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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30: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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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1-11 ㅣ No.378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30)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하)

거대한 우주론적 차원에서 성체성사의 신학 재조명



- 샤르댕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아무 도구도 없이 홀로 미사를 봉헌하면서 성체성사의 신비를 온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해 거행하는 체험을 했다. 그는 세상 자체를 살아 있는 성체로, 하나의 전례로 보고 성체성사의 신학을 거대한 우주론적 차원에서 재조명했다. [CNS]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

샤르댕은 자신의 개인적 삶의 여정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과학적 탐구와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합하는 낙관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세계관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주론적 차원의 신학사상을 전개했는데, 이는 20세기 초중반 당시에 매우 놀랍고도 신선한 충격을 줬다. 한편으로 샤르댕의 신학사상은 그의 생전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교회 안팎에서 많은 논쟁을 유발시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긍정적인 영향 또한 계속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샤르댕의 신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의 「사목헌장」과 「교회헌장」 작성에 사상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온 땅을 주님께 드리는 제단으로

우주론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샤르댕의 신학사상을 가장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은 그가 중국에 가서 지질학과 고생물학을 연구하기 시작하던 시절인 1923년의 신앙체험을 기록한 글 「세계 위에 드리는 미사」이다. 당시 그는 학문적 탐사를 위해 몽골 접경지대인 오르도스(Ordos) 사막 한가운데에 머물고 있었다. 마침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맞아 새벽에 일어났지만 그는 미사를 봉헌할 도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샤르댕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사막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아무 도구도 없이 홀로 미사를 봉헌하면서 성체성사의 신비를 온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해 거행하는 체험을 했던 것이다(「세계 위에 드리는 미사」 참조, 김진태 옮김/이병호 감수,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4, 표지).

그곳에는 성당도 제단도 없었기에, 샤르댕은 지평선을 바라보며 온 땅을 주님의 제단으로 삼아 미사를 봉헌한다. "주님, 이번에는 아시아의 대초원 안에 들어와 있지만, 또 다시 저는 빵도 포도주도 제단도 없이 이렇게 서서, 그 모든 상징들을 뛰어넘어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순수 실재를 향해 저 자신을 들어 올리려 합니다. 당신의 사제로서, 저는 온 땅덩이를 제단으로 삼고, 그 위에 세상의 온갖 노동과 수고를 당신께 봉헌하겠습니다"(15쪽).

그렇다면 온 땅을 주님의 제단으로 삼아 미사를 집전하는 샤르댕 신부가 빵과 포도주 대신 미사의 예물로 봉헌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세상의 모든 인간과 생명체들이 이뤄내는 삶의 노력과 수고다. "저쪽 지평선에서는 이제 막 솟아오른 태양이 동쪽 하늘 끝자락을 비추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불이 찬란한 빛을 내며 떠오르면, 그 아래 살아 있는 땅의 표면은 다시 한 번 잠에서 깨어나 몸을 떨며 또다시 그 두려운 노동을 시작합니다. 오 하느님, 저는 새로운 노력이 이루어낼 소출들을 저의 이 성반에 담겠습니다. 또 오늘 하루 이 땅이 산출해낼 열매들에서 짜낼 액즙을 이 성작에 담겠습니다. 이제 곧 지구 곳곳으로부터 올라와 '영'(靈)을 향해 모아질 온갖 힘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는 영혼의 깊은 속 그것이 저의 성반이며 성작입니다. 새날을 맞이하라고 지금 빛이 흔들어 깨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들과 신비로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15~16쪽).

한마디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우주의 모든 것을 마치 성체성사에 사용되어 거룩하게 변화되고 거양될 '대제병'처럼 하느님께 봉헌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샤르댕이 발견한 "세계의 성사"(36쪽)다. "주님, 새날의 첫 새벽에 당신께서 만드신 창조계 전체가, 당신의 이끄심에 따라 움직이며 모든 것을 다 올려 봉헌하는 이 '거대한 제병'을 받으소서. 저희의 노동인 이 빵이 그 자체로서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부스러기일 뿐임을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의 고통인 이 술 역시 다음 순간에 사라질 하찮은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볼품없는 물질 덩어리 그 깊이에 당신께서는 거룩함을 향한 어떤 억누를 수 없는 갈망을 숨겨 두셨습니다"(18~19쪽).
 

