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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인물과 영성 이야기4-6: 알프레드 델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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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1-25 ㅣ No.762

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 이야기 (4) 알프레드 델프 신부 (상)


나치 폭력 하에서 내면적 자유의 고귀함 지켜내



히틀러와 나치 치하 독일에서 자유의 참의미를 누구보다도 깊이 깨닫고 실천했던 알프레드 델프 신부.


“자유는 하느님과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알프레드 델프


감옥에서 피어난 자유의 영성

어둠이 깊은 시대에 놀랍게도 그 어둠의 야만과 폭력, 그리고 유혹으로부터 내면의 자유와 정신의 고귀함을 지켜내고 그 인격의 진면목을 보여준 빛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들을 대하며, 비로소 스스로 설정해놓은 정신적 삶에 있어서의 안이한 한계를, 세상의 불의와 위협과 타협하고 외면했던 마음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내적 자유와 정신의 존엄을 지켜내는 정신적, 영적 힘을 하느님과의 영혼 깊은 곳에서의 만남을 통해 길어낸 신앙인들, 증거자들의 글과 행적을 대하면서 시대와 대면하는 살아있는 영성이란 무엇인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히틀러와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양심과 자유와 신앙을 지키려 하다가 체포되어, 비밀경찰의 가혹한 심문과 거짓된 재판 끝에 교수형을 선고받고 죽어간 독일의 예수회원 알프레드 델프(1907~1945) 신부 역시 그러한 신앙인이자 증거자였으며 자유의 참의미를 누구보다도 깊이 깨닫고 실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왜 정신적 존재인가를 삶으로, 글로써 보여주었습니다. 1944년 7월 28일 체포되어, 이듬해인 1945년 2월 2일 처형될 때까지의 시간 동안 그가 남긴 옥중 수기는 그의 깊은 영성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옥중 수기’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In Angesichtdes Todes)란 책으로 1947년 출간되어 세대를 거듭하여 오랫동안 특히 독일어권내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젊은 지식인들에게 큰 감명과 영향을 주었으며 1988년에 간행된 그의 전집에는 ‘IV권: 감옥에서’라는 이름으로 실려있습니다. 2007년에는 같은 내용이지만 ‘묶인 손으로’(Mit gefesselten Handen)라는 제목으로 당시 독일 주교회의 의장 칼 레만 추기경의 서문과 함께 출판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제목은 매우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프레드 델프가 평소 좋아했고 자신의 방에 그 사진을 붙여놓았던 르네상스 시대 독일의 유명한 조각가 리멘 슈나이더의 작품인 ‘사슬에 묶여진 손’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감옥에서 그가 처했던 상황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번호 부터 세 번에 걸쳐 알프레드 델프 신부가 옥중에서 남긴 일기와 묵상 중 특히 생애의 마지막 공현 대축일을 보내며 적은 묵상과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하게하는 ‘주님의 기도’에 대한 묵상을 중심으로 그의 영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술에 담긴 깊은 영성과 통찰력 있는 시대진단은 지나간 어두운 시대에 대한 역사적 증언을 넘어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우리들에게도 큰 호소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묶인 손으로’ 그해 겨울, 대림에서 주님 봉헌 축일(2.2)의 시간 사이에 그가 남긴 신앙과 영성의 귀한 유산을 접하며 이번 겨울에 우리 스스로의 내면과 실천을 돌아보며 용기와 위로를 얻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 겨울

원래 개신교적 종교적 배경에서 자라났던 알프레드 델프는 청소년기에 가톨릭으로 개종하였습니다. 1926년 예수회에 입회한 그는 1936년에 사제품을 받습니다. 사회학을 공부한 후 다시 철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자 했지만 나치 정권의 등장 후 본격화된 가톨릭 교회, 특히 예수회에 대한 정부의 적대감과 압박 때문에 원래 계획한 뮌헨 대학에서의 계속적인 철학 연구를 포기하고 예수회가 발간하던 시대 비판적인 잡지 ‘시대의 소리’(Stimmen der Zeit)에서 소임을 하게 되며, 1939년부터는 편집장을 맡기도 합니다. 한편 1941년에 나치 정권은 아예 이 잡지의 출판을 금지시킵니다. 1939년부터 1944년 7월 비밀경찰에 의해 체포될 때까지 그는 뮌헨 근교 보겐하우젠의 성혈 성당에서 본당 신부로 봉직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그는 여러 번 유대인들이 스위스로 망명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지속적으로 글을 통해 그 시대의 ‘하느님을 알아본 능력을 잃은’ 사람과 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하느님과의 깊은 만남에서 오는 자유에 기초한 새로운 인본주의를 추구합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모색은 그가 관구장 제의에 의해 헬무트 제임스 폰 몰트케 백작을 주축으로 하는 크라이스아우어 모임에 함께하면서 심화됩니다. 그들은 히틀러 이후 새로운 정신적 질서의 건설을 위해 매우 심도 있게 견해를 나누었는데, 델프 신부는 새로운 사회 안에서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에 기초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 크라이스아우어 모임과의 공동작업은 결국 알프레드 델프 신부에게는 자신의 생명을 건 모험이 되었습니다.

