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2016-0313.....사순 제5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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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3-12 ㅣ No.2008

사순 제5주일 (다해)

이사 43,16-21        필리피 3,8-14       요한 8,1-11

2016. 3. 13.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이 하시는 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세상의 삶에서 만나는 것들이 사람의 생각과 판단을 중심으로 움직이거나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실제로 그러한 자세로 삽니다. 이렇게 말할 때, 그 중심이라고 할 대상에 귀중한 존재라고 생각할 자기 자신은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까지 그 범위를 넓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사순시기 제5주일입니다.

올해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정해진 날짜에서 두(=2)주간이 남았습니다. 날짜로는 14일이나 13일쯤 남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을 지내면, 우리는 부활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 부활(復活)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놀라운 일에 우리가 참여할 희망을 갖는 날이겠지만, 우리의 현실이 그렇게 되는 데에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이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삶에서 아주 쉽게 내 편과 네 편을 가릅니다. 내 생각이나 뜻과 일치한다거나 나에게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된다면 내 편이라고 구별할 것이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다고 여긴다면 내 편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내 편과 네 편을 구별하면, 그들에 대해서 내가 드러내는 태도는 아주 분명해집니다. 이 자리에서는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얘기는 할 이유가 없지만,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내 편과 네 편에 대한 얘기의 한 가지를 오늘 복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그 내용은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에 대한 처벌과 단죄에 관한 얘기입니다. 사회통념상, 나는 하지 않을 행동을 한 사람에게 우리는 좋은 소리를 말하지 않습니다. 말하지 않는 것으로 끝내는 정도가 아니라, 그 상황에 처한 사람은 내가 사는 공동체에 필요가 없다거나 밀어내야 정상이라고 여기면서, 나만 올바른 길을 가는 것처럼 여깁니다. 그들도 있어야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다르게 대하는 것이 사람의 생각이고, 하느님도 그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남과 구별되는 올바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님께 처벌할 방법을 물었습니다. 간음이란 무엇이겠습니까? 혼인관계가 아닌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여러 가지 목적과 환경의 핑계를 대면서, 각각의 성()에 맞는 행동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처럼 그렇게 벌어진 일에 대하여 대답하고 결정할 입장이라면 어떻게 판단하겠습니까?

 

우리가 아는 율법에 이런 행동을 한 여자에게는 돌을 던져 죽이라고 했다고 먼저 운을 뗀 사람에게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모양으로 대답해주겠습니까? 제가 이 시간에 질문을 너무나 많이 해서, 또 대답할 시간을 주지 않아서 제 말이 어렵다고 느끼실까요? 이 시간에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한 다음에, 제가 생각하는 대답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만, 여러분도 각자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그저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의 말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판단을 묻는 일도 좋을 것입니다.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도록, 올가미의 모양으로 된 그물을 쳐놓고, 의롭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예수님께 독한 마음과 생각으로 질문합니다. ‘모세가 정한 법은 천년이 훨씬 넘은 오래된 것이니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까요? 아니면 그런 죄를 범한 사람도 우리가 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될 자격이 있으니 우리들의 가운데에 머물러도 좋다고 말씀하셔도 될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이렇게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내가 하는 행동을 말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 곤경에서 어떻게 벗어나셨는지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우리도 과연 그러한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까요?

 

이 시간은 우리가 어떻게 사는 일이 옳거나 그른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답하실 것인지 그 대답을 찾고, 신앙인으로 사는 우리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의 본보기를 따라 살 수 있도록 도우심을 청하는 시간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 사람으로 살고는 있지만,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실천할 사람으로 사는 올바른 방법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대답을 하려면, 하느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하셨는지 예언자들이 선포한 말씀에서 내가 따라 살아야 할 자세를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사야예언서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세상에 하실 일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내가 선택한 나의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는 샘을 내고, 사막에는 강을 낸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렇게 하느님께서 움직이시는 것을 자기 눈으로 봤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 볼 수 있는 일을 하신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하느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신앙인에게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는 한 가지 기준을 말하겠지만, 그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는 얘기입니다. 바오로사도께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자세가 우리 안에도 자리를 잡을 수 있기를 청할 시간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실 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신앙인이라는 말씀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하느님, 저희를 도우시어, 저희가 당신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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