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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29: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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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1-08 ㅣ No.377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29)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중)

우주적 진화의 시작과 끝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 통합



창조와 진화의 통합적 전망 제시

프랑스 신학자 테이야르 드 샤르댕(1881~1955)이 전개한 보편적 차원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은 우주와 인간의 탄생과 발전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지고 마침내 완성에 이르는가를 설명한다. 이는 우주의 전체적 진화 현상에 대한 과학적 고찰을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 차원에서 새로이 해석해 수용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물론 샤르댕의 사상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와 비판적 평가가 교차된다. 하지만 샤르댕의 가장 큰 공헌은 당시 도저히 양립 불가능하며 심지어 적대적으로까지 간주되던 그리스도교 창조론과 과학적 진화 사상을 통합하는 신학적 전망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올바른 관계가 과연 무엇이고 교회가 진화론을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잘 알 필요가 있는데, 샤르댕의 신학사상을 아는 것은 이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창세기의 신학적 의미

먼저 성경의 창조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과학적 진화론자의 창조론 비판, 혹은 창조론에 입각한 진화론 비판의 양쪽 모두에서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 부족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즉, 유물론적 관점에서 진행되는 극단적 진화론도 배척되어야 하겠지만, 성경을 글자 그대로 정보적 관점에서만 이해하려는 축자적(逐字的) 입장 역시 지양돼야 한다. 왜냐하면 창세기 내용은 세상의 기원과 전개 과정에 대한 실제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창세기를 통해 드러나는 세상의 실재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의미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다.

사실 창세기 1-11장의 태고사(원역사)는 다른 부분보다 더 후대에 기록됐지만 창세기의 맨 앞에 자리하게 됐다. 구약성경이 전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창세기 12-50장의 '성조사'(聖祖史), 즉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이야기 및 이어지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의 진정한 하느님 체험은 바로 이집트 탈출 사건에서부터 출발한다. 창세기 저자와 편집자들은 역사적 체험을 통해 이스라엘이 구원자이신 주 하느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선민(選民) 사상을 펼치면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계약을 강력히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계약을 태초의 기원으로까지 끌어올리면서 창세기 1-11장의 창조 이야기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특히 창세기 1-3장에서 인간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두 번 나오며 문학적 긴장이 발견되는 것은, 창세기 1,1-2,4a(기원전 6~5세기의 사제계 문헌)과 2,4b-3,24(기원전 10~9세기의 야훼계 문헌)이 서로 다른 전승에 연유하는 까닭이다. 이 두 전승이 결합돼 편집된 시기는 바빌론 유배 생활이 끝난 직후인 기원전 400년쯤으로 보인다. 이처럼 인간 기원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창세기 도입부에 함께 모여 여러 편집 과정을 거치며 문학적 긴장을 자아내는 현재의 형태로 형성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과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께서 바로 온 세상과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임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이는 주 하느님에 대한 시각이 이스라엘의 민족신 개념을 벗어나 보편적 창조주의 차원으로 확대됨을 의미한다. 하느님 말씀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지만 이제 이스라엘을 넘어 전 인류를 지향하게 된다. 창세기 편집자들은 이처럼 신관(神觀)에 대한 재성찰을 통해 주 하느님의 권능과 약속에 대한 기대와 전망을 보편적 차원에서 새롭게 함으로써, 바빌론 유배라는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겪어야 했던 어둡고 부정적인 체험을 이겨내는 강력한 희망을 제시하려 했다. 그러므로 창조와 계약을 연결시키는 관점에서 편집된 창세기 도입부는 고통스러운 현재적 체험에서 출발해 태초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련의 신학적 성찰이며 반성이다.
 

