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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사유하는 커피35: 기적의 본질과 맹글라바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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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1-17 ㅣ No.640

[사유하는 커피] (35) 기적의 본질과 맹글라바 커피


미얀마 난민에게 기적을 안겨주자

 

 

그야말로 기적을 갈구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당혹감이 두려움을 거쳐 분노로, 이젠 낙담과 좌절로 이어져 인류를 주저앉히려는 기세이다. “내일 출근길에는 모두 마스크를 벗고 마주 보며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기적을 일으켜 달라”고 염원하며 잠들고 있다. 기적까지 청하며 가고 싶은 곳이 1년 전 일상이라니…. 우리는 그때 기적 속을 살아갔던 것일까?

 

기적이란 무엇인지를 되뇐다. 사전적으로 풀이하면,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다. 무신론자에게 기적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유신론자에게 기적은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간절함이다. 이렇게 두 가지 입장으로 선명하게 갈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적은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신을 부정하는 자들에게 모든 현상은 과학적으로 설명돼야 한다. 그런데 기적은 정의 자체가 ‘과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반면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기적은 ‘신이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는 사건’으로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기적의 본질’을 생각한다. 본질이란 ‘불변하는 무엇’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에서 불변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느 부분에 집중해야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기적의 본질은 그것을 행한 신의 의도에 담겨 있다. 한편으로 에드문트 후설은 “본질은 현상 안에 있다”고 말한다. 기적은 인간의 감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현상이므로, 우리는 기적 속에서 본질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 철학자의 견해만 따져보면, 예수께서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눈멀고 말 못하는 이들을 고치신 여러 기적의 본질은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하나는 신성(神性)을 드러냄으로써 기적을 본 냉담자들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신의 영역을 감각하기는커녕 알 수 없다. 신은 인간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적은 신과 인간 세계의 접점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적을 통해 신의 존재를 느낀다. 기적의 본질에 대한 다른 하나는 복음(마태 8,27)에 적혀 있듯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가 누구인지 묻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기적의 본질이란, 절대자의 존재를 느끼게 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의지로 신에게 의지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예수께서 행한 현상으로서의 기적에는 ‘불변하는 사랑’이 있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사랑이 예수의 기적 속에 항상 존재한다.

 

코로나19 속에서 우리가 염원하는 기적도 결국 사랑의 실천이겠다. 기적과 사랑은 양쪽으로 흐른다. 기적이 사랑을 낳을 수 있고, 사랑이 기적을 부를 수 있다. 기적은 신과 인간세계의 접점이자 교집합이기 때문이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올리는 기도를 “사람들이 서로 손잡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나의 행동이 누군가의 행복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로 ‘기적의 본질’을 실천할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끼치는 해악이 미디어에는 주로 선진국 상황만 전해지고 있는데, 형편이 어려운 나라들의 사정은 더욱 충격적이고 눈물겹다.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시아에 있는 커피 생산국의 소규모 농가들은 끼니를 잇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이동 자체가 금지됐으며, 애써 수확한 커피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묶여 있다.

 

특히 이곳저곳으로 쫓겨 다니며 살아가고 있는 미얀마 난민들이 자연에서 채집하다시피 하는 커피는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는 생명과 다름없다. 미얀마 맹글라바 커피 한 잔을 가려 마시는 우리의 일상이 미얀마 난민에게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커피의 본질은 ‘사랑의 실천’과 닿아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월 17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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