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깊은 숲속 기적의 샘을 찾아: 지극히 거룩하신 고통의 성모 마리아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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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5-20 ㅣ No.1978

[어머니 만나러 가는 길] 깊은 숲속 기적의 샘을 찾아

 

 

지극히 거룩하신 고통의 성모 마리아 성지.

 

 

“여러분, 이 그림같은 사진 어떠세요?”

이탈리아를 찾는 순례자들에게 제가 꼭 안내하고 싶은 지극히 거룩하신 고통의 성모 마리아 성지입니다. 여러 성모 성지 가운데 이곳을 택한 이유는 바로 이 한 장의 사진 때문입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이 사진을 본 저는 영화 <겨울왕국>의 얼음성이 떠오르며 이내 이 성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건축양식에다 깊은 산 속에 자리잡은 모습이 제게는 퍽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순례단이 올 때마다 꼭 이곳을 추천하지만 저의 바람과 달리 실제 한국 순례자들에게 안내할 기회는 딱 한 번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 마음속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성지를 이렇게 글과 사진으로나마 여러분에게 안내할 수 있게 되어 무척 행복합니다. 

1888년 3월 22일, 로마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작은 도시 카스텔페트로소에 사는 파비아나 치키노와 세라피나 발렌티노, 이 두 시골 처녀에게 성모님은 발현하셨습니다. ‘체사 트라 산티’라 불리던 들판에서 여느 때처럼 농사일을 하던 파비아나와 세라피나는 양 한 마리가 사라진 것을 알고 각자 다른 길로 양을 찾아나섰습니다. 몇 시간 뒤 파비아나는 근처 작은 바위 안쪽에서 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바로 그때 성모님께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부둥켜안은 모습으로 발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열흘 뒤 부활 대축일에 같은 장소에서 성모님은 다시 발현하셨고 이때는 세라피나도 함께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고통의 성모님이 발현하신 당시를 묘사한 그림.

 

 

지극히 거룩하신 고통의 성모 마리아 성지의 발현은 다른 성모 발현 성지와 구별되는 두 가지 특별함이 있습니다. 먼저 교회의 고위 성직자에게도 성모님이 직접 나타나셨다는 점입니다. 당시 이 발현 소식은 바티칸까지 알려지게 되었는데 교황 레오 13세는 관할교구 교구장이던 프란치스코 마카로네 팔미에리 주교에게 직접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주교가 성모님이 발현하신 바위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하자 얼마 뒤 성모님은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보통 발현 목격자들이 어린이, 시골 농부 등 평범하고 소박한 이들인 것을 감안할 때 교구장 주교에게 직접 나타나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점은 발현하신 성모님의 의복에 있습니다. 고통의 성모님 모습으로 발현하셨음에도 슬픔을 표현하는 검은색이 아닌 파란색과 붉은색 옷을 걸치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지의 주임 신부님은 이렇게 풀이해주시더군요. 성모님께서는 비록 인간 예수님은 돌아가셨지만 곧 부활하시어 다시 오실 것을 알고 계시기에 슬픔과 고통에 머무르지 않고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처럼 이렇듯 화사한 새 옷을 입고 준비하고 계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참 신앙인의 눈으로 고통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신부님의 설명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 성모 칠고의 길.

 

그래서일까요. 저의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는 이곳에서 성모님을 만난 것 같습니다. 이 성지를 처음 방문해 앞서 말씀드린 신부님의 설명을 듣고난 뒤 성모 칠고의 길을 걸었습니다. 곳곳에 놓인 청동상을 보며 성모님의 생애를 묵상하던 중 돌아가신 아들 예수님의 손을 잡고 계신 성모님을 보는 순간 가슴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더니 온몸에 전율이 일더군요. 그 청동상의 모습은 마치 아들이 마지막 순간에 홀로 외롭지 않도록 손을 잡아 자신의 체온을 그대로 전달하는 애끓는 어머니의 마음 같았습니다. 그때 제 뇌리에서 가족의 교통사고, 어린 막내딸이 겪은 어쩌면 한 발짝만 더 내딛었더라면 돌이킬 수 없었을 순간들이 떠오르며 그 고비마다 위험을 막아주신 분이 바로 성모님이시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내가 늘 너와 함께 있겠다.”는 말을 오감으로 느낀 첫 순간이었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고통의 성모 마리아 성지는 1888년 3월 22일 첫 발현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순례자들이 다녀갔습니다. 그 순례 행렬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그리고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계셨습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고통의 성모님께 기도하며 치유를 받는 은총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 고통의 성모 성지 성당의 제대. 고통의 성모님께서 화려한 옷을 입고 계신다.

 

 

성모님의 발현에는 메시지가 있다고 하는데 이 성지의 발현 메시지는 성모 발현 모습 그 자체라고 합니다. 루르드 성지처럼 시골 처녀들에게 발현하셨고, 기적의 샘이 솟아 그 물로 치유받는 이들이 생겨났다고 해서 “이탈리아의 작은 루르드”라고 불리고 있는 지극히 거룩하신 고통의 성모 마리아 성지. 모든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하시는 성모님,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생명을 다시 얻는 은총임을 보여주시는 성모님, 그래서 이곳을 찾는 많은 고통 받는 이들이 위로와 생명을 얻어 나가는 거룩한 땅. 비록 코로나로 이 아름답고 거룩한 곳을 찾아 기도할 순 없지만 마음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빕니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다시 이 성지가 고통받는 이들이 찾는 위로의 샘이 되기를, 어서 그날이 오기를 말입니다. 아들 예수님을 결코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성모님의 따뜻한 손길이 지금 이 순간 고통받는 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새로운 그날, 저는 로마에서 여러분을 뵙겠습니다.

 

 

 

서성현 - 이탈리아에서 성가정을 이루며 성지 순례 전문 가이드(이탈리아 공인)로 활동하고 있다.

 

[생활성서, 2021년 5월호, 서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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