1944년 1월 몰트케 백작을 포함한 여러 크라이스아우어 모임 일원들이 체포되면서 델프 신부의 신변도 위협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944년 7월 20일 독일군 장교였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백작 등이 중심이 되어 ‘작전명 발퀴레’란 이름으로 히틀러 암살이 시도되지만 실패하고, 바로 그 다음날 폰 슈타우펜베르크를 비롯한 주요 관련자들이 베를린에서 총살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밀경찰은 크라이스아우어 모임을 나치 정권 전복을 위한 광범위한 시도 중 하나로 옭아매려 했고, 결국 7월 28일 델프 신부는 보겐하우젠 성당에서의 미사 후 체포, 구금되어 고문을 포함한 가혹한 심문을 받게 됩니다. 그들이 원했던 암살 사건과의 관련은 입증하지 못했지만, 비밀경찰은 그와 크라이스아우어 모임의 동지들을 나치 이후 국가의 질서를 논의한 것 자체를 반국가적 행위로 규정하고 사형으로 몰고 갑니다. 무엇보다 이들이 깊은 신앙을 가진 가톨릭과 개신교 신앙인으로서 무신론적이고 반인간적인 나치정권과 다른 정신적 가치를 추구한 사실이 그들을 더욱 자극하였습니다.

예수회 사제였던 델프 신부에게 정권과 재판관들이 보여준 적대감은 이러한 정치적 재판이 사실상 비인간적 정권과 그리스도교 정신 사이의 양립할 수 없는 충돌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악명높은 재판관 프라이슬러가 이끈 선동과 거짓증언, 교활함으로 가득 찬 재판이 진행되었고, 그는 마침내 1945년 1월 11일 사형판결을 받습니다. 몰트케 백작 등이 1월 23일 처형된 것과는 달리, 델프 신부에 대한 사형집행은 한동안 유예되었고 동료에 대한 걱정과 애도, 감형에 대한 희망과 처형에 대한 각오 등이 그의 마음을 채웠던 그 마지막 날들이 얼마나 극단적인 인내와 용기를 요구했던 시험의 시간이었는지는 그가 가명을 써서 협조자들 도움으로 비밀리에 외부로 전한 쪽지들에 절절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마침내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에 그는 베를린 플뢰첸제에 있는 감옥의 교수대에 오르게 됩니다. 그의 수형생활과 임종을 돌본 페터 부흐홀츠 신부는 그의 평온하고 의연한 마지막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델프 신부는 그에게 마지막 순간에, “이제 반 시간 후면 나는 당신보다 더 많이 알게 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델프 신부는 이미 자신의 수고에, “우리가 죽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언젠가 보다 더 잘 살수 있어야 한다. 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라고 적어두기도 하였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진지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처형 후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베를린 외곽에 뿌려졌습니다. 무덤 대신에 기념비가 그가 봉직한 본당 주변에 세워져 그를 기억하게 합니다. [가톨릭신문, 2016년 1월 24일, 최대환 신부(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 주임)]

 

 

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 이야기 (5) 알프레드 델프 신부 (중)

처형 앞두고 광야 체험… 희망과 자유 깨달아

 

 

- 독일 헤센주 람페르트하임에 있는 알프레드 델프 기념성당 현판. (출처 위키피디아)


