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가톨릭 교리

사회교리 해설: 재화와 소유라는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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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7-02 ㅣ No.2820

[이주형 신부의 사회교리 해설] “재화와 소유라는 우상”

 

 

안젤라 : 단장님, 집안의 짐 정리를 했는데 너무나 많은 물건에 참 놀랐어요. 필요 없이 안 쓰는 물건들도 많았고요. 그런데도 계속 쇼핑 채널을 보면 늘 새로운 물건을 사게 돼요. 제가 너무 물건들에 욕심을 내는 것 같아요.

 

마리아 : 맞아요. 안젤라. 물자나 재화가 참 풍부한 시절이에요. 그리고 자칫 우리가 소유에 애착을 갖게 되고 신앙생활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어요.

 

 

알아보기 – 우상숭배

 

구약의 역사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집트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참된 신앙을 고백하기까지는 수많은 세월이 걸렸고 이는 우상숭배에서 벗어나는 과정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우상은 인간을 거짓과 오류, 헛된 위안과 허무로 이끄는 유혹과 허상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느님만을 섬기고, 다른 신은 없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상은 사이비 종교에만 있지 않습니다. 아주 가까이에, 재물에 대한 집착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오늘날에는 부가 가장 큰 우상입니다. 군중이, 인간 대중 전체가 부를 본능적으로 섬깁니다. 사람들은 재산으로 행복을 재고 또 재산으로 명예를 저울질합니다. … 이 모든 것은 재물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723항>

 

 

심화하기 – 달콤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유혹들

 

광야에 머무시는 예수님께 사탄은 말합니다.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마태 4,9) 이 유혹은 오늘날 세련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온갖 광고가 넘쳐납니다. 스마트폰 몇 번만 누르면 맛있는 음식이 배달되어옵니다. 레저와 여가, 쇼핑과 향락, 스포츠와 대중 매체로 삶은 너무도 풍요롭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앙의 가르침은 늘 뒷전인 현실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을 안 가는 것은 용납이 안 됩니다. 하지만 성당, 주일학교를 안 가는 것은 용인된 지 오래입니다. 해외여행, 개인 취미생활은 단골 이야깃거리입니다. 그러나 냉담 교우는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신앙 교육을 강제로 해야 한다거나, 개인의 여가와 휴식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지금의 세태가 하느님과 신앙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고 있음입니다. 우리는 기도합니까?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합니까? 세상이 주는 편리함, 안락함을 잠시 내려놓고 하느님을 선택할 수 있습니까?

 

 

레지오의 가르침 – 그리스도를 닮아감

 

“레지오 단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께서 바로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마지막 탄식과 마지막 한 방울의 성혈마저 바치셨다는 사실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봉사와 활동 안에 이러한 주님의 모습이 반영되도록 힘써야 한다.”(4장 레지오의 봉사 중)

 

레지오 교본 4장은 ‘세상을 본받지 말고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를 제목으로 레지오 영성의 고귀함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닮아 세상의 밀알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간추린 사회교리는 신앙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지침을 줍니다. 이웃사랑의 권고는 사회교리의 “어려운 이웃에 대한 우선적 선택”, “재화의 선용과 나눔” 등의 원리를 통해 제시되고, 재화에 대한 무분별한 애착이 자칫 영혼에 해를 끼칠 것이라 경고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181항) 저는 여기서 재화에 대한 집착의 뿌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로 하느님보다 돈을 사랑함, 겉으로만 하느님을 섬기는 위선,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뿌리인 교만과 허영입니다. “괜찮아, 별수 없잖아?” 라며 현실과 타협하게 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우리를 갈라놓는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실천하기 – 세상 속에서 살아가되 주님만을 따르는 레지오 단원의 모습으로

 

“하느님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자기가 하려는 것을 하느님 앞에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그분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하느님과 같은 위치에 들어 올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봉사를 통해 서서히 하느님의 참된 모상으로 올바르게 형성하는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나자렛 예수 2권, 중> ※ 저자 주: 인용 중 일부 의역함

 

인간의 삶이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듯이 신앙인의 삶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순례길 위에서 하느님을 알아가고 자신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여정 중에 있습니다. 세상은 하느님께서 너무나 사랑하시는 대상이지만(요한 3,16) 언제나 하느님을 알아뵙지 못하고 배척하기도 합니다.(요한 11,11-12) 부르심을 받은 우리의 삶은 세상의 유혹을 식별해야 하고, 때로는 비 복음적 현실과 우상에 저항해야 합니다. 물질문명 시대라 불러도 좋을 오늘날 우리는 지나친 욕심과 소유라는 우상숭배에서 벗어나 하느님만을 따르고 이웃을 도우며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분별없이 자기가 가진 재화를 우상시하는 사람은(마태 6,24; 19,21-26; 루카 16,13 참조) 그 재화에 예속되고 그 노예가 되어버린다. 이 재화가 창조주 하느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동선을 위하여 이 재화를 사용하게 될 때야 비로소, 물질 재화는 개인과 민족을 성장시키는 유용한 도구로서 올바로 기능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181항>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7월호, 이주형 세례자요한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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