있는 만큼 고통스럽게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해서, 어떤 문제든, 절실하고 힘든 것이라면 상담의 지면을 통해 많은 이들과 그 아픈 마음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는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로 진행됩니다.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삶에서 겪는 어려움을 나누고 싶은 분은 아래 주소로 글을 보내주십시오. 

 

※ 보내실 곳 133-030 서울특별시 성동구 무학로 16 (홍익동 398-2)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담당자 앞 

· E-mail: sangdam@catimes.kr [가톨릭신문, 2015년 8월 16일, 이나미(리드비나 ·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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