옥중에서의 최종 서원

1944년 7월 28일 체포된 후 알프레드 델프 신부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게슈타포에 의한 여러 차례의 잔인한 구타를 동반한 가혹한 취조나, 재판이 진행되고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베를린 테겔 형무소에서 체험한 극심한 고립감, 대부분의 시간을 손이 묶인 채로 있어야 했던 고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아주 오랫동안 기다리고 준비했고, 마침내 8월 15일로 결정된 최종서원을 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염려가 그를 초조하게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서원을 원하지 않으시는 것 같은 상황들이 그의 마음을 매우 어둡게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내적 고뇌를 힘겹게 견디며 그는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의 대축일을 맞이하는 9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 그는 성모님의 전구로 주님께서 위로와 자비의 징표를 보내주시기를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축일 전날, 선의의 협조자들이 세탁물에 숨겨 전해준 편지를 통해, 최종서원을 감옥의 면회실에서 비밀리에 예외적으로 실행키로 장상들이 허락했습니다. 그 날짜는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려 공교롭게도 12월 8일이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2월 8일, 마침내 일반 면회로 주어진 시간에 감옥의 면회실에서 극적으로 소망하던 최종서원을 발하게 됩니다. 그때 그의 모습을 그 자리에 함께했던 타텐바흐 신부는 몇 년이 지난 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델프 신부가 8일 아침에 너무나 감격한 결과, 서원을 발하는 동안 거의 자기의 몸을 가누지 못한 것이 놀랄 일이겠는가? 그것은 또한 실로 진기한 의식이었다! 책상에 감독하는 관리가 앉아있고, 그 우측에 델프 신부가 수갑을 푼 상태로 회색빛 민간인 복을 입고 서 있고, 책상의 좁은 측면에 내가 있었다. 대화는 제삼자가 배석해 있었기 때문에 매우 방해를 받았는데, 먼저 가족들과 예수회원들의 동정에 대해 얘기가 오갔다. 이 모든 소식들이 이미 델프 신부를 깊이 감동시켰다. 그리하고 나서 변호사 선임에 관한 사무적인 이야기를 마쳤다. 대화가 서원 문서에 서명하는 일에 이르자 델프 신부는 완전히 입을 다물더니 자기 의자에 주저앉았다. 정말로 서명할 의향이 있는지를 묻자 비로소 그는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서원문장을 혼자 읽은 다음 펜을 쥐고는 빠르고 힘있게, 또렷하고 강한 필체로 서명했다. 델프 신부는 남의 눈에 띌 정도로 애를 써 자신의 감정을 자제해 가면서 원문을 큰소리로 겨우 낭독할 수 있었다.(마리안네하피히 편저, 알프레드델프, 김용해 옮김, 시와 진실, 2011)”

이렇게 그날의 절절한 광경을 증언하면서 타텐바흐 신부는 또한 델프 신부가 그날 자신의 감회를 직접 적어놓은 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너무나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8일이 되기 전 여러 날을 나는 계속해서 자비의 소식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 결과 나의 소원이 이뤄진 것이다… 나는 최종적으로 나의 생명을 바치겠노라 약속했다. 이제 모든 외적인 사슬들은 나에겐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주님이 나를 사랑의 사슬로 영광스럽게 하셨기에.”


주님공현대축일 묵상

최종서원 이후 델프 신부가 감옥에서 보낸 대림과 성탄, 공현을 지나 마침내 그가 처형당하는 주님 봉헌 축일(2월 2일)에 이르는 전례적 시간은 그에게는 고통 속에 죽음을 시시각각 대면하고 준비해야 하면서도 깊은 신앙의 희망을 발견하는 진정한 의미의, ‘광야’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이 시련과 정화의 시간에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체험한 자유와 하느님과의 만남을 네 번의 대림절 주일 묵상과 성탄 밤의 묵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제 함께 음미하고자 하는 주님공현대축일 묵상에 남겨놓았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사형 판결이 예상되는 재판을 이틀 앞두고 맞이한 공현대축일에 오직 주님 외에는 의지할 곳도 믿을 곳도 없다는 것을 고백하며 이렇게 마음의 다짐을 적고 있습니다. “주님이신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밝히실 것이며 나에게 나 자신으로부터 나와 당신께로의, ‘절대적 도약’을 요구하신다. 나에게도 건너야 할 광야가 나타난 것이며, 한 가공할 폭군이 손에 칼을 들고 위협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과 인격과 신앙을 하나로 모아들이는 진실되고 열정 어린 내면에서 오는, ‘말’을 간절하게 소망하고 추구하고 기도합니다. 그는 오직 그러한 말로서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벗들에게 증언하고 주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내적 열망이, ‘자유의 법’에 대한 갈망임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진 이번 주간을 보내며 나는 만일 한 인간이 자신 내면의 큰 공간과 내면의 자유를 지닐 능력이 없다면,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관계와 폭력의 법칙에 굴복하게 되는 일이 거듭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일 불가침적이고 건드려질 수 없는 자유의 공기를 자기 것으로 할 수 없다면, 그는 모든 안녕과 주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더 이상 참된 의미의 인간이 아니라, 그저 처분 가능한 대상, 숫자, 통계치에 불과하다.”