창조론과 진화론

이처럼 창세기는 창조 역사에 대한 실제적 객관적 보도가 아니라 하느님 창조에 관한 신학적 메시지를 전한다. 즉, 창세기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체적인 역사 속에 작성된 신앙고백적 성격을 지니기에 우주의 생성 장면을 직접 목격한 누군가가 마치 구체적 사건 보도를 하듯이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창세기에 대한 이러한 신학적 이해에 근거한다면, 우리는 진화론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거나 아니면 일방적으로 배척하는 양 극단을 피해야 한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현대적 논쟁과 관련해 비오 12세 교황(재위 1939~1958)은 1950년 회칙 「인류」(Humani Generis)를 통해 가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교회 교도권은 진화론적 주장이 이미 선재(先在)하는 생물체로부터 유래하는 인간 육체의 기원에 대하여 연구하는 한, 과학과 신학의 현재 상태에 따라 그 양쪽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진화론적 주장이 연구와 토론의 대상으로서 다뤄지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다만 가톨릭 신앙은 영혼들이 하느님에 의해서 즉각적으로 창조됐다고 생각할 것을 우리에게 의무로서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와 토론은, 진화론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양편의 주장 모두가 마땅히 신중함과 중용에 의해서 그리고 조심스럽게 숙고되고 판단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 양편 모두는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성경 해석과 신앙교리 수호의 임무를 위탁하신 교회의 판단에 승복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언급된 인간 영혼이 하느님에 의해서 직접 창조되었다는 관점은 진화론과의 대화와 토론에 있어 결코 가톨릭 신앙이 포기할 수 없는 핵심 논점임이 1966년 바오로 6세 교황(재위 1963~1978)에 의해 재확인된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재위 1978~2005) 역시 1996년 '생명의 기원과 진화'를 주제로 열린 교황청 과학원 총회에 보낸 담화에서 이 원칙을 거듭 천명한다. "진화의 이론들에 영감을 준 철학들에 따라, 인간 정신이 생물체의 힘에서 나온다든지 또는 생물체의 단순한 부수 현상이라고 여기는 진화론들은 인간에 대한 진리가 될 수 없다. 그러한 이론들은 또한 인간 존엄성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샤르댕의 통합적 전망

이러한 창조론과 진화론의 상관관계를 이해함에 있어 샤르댕 신학사상은 큰 도움이 된다. 샤르댕에게는 우주의 신비에 대한 관찰과 이해가 과학적 탐구의 목표였다. 그는 지질계로부터 생명의 발생과 인간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하나의 통일체로 놓고 이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을 추구했다. 그래서 물질에 대한 탐구를 시작으로 생명체를 고찰하던 샤르댕은 '진화'라는 중요한 현상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샤르댕이 생각한 진화는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을 비롯한 생물학적 진화론자들의 특정 주장에 갇히는 것이 아니었다. 샤르댕의 과학적 진화 현상론은 보다 고차원적으로 만물이 어떤 성장 과정에 의해 존재하게 됨을 말하는 우주 전체의 진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발전 단계 중 생명의 발생과 인간의 출현은 우주 진화의 결정적 현상이다. 그리고 그 상승적 발전 과정이 종결되는 모든 우주적 진화의 최종 수렴점으로서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가 제시되기에 이른다. 샤르댕은 이 오메가 포인트를 설명함에 있어 세상과 우주 안에 역동적인 사랑의 순환을 가능케 하는 인격적 중심이 존재함을 말하면서, 이를 그리스도교 계시를 통해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킨다. 이는 나자렛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그리스도의 강생이 우주적 신화(神化)를 위한 결정적 사건이며 궁극적으로는 신성화된 우주를 그리스도 자신에게로 최종 수렴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샤르댕은 육화하신 하느님 아드님의 사건, 즉 그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로써 모든 '인간 현상'의 전체적 의미가 충만히 드러난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샤르댕의 이러한 사상은 신약성경의 대표적 그리스도 찬가인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장 15-20절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과학적 언어로 설명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성자 그리스도께서 창조의 중재자이자 원동력이며, 중심이자 목표로서 드러난다. 요한 묵시록에서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창조부터 종말론적 완성에 이르기까지 전체 구원 역사의 우주적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자리하심이 드러난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온갖 충만함'이 드러난다고 말하는데 이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화해할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향하여' 완성되어 갈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장 4-10절의 그리스도 찬가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만물의 수렴'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에페 1,10).
 
샤르댕이 말한 '오메가 포인트'는 바로 우주적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지는 종말론적인 '만물의 수렴과 충만' 사상을 과학의 언어로 표현하려 시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샤르댕은 우주의 진화를 과학적 차원에서 탐구한 후 이를 신학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창조와 진화를 통합하는 새로운 전망을 제시했다.
 
※ 주요 참고문헌 : 「창조론, 아름다운 세상의 회복을 꿈꾸며」(박준양 지음, 생활성서사, 2008)

[평화신문, 2014년 1월 5일,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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