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내 마음의 북녘본당: 평양교구 진남포본당 - 황해도 이북의 가장 큰 성당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9-07 ㅣ No.992

[내 마음의 북녘본당] 평양교구 진남포본당(1900~1950)


황해도 이북의 가장 큰 성당

 

 

대동강 하류의 조그만 포구였던 진남포가 1897년 10월 개항이 되자 황해도 신천본당의 홍(J. Wilhelm, 洪錫九 요셉) 신부님은 이 지역의 장래성을 보고 1897년 용정리 일대에 땅 1만 평을 매입하여 공소를 설립했다. 1900년 진남포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어 초대 주임신부로 파리 외방 전교회 방(Joannes B. Fauie) 신부님이 부임하셨고 당시 교우수는 30명 정도였다.

 

초대 방 신부님은 교우들과 열심히 전교하여 신자 수가 200명을 헤아리게 되었고, 지역의 교육발전을 위해서 진남포성당은 옛 성당을 개조하여 ‘돈의학교’도 설립하였다. 돈의학교는 안중근(토마스) 의사가 제2대 교장을 지냈던 곳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탕으로 성실하게 운영하여 손꼽히는 사립학교가 되었고, 복음전파에도 큰 몫을 하였다.

 

1906년 초대 방 신부님이 과로로 건강을 해쳐 프랑스로 휴양을 떠나고, 신(申, Julius Le Reide) 신부님이 제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신 신부님은 첫 사업으로 새 성당 건축을 추진하여 한식에 가까운 아름다운 성당을 1908년 가을 준공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09년에는 ‘지정여학교’를 신설하여 이 고장에서 선구적 여성 교육을 시작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1914년 신 신부님이 본국으로 떠나게 되자 진남포성당은 목자 없는 공동체가 되었고, ‘돈의(敦義)’ ‘지정(智貞)’ 두 학교도 1916년 폐교하게 된다. 그러나 사제가 없는 본당을 신앙으로 지키던 교우들은 돈의, 지정학교보다는 못하지만 문명퇴치 사업으로 1918년 교회 내에 ‘마리아유치원’을 설립했다.

 

1920년에는 목자를 잃은 지 6년 만에 제3대 신성우(마르코) 신부님이 부임하면서 본당은 정상화가 되었다. 1928년 10월 서(徐, Leo Sweeney) 신부님이 제6대 주임신부로, 배(裴H, Hubert Pospichal) 신부님이 보좌신부로 부임했는데, 진남포본당은 이때부터 크게 발전한다. 특히 본당 여성교우들의 신심 단체인 안나회는 전교에 큰 몫을 다했다. 또한 서 신부님은 1930년 평의학교를 신설하였는데 근대화 교육과 전교에 큰 역할을 하였다. 1932년에는 시약소를 개설하고 배 신부가 직접 진료에 나서 무료로 의료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고 전교에도 큰 힘이 되었다. 이렇게 두 신부님이 열심히 사목하자 신자수가 급격히 늘어 1933년 8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당을 신축하였다. 서 신부님과 배 신부님의 열정 가득한 사목은 한국 교회 전체에 널리 알려질 만큼 큰 성과를 내었고, 진남포성당은 황해도 이북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당으로 성장해 나갔다.

 

메리놀 신부님들의 추방으로 1942년 양기섭(베드로) 신부님이 제9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으나 경제적 어려움과 일제의 탄압으로 해성학교와 성심학원과 마리아유치원은 공립학교로 흡수되거나 폐원되고 말았다. 1945년 9월, 제10대 한윤승(필립보) 신부가 부임하였다. 이때 소화병원도 폐업되어 샬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님들 역시 진남포를 떠나 서울 본원으로 돌아갔다. 1948년 10월 조문국(바오로) 신부님이 제11대 본당 신부로 부임하였으나 1950년 6월24일,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에 조문국 신부님이 납치되며 진남포성당은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

 

“기억하는 한 살아있고, 기도하는 한 다시 만날 것입니다.”

 

지금은 한 명의 사제, 한 명의 수도자도 찾기 힘든 북녘 땅에 한국전쟁 이전에는 57개의 본당과 5만2천여 명의 신자가 있었습니다. 그 북녘 땅의 교회가 70년째 신앙의 자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는 북녘 땅의 57개 본당공동체가 다시 되살아날 때까지 한반도 평화와 북한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운동(www.mychurch.co.kr)을 펼치고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9월호, 김훈일 세례자 요한 신부(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2,41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