그는 광야의 시련과 시험을 이겨낸 동방에서 온 세 사람을 기억하는 축제가 전하는 복음이 바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자유의 법’이라는 것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인간 자유가 탄생하는 ‘순간’은 다름 아니라, 하느님과의 ‘만남’ 순간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주님이신 하느님과의 자유롭고 조건 없는 만남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의 고유한 공간을 얻게 된다. 모든 다른 것들은 보잘것없는 진흙 위에 세워진 오두막에 불과하고 어느 날 무너져 폐허가 돼버린다. 왕좌를 보며 두려워하지 말고 구유에 경배하라.”

이제 그는 자유를 묵상하며 비로소 절대적인 의미를 지닌 두 가지 근원어, ‘경배하나이다’(adoro)와 ‘받으옵소서’(suscipe)에 도달합니다. 그는 이 두 개의 말이야말로 인간 자유의 두 가지 근원어라는 것을, 동방박사들이 경배하기 위해 무릎을 꿇는 행위와 선물을 봉헌하고 빈손을 내어놓는 행위는 자유로운 인간의 근원적 행위라는 것을 깊이 묵상합니다. 이제 그는, 자유의 법이라는 약속은 은총의 법을 통해 자신을 온전히 절대자에게 내어놓은, 반드시 인간에게 성취되리라는 확신을 얻게 된 것입니다. “광야는 결코 인간의 최종적 운명이 아니다. 광야는 이 위대한 자유를 위한 단련의 시간이다. 우리는 반드시 광야를 건너게 될 것이다. 나는 안다. 나는 홀로가 아님을. 은총의 법이 작용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별이 광야 위에 뜰 것임을.” [가톨릭신문, 2016년 1월 31일, 최대환 신부(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 주임)]

 

 

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 이야기 (6) 알프레드 델프 신부 (하)

참된 자유는 주님께 모든 것 맡길 때 얻게 돼

 

 

알프레드 델프 신부님이 사목했던 뮌헨 보겐하우젠 성혈 성당. (출처 위키미디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알프레드 델프 신부가 옥중에서 보낸 마지막 겨울에 남긴 감동적인 묵상글들은 모두 그가 오랫동안 삶과 사유를 통하여 고민한 주제인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모아집니다. 그는 자유 속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사람다움의 참뜻으로 보았으며, 그러한 자유를 얻고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은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데에 있다는 것을 힘있게 주장합니다. 자유는 몰아적 헌신과 은총의 체험 속에서 그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며,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타인과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과의 만남 속에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을 경배할 줄 아는 휴머니즘’, ‘하느님의 섭리와 이끄심을 신뢰하는 휴머니즘(Theonomer Humanismus)’의 길을 사람들에게 일깨우고자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옥중에서 남긴, 깊은 영성적 직관과 신학적 사유를 담고 있는 ‘주님의 기도’에 대한 묵상은 그의 이러한 확신을 매우 인상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묵상은 나치의 패망 이후 그가 봉직하던 예수회 잡지 ‘시대의 소리’의 복간 첫 호(1946년 10월호)에 실리면서 비로소 처음 공개되었고, 그가 옥중에서 남긴 다른 글들과 함께 델프 신부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린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주님의 기도’ 묵상 중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대목을 통해 그가 말하는 참된 사람됨의 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아버지로서, 원천으로서, 이끄심으로서, 자비로움으로서 깨닫고 부르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의 모든 격랑과 시련 안에서 인간으로서 성장하게 하는 내적인 힘이다… 모든 시련과 출구 없는 막막함과 버려짐 속에서도 믿는 이들에게는 주님의 아버지다움, 자비로움, 역경을 이겨내게 하는 힘이 고요하지만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아무리 버림받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로 가는 길을 내신다. 세상의 모든 다른 것들은 오직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새롭게 만나는 것에 도움이 될 때만이 그 가치를 지니게 된다.”


