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현대 영성: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 겸손(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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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3-16 ㅣ No.1552

[현대 영성]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겸손 :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겸손하게 조용히 성당에 다니고 싶은데, 자꾸 사목 위원으로 봉사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당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그 자매는 늘 자기 자랑을 늘어놓고 다른 이들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합니다. 불평에 동참하자니 죄를 짓는 것 같고, ‘그러지 말라’고 하자니 그 자매가 저에 대해 뒷담화할까 두려워요.”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 세례자 요한의 이 고백은 사실 제가 20년 전 종신 서원 때 택한 성구입니다. 작아지는 삶, 겸손의 삶을 살기를 다짐하며 살아왔지만 때로는 오만과 불순종, 교만과 아집, 때로는 겸손을 가장한 위선에 얼룩졌던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요즘 제가 원하는 삶은 하느님 안에서 숨어 사는 삶, 조용히 수도원에 머물며 책을 읽고, 번역도 하고, 글도 쓰고, 기도하고, 농장에서 땀도 흘리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특강을 하고 피정 지도를 해야 합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이 면담과 고해성사를 위해 분도 명상의 집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분원 책임자로서 형제들을 위해 봉사하고 피정의 집을 운영해야 합니다. 계속되는 공사와 수리로 이제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 감을 잡았습니다. 그래도 항상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지만,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언제나 저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요? 좀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라고 기도드립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제 안에서, “가만히 좀 있거라! 내가 하는 것이니 너는 그저 ‘예’하고 따라오기만 하거라” 하십니다. 하느님 마음대로 하십니다. 

 

저는 겸손은 하느님께서 마음대로 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의지를 맡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겸손은 세상의 겸양지덕과는 다릅니다. 단순히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겸손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열 달란트를 받고서도 하나만 사용하며 겸손한 척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오히려 불순종입니다. 겸손은 진정 하느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세에서 시작하여, 하느님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순종으로 완성되어 갑니다. 하느님을 위해서는 똥(?)도 풀 수 있는 마음 자세가 바로 겸손이요 순종입니다. 겸손한 이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지만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하느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넣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사랑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는 세례자 요한의 말처럼 진정으로 예수님 앞에 작은 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더 커지게 하고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데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히 자신이 보기에 미숙하고 부족한 사람들 안에 있는 예수님을 보며 그들에게 겸손을 실천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나를 모독하거나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과연 겸손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기도와 수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참된 영적 성장을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버리고 비우는 삶입니다. 때때로 믿음이 약한 우리는 이것을 버리면, 저것을 포기하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꼭 붙들고 내려놓고 낮아지기를 두려워할 때가 많습니다. 마주 오는 사람을 통한, 시련의 시기를 통한 십자가를 거부하고 도피하려 들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 때문에 흔들리고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 앞에 겸손하지 못한 생각이 자신을 사로잡을 때 침묵 가운데 기도하며, 세례자 요한처럼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는 말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사도 바오로처럼 약함을 통해 큰일을 하시는 주님께 자신을 내어 맡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주님의 큰 사랑과 섭리를 신뢰할 때 겸손한 마음이 생겨날 수 있을 것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비굴하게 업신여기라는 말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나를 주님께서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시고 계신 것처럼, 다른 이들도 그렇게 받아 주시고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의 마음과 품위 있는 태도로 자신과 이웃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때 교만의 꽃이 떨어지고, 겸손의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2021년 3월 14일 사순 제4주일 가톨릭마산 3면, 박재찬 안셀모 신부(분도 명상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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