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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35: 이브 콩가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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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3-03 ㅣ No.385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35) 이브 콩가르 (중)

삼위일체 구원 경륜 안에서 성자ㆍ성령의 상호보완적 관계 강조



- 프랑스의 신학자 이브 콩가르 추기경은 1979~1980년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Je crois en l’Esprit Saint) 총 3권을 통해, 20세기 후반 성령론의 재발견 및 새로운 발전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이 책은 현대 성령론의 큰 디딤돌을 놓은 것으로 평가되며, 아직까지도 이 분야의 모범적 교과서로 손꼽히는 명저다.


성령론적 그리스도론

총 3권으로 이루어진 콩가르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는 1982년 로마에서 개최된 성령론에 관한 대규모 국제 학술회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며, 나아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의 1986년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의 발표에도 어느 정도 배경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로써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이후 이루어진 성령론의 발전이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활짝 꽃을 피우는 시점에 도달했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 발표된 교회 공식 문헌들은 성령에 관해 언급하면서, 무엇보다도 삼위일체의 구원 경륜 신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자와 성령 간의 분리 불가능한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강조는 한편으로 성령론적 전망의 개진을 통해 '그리스도 중심주의' 관점을 보완해서 구원 경륜적 삼위일체의 신비를 재확인하고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그리스도 중심주의'에 대한 대안적 의미에서의 이른바 '성령 중심주의'의 출현을 경계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현대 신학의 흐름에서 성령론의 발전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나, 그 본질이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대체하는 차원에서 '성령 중심주의'를 주창하는 데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즉, 이제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 않고, 대신 '성령'에 관해서만 말하겠다는 식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의 구체적인 신앙생활 속에서도 이러한 차원의 성령 운동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일이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이루어진 성령론 발전의 흐름 속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보다 더 넓은 성령의 구원 경륜을 말하는 일부 극단적 주장이 출현했고, 교회 교도권에서는 이러한 흐름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게 된 것이다.

현대 신학은 성자와 성령의 의 불가분한 상호보완적 관계를 강조하는 '성령론적 그리스도론'의 흐름을 띠는데 콩가르는 주저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에서 성령론적 그리스도론의 기초를 놓았다. 사진은 오순절에 성령이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내려오는 모습. CNS 자료 사진


이런 맥락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0년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 29항에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와 양자택일을 해야 할 존재가 아니시다"는 점을 매우 강조해 지적한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2000년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Dominus Iesus)에서도 "성령의 활동은 그리스도의 활동의 외부에 있는 것도 아니고 병행하는 것도 아니다"(12항)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즉, 성령론이 그리스도론에 반대되거나 그리스도론을 대체하는 흐름에서 전개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재확인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부터 이루어진 성령론의 재발견과 새로운 발전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 파스카 신비의 구원론적 의미를 삼위일체론적 차원에서 재숙고함에 있어 새로운 성령론적 성찰이 요청된다는 맥락에서 시작된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핵심 문헌인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Gaudi-um et Spes) 22항이 의도하듯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파견된 영으로서 보편적이고 우주적 차원에서 구원 사업을 위해 활동하시는 성령의 작용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따라서 성령의 보편적, 우주적 현존과 작용은 구원 역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사건의 유일회적 특수성과 맺게 되는 불가분의 관계 안에서 단일한 구원 경륜을 이루어 나가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리옹의 이레네우스(130/140?~200/202?) 교부는 성자와 성령 곧 '하느님의 두 손'(the Two Hands of God)이라고 주된 저서 「이단 반론」(Adversus Haereses)에서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독일의 발터 카스퍼(Walter Kasper, 1933~) 추기경은 주된 저서 「예수 그리스도」에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생명에 성령을 통하여 참여함"이라고 말함으로써 단일한 삼위일체적 구원 경륜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자와 성령의 불가분한 관계를 잘 설명한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성령론은 반드시 그리스도론적이어야 하고, 동시에 그리스도론은 필연적으로 성령론적이어야 한다고 상호보완적 측면에서 말할 수 있다. 이브 콩가르 추기경은, 이처럼 삼위일체의 구원 경륜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자와 성령 간의 불가분한 상호보완적 관계를 강조하는 현대 신학의 흐름과 분야를 가리켜 '성령론적 그리스도론'이라고 부른다.