샤르댕의 신학사상에 대한 평가

「세계 위에 드리는 미사」를 통해 샤르댕은 성체성사의 신학을 거대한 우주론적 차원에서 재조명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처럼 우주론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샤르댕의 신학사상에 대해 교회 내에서도 많은 반대와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오늘날 샤르댕의 신학사상이 가장 큰 오해를 받는 부분은 현대 뉴에이지(New Age) 운동의 이론가들과 그 추종자들이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에 관한 그들의 잘못된 개념과 논리를 합리화하고 정당성을 얻기 위해 샤르댕의 글을 자주 언급하고 인용한다는 점이다. 뉴에이지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바는, 세상의 궁극적 실재란 오직 하나의 비인격적이고 신성한 에너지로서의 '우주적 정신'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주적 차원에서의 비인격적인 궁극적 실재 이론을 내세우는 세계관을 옹호하기 위해서 샤르댕의 저서들이 뉴에이지 운동의 이론가에 의해 계속 인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샤르댕의 사상은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그리스도론을 주장하면서도 결정적으로 그리스도 강생 신비의 인격적 차원을 강조한다. 즉, 모든 실재가 혼동 없이 수렴되는 중심으로서의 그리스도는 보편적이면서도 동시에 인격적 실재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사실 샤르댕의 진정한 의도는 초대 교회부터 전수되는 고전적인 '말씀(Logos) 그리스도론'을 현대 과학사상이 탐구하는 우주적 차원에서 재조명하려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약 성경의 바오로 서간에 나오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에페 1,3-10; 콜로 1,15-20; 필리 2,6-11 참조)을 근거로 샤르댕은 역동적인 현대적 세계관에 맞게 창의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우주적 보편성에 관한 신학사상을 전개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재위 2005~2013)는 샤르댕의 신학사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베네딕토 16세는 가톨릭 교회의 정통 교리를 수호하는 최종 책임자로서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을 오랜 기간 역임했다. 그러므로 베네딕토 16세의 긍정적 평가는 샤르댕 신학사상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모두에게 알려준다. 요제프 라칭거(Joseph Ratzin ger)라는 개인 신학자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인 1968년 출간된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장익 옮김, 분도출판사, 2007년 신정판)은 베네딕토 16세의 신학적 기조 사상이 압축적으로 잘 드러나는 핵심 저서다. 바로 여기에서 베네딕토 16세는 샤르댕의 신학사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특히 예수님에게서 드러나는 인성과 신성의 결합 의미를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의 지평에서 설명하고자 시도한 공로를 높이 산다. 그리고 이 평가는 샤르댕의 그리스도론 전체에 대한 훌륭한 요약이기도 하다.

"이런 연관을 오늘의 세계관에서 새로 생각하고 다소 지나치게 생물론적 경향이 없지는 않았으나 전체로 보아 그래도 옳게 이해했으며, 여하튼 새로이 대할 수 있게 한 것은 테이야르 드 샤르댕의 큰 공로였다고 인정해야 할 줄 안다.…여기 현대 세계관의 견지에서 때로는 지나치게 생물학적 어휘를 써 가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바오로-그리스도론의 방향이 파악되고 새롭게 이해될 수 있게 되었다고 하겠다. 신앙은 예수에게 있어 생물학적 도식으로 말해서 이를테면 다음 단계의 진화적 도약을 성취한 인간, 우리의 제한된 인간 존재 양상과 단자(單子)적 봉쇄에서 탈출한 인간을 보는 것이다. 인격화와 사회화가 더 이상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뒷받침하는 인간, 지상(至上)의 일치가 또한 아울러 지상(至上)의 개성과 매한가지인 인간, 인류가 그에게서 최대한 자신의 미래로 성취될 수 있는 저 인간을 신앙은 예수에서 본다. 따라서 신앙은 균열된 인류를 유일한 아담, 유일한 '몸', 미래의 인간존재 안으로 모아들이는 움직임의 시동을 그리스도에서 본다. 신앙은 그리스도에게서 인간이 오히려 '사회화'되고 유일한 분과 일체가 돼 개개인이 붕괴되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될 저 미래를 본다"(239~242쪽).
 

세상 자체가 곧 성체가 됨을 향하여

한편, 2009년 7월에도 베네딕토 16세는 로마서 8장에 대한 강론을 통해 샤르댕이 「세계 위에 드리는 미사」에서 제시했던 관점을 인용하며 그의 신학사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어쩌면 이는 샤르댕 신학이 담고 있는 최종 지향점에 대한 베네딕토 16세의 영성적 해석이기도 하다.

"사제직의 역할은 세상을 축성하여 세상 자체가 살아 있는 성체가 되도록, 하나의 전례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전례는 세상의 실재와 동떨어진 그 어떤 것이 아니게 됩니다. 오히려 세상 자체가 살아 있는 성체가, 하나의 전례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테이야르 드 샤르댕에 의해 제시되었던 위대한 전망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에는, 우리가 진정한 우주적 전례를 거행하게 될 것인데, 거기에서는 우주 자체가 곧 하나의 성체가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사제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 도움을 청하며 기도합시다. 하느님께 대한 흠숭 안에서 세상이 새로이 변형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변형이 바로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합시다."
 
[평화신문, 2014년 1월 12일,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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