우리(의)

“… 그럼에도 예전부터 알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이 홀로 있음은 좋지 않다. 바로 이러한 (고난의) 시간에, 더욱! 인간은 그래서 다른 사람이 매달려 있는, 사다리의 다음 계단을 향해 외쳐보고자 시도하지만, 우리가 있는 곳은 우리의 목소리로 소리를 내기엔 너무 높은 곳이다. 인간의 말은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아버지! (이 기도의 말 속에서) 갑자기 그 단절이 극복된다. 하느님께로 가는길, 하느님을 통해 가는 길은 언제나, 그리고 이미 인간에게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는 진리가 분명하고 투명하게 드러난다. 인간은 경배하고 믿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하고 일치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 사람들 모두의 중심인, 인격적으로 다가오시며 말씀을 거시는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비로소 서로에게 인간이게 하시며 공동체를 공동체이게 하신다.”


하늘에 계신

“오직 초월과 피안의 영역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참된 처신과 창조력을 주는 세상과의 거리감, 진심 어린 경외심과 열려있는 순명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근본 구조를 이룬다. 오직 우리 자신을 넘어서는 곳을 향한 시선과 결심만이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지 못하기에 오늘날 사람들은 이처럼 대중과 대상으로만 취급되며, 삶에 있어 무력하고, 인간의 근본질서와 근본인식에 있어 그토록 무능한 것이다… 사람은 분명 개인적 자아를 통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된다. 그러나 그 자아가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대화 없이 홀로만 있다면, 어느새 얼음같이 차갑고 죽음과도 같은 고립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열고 실재에 다가가게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인간의 본질에 속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절대자와의 대화이다.

단지 피안과 초월의 이상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인격적 하느님은 생명의 하느님이시다. 그분과의 대화를 통해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참된 살아있는 삶의 공간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 대화 속에서 인간은 경배, 경외심, 사랑, 신뢰라는 자신의 존재를 이루는 근본 가치들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절대자와의 대화가 결여된 모든 열성과 진지함과 투신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결국은 비인간적인 것으로 남아있게 된다.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다. 이러한 인격적인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 하늘이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의 가장 큰 행복과 충만함을 감지하게 된다. 이 하늘은 결코 일차적으로 어떤 공간이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이시며, 하느님과의 만남을 뜻한다. 하느님을 체험하는 이는 하늘에 사는 이이다.”


하느님의 섭리와 이끄심에 마지막까지 자신을 맡기며

이처럼 주님과의 만남 속에서, 타인을 향한 헌신 속에서 자유와 생명력과 참된 인간다움이 있음을 감옥에서도, 처형 당하는 순간까지도 깨닫고 증언했던 알프레드 델프 신부의 깊은 영성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섭리와 이끄심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자라났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그가 사형판결을 받은 날 적은 그의 작별의 글에서도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이 유언과도 같은 이 글을 읽으며 우리 역시 올 한해 우리의 삶 속에서, 참된 자유는 주님의 손길에 대한 의탁에서 시작된다는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희망해 봅니다.

“이제 나는 아직 생명이 붙어있는 한, 그동안 이 묶여진 손으로 자주 해왔던 ‘축복’을 더 기꺼이 더 많이 마지막 순간까지 보낼 것입니다. 이처럼 위기와 고통을 겪는 이 나라와 이 민족에 축복을. 교회에 축복을. 부디 그 안에 다시금 순수하고 투명한 샘물이 흐르기를. 수도회에 축복을. 주어진 본연의 사명에 몰아적으로 투신함으로써 올곧고 의연하며 자유로이 본연의 자기 자신에 머물 수 있기를. 나를 믿어주었고 신뢰해 줬던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내가 옳지 못하게 대했던 이들에게도 축복을. 나에게 그토록 자주, 또 과분하게 좋은 사람이었던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하느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나의 연로하신 부모님이 이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기시도록 도와주시고, 여러 가지로 돌봐주세요. 모든 것은 주님이신 하느님의 자애로운 보호 안에 있겠지요. 아무튼 나는 이곳에서 주님이신 하느님의 섭리와 이끄심을 진실되이 기다리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그분이 데려가실 때까지 그분을 신뢰하렵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이 운명이 결코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 아님을 발견하도록 힘껏 애쓸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6년 2월 7일, 최대환 신부(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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