성령 청원 기도

콩가르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 총 3권은 '성령론'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도, 동시에 '성령론적 그리스도론'의 기초를 놓은 저서이기에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먼저 이 책의 제1권에서, 콩가르는 성령론의 성서적 근거와 역사적 개관을 파노라마식으로 제시한다. 즉, 구약성경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하느님의 영에 대해, 또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님의 영에 대해 고찰하며, 이 '영' 개념이 신약성경을 거쳐 초대 교회에 이르러 어떻게 보다 분명한 위격적 차원의 '성령'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는지를 잘 설명한다. 또한 중세의 전례 기도문 안에서 '성령 청원 기도'(Epiclesis)가 자리잡아가게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제2권과 제3권에서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고찰이 이루어지는데, 특히 제3권의 후반부는 성체성사에서의 '성령 청원 기도'에 대해 상세하게 다룬다.

사실, 성령은 전례와 성사 안에서 사람들에게 작용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킨다. 성령은 또한 그리스도의 신비를 상기해 '기념'(Anamnesis)하게 하며, 마침내 그분을 현존케 해 그리스도의 신비를 실현하는 거룩한 힘으로 작용한다. 특별히 '성령 청원 기도'란, 성체성사의 전례 안에서 성령을 부르며 하느님의 힘과 능력이 임하기를 청원하는 기도를 말한다. 견진성사에서는 견진성사를 받는 사람에게 도유하며 성령 특은의 날인을 청하는 예식이 가장 핵심적이다. 사제로 서품되는 성품성사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성령의 임하심을 청하는 주교단과 사제단의 안수 기도이며, 이 예식과 연결된 마지막 축성 기도를 통해 후보자는 비로소 사제로 서품되는 것이다.

성체성사에서 '성령 청원 기도'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한 축성/기념과 더불어 가장 핵심 부분을 구성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미처 그 의미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성체성사의 '성령 청원 기도'에 두 가지가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성령의 이름을 부르며, 봉헌된 빵과 포도주를 성체와 성혈로 축성해주시도록 기원하는 '축성 기원'의 '성령 청원 기도'다. 감사기도 제2양식에서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거룩함의 샘이시옵니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두 번째는 성체와 성혈의 축성과 거양 이후에, 다시 같은 성령을 부르며 교우들의 일치를 기원하는 '일치 기원'의 '성령 청원 기도'다. 감사기도 제2양식에서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미사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the body of Christ)을 우리 안에 직접 받아 모시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받아 모신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한 몸을 이룸으로써, 이제 '그리스도의 신비체'(the mystical body of Christ)인 '교회'를 비로소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신비이며, 또한 그 신비를 청하는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인가?

콩가르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는, 이처럼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인 성령에 관한 신학과 초대 교회의 가르침을 역사적으로 개관하며, 특히 교회의 성사와 전례 안에서 작용하는 성령의 신비로운 현존과 활동에 대해 상세히 고찰해 본격적인 연구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매우 높게 평가받는다. 신학적으로 본다면, 교회론과 성령론을 연결시킨 통합적 전망을 제시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그런데 교회론적 공의회라고 일컬어지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그저 단절적, 배타적 관점에서만 보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안을 향한 교회'Ecclesia ad intra)와 ''밖을 향한 교회'(Ecclesia ad extra)라는 관점에서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재해석하고자 시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성령의 작용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성령께서는 성사와 전례 등과 같은 '안을 향한 교회'의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활동하시지만, 그 신비로운 현존과 작용은 교회의 가시적, 제도적 경계를 넘어 '밖을 향한 교회' 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 콩가르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는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도 통찰력 있는 전망을 제시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호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평화신문, 2014년 3월 2일,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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