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성미술ㅣ교회건축

건축칼럼: 하느님의 집, 야곱의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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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2-19 ㅣ No.835

[건축칼럼] 하느님의 집, 야곱의 사다리

 

 

야곱의 꿈 풍경(미하엘 빌만, 1691)

 

 

야곱은 어떤 곳에서 돌을 베고 누워 자다가 꿈에, 하늘에 닿아 있고 하느님의 천사가 오르내리는 층계를 보았습니다. 깨어나 보니 그곳은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고 말씀하시는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또 그곳은 자신이 서 있는 곳임도 깨달았습니다. 그가 꿈꾼 ‘이곳’은 하늘로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하는 계단, 이 땅과 하늘을 결합하는 문이자 세계축(axis mundi)이었습니다.

 

야곱은 두려움에 싸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domus Dei)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porta coeli)이로구나.”(창세 28,17)성당을 ‘하느님의 집’, ‘하늘의 문’이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이처럼 성당의 원상을 처음으로 깨달은 이는 야곱이었고, 그것을 ‘하느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처음 말한 이도 야곱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엄청난 꿈을 층계, 집, 문, 기둥, 돌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모두 집을 만드는 요소입니다. 기둥을 세우고 벽을 두르지도 않았는데 하느님께서 계신 그곳을 하느님의 집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참 이상합니다. 인간에게 집이 무엇이기에 야곱은 하느님께서 계신 곳을 감히 사람이 사는 집, 드나드는 문으로 말했을까요? 집이란 그만큼 인간에게 근원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베고 잤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워 기름을 붓고 주변과 격리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둥이 거룩한 하느님의 집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창세 28,22) 이것이 인류 최초의 성당이니 최초의 성당 건축가는 야곱입니다. 영어 성경에 기둥을 ‘a pillar’라 했는데, 이는 지붕을 받치는 똑바로 선 둥근 기둥을 말합니다. 기둥을 세우면 지붕을 세운 것과 똑같습니다. 따라서 수직으로 기둥을 세우는 것만으로 그 자체가 집을 짓는 건축 행위입니다. 꿈속에 야곱의 사다리로 나타난 하느님의 집이, 벽과 지붕으로 구축된 하느님의 집으로 이 땅 위에 지어진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아래에 있는 벽은 사람들을 에워싸는 땅, 꼭대기의 돔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하늘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 기념 기둥을 세운 야곱처럼, 건축가들은 야곱의 사다리를 돌로 구축한 표현물인 성당을 무던히도 애써 지어왔습니다. 제대 위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빛은 다시 제대를 환하게 밝혀 줍니다. 이렇게 돌로 지어진 수많은 빛의 성당이 바로 오늘날의 야곱의 사다리입니다. 더구나 야곱은 기념 기둥을 세우고 그 고장의 이름을 루즈에서 ‘베텔(Bethel, beth El, house of God)’, 곧 ‘하느님의 집’으로 바꾸었습니다. 기념 기둥을 세우니 고장도 하느님의 집이 되고 맙니다. 기념 기둥이 미치는 힘이 그토록 넓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성당이 세워지면 주변의 땅 전체가 하느님의 집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성당은 이렇게 지역까지 하느님의 집으로 바꾸는 야곱의 사다리입니다.

 

[2022년 2월 20일 연중 제7주일 서울주보 7면, 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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