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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전교 주일: 가톨릭평화방송 · 평화신문 100만 선교사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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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0-27 ㅣ No.739

[전교 주일]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100만 선교사 양성


세상 향한 교회의 창… 세상 복음화 이끌 선교사가 되어주세요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TV, 라디오, 신문, 유튜브, SNS 등 다양한 매체와 각종 문화 사업을 통해 이땅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 하고 있다. 그리고 CPBC의 복음 선포 사명은 후원자들의 관심과 지원이 없다면 지속할 수 없다. 사진은 가운데 CPBC 사옥을 중심으로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평화나눔음악회에서 공연하는 CPBC소년소녀합창단, 윤전기를 통해 인쇄되는 가톨릭평화신문, 본사 청년 직원들, CPBC TV ‘우리 시대의 일곱 교황’, CPBC TV 주조종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교회 언론을 통해 함께 복음을 선포할 100만 선교사를 모집합니다.

 

100만 선교사는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모든 이에게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이 땅에 그리스도의 평화를 실현하는 데 영적 기도와 물적 지원으로 협력하는 이들입니다. 100만 선교사들은 마치 마리아 막달레나가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복음을 사도들에게 전한 사도인 것처럼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모든 대중 매체 수단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는 데 가장 먼저 앞장서 줄 언론 사도직의 핵심 첨병입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100만 선교사를 구하는 것은 한국 교회 600만 신자의 모든 가정이 교회 언론 사도직에 협력해주리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을 통해 교회 언론 사도직의 선교사가 되길 원하시는 분은 CPBC 앱을 설치하고 ‘선교후원회’로 들어가 가입하시면 됩니다. 가입 문의 : 1588-2597

 

전교 주일을 맞아 교회 언론과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100만 선교사가 왜 필요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소개합니다.

 

 

교회의 선교 사명

 

교회의 사명은 복음 선포이고,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성사 생활과 기도 생활로 응답합니다. 복음 선포 곧 ‘선교’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위대하고 거룩한 임무입니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라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임무를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교회는 “나도 전해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 전합니다”(1코린 15,3)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세상 모든 곳의 모든 이에게 언제나 하느님 말씀의 선포자와 봉사자들을 파견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선교는 어느 세대, 세계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교회 생활의 본질적인 요소”라며 선교에 힘써 달라고 당부한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처럼 교회는 복음을 선포하는 데 있어 시대마다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도구를 사용해 왔습니다. 초대 교회 때에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이 직접 말로 복음을 선포하고, 예수님의 행적을 글로써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박해 시대 때에는 장엄한 순교와 성덕이 빛나는 모범적인 삶의 실천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였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얻은 고대 교회는 파트리치오, 골룸바노, 아우구스티노, 보니파시오 등 위대한 선교사들이 이방인들을 선교하였습니다. 중세 때에는 성화상을 이용해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근대 교회에서는 여러 언어로 성경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신앙 서적을 번역해 선교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현대 사회의 홍보와 소통 수단인 신문, 방송, 소셜미디어를 선교의 도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받은 이도 할례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콜로 3,11)라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모든 때에 세상 모든 이를 복음으로 초대하고 있다. 한국 교회, 특히 서울대교구는 교회의 가장 위대한 선교 사명을 인식해 1988년 5월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을 설립해 신문ㆍ라디오ㆍTVㆍ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국 방방곡곡에 온종일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해지지 않는 곳 없이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선교사의 세 가지 형태

 

선교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세례받게 하는 것과 세례를 받았으나 교회를 등진 이들을 새 복음화해 주님께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이중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선교의 대상은 세상 모든 이입니다.

 

선교사는 세 형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교회로부터 공적으로 파견된 선교사입니다. 이들은 파견된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 성사를 베풀며 교회를 세워 성사 생활을 지속하게 합니다.

 

둘째, 삶의 자리에서 성덕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퍼뜨려 이웃을 교회로 이끄는 선교사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콜로 3,12)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들을 ‘옆집의 성인들’이라고 표현합니다. “무한한 사랑으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가정을 부양하고자 열심히 일하는 수많은 남녀, 병자들, 한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노 수도자가 있습니다. 날마다 한결같이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에게서, 저는 투쟁 교회의 성덕을 봅니다. 이는 우리 옆집 이웃 안에서 발견되는 성덕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우리 한가운데에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반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성덕의 중산층’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7항) 교회는 전통적으로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구원하는 일에 있어 ‘앎’보다는 ‘덕’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권고합니다. 그러면서도 먼저 어느 정도의 교리적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하는 데에 크게 부족한 부분을 느낄 수 있다며 신앙에 관한 지식을 쌓을 것을 권장합니다. 교회 언론의 큰 사명 중 하나도 바로 신자들에게 신앙의 지식을 쌓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기도와 물적 수단으로 교회에 협력하는 선교사들입니다. 교회가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 데 있어 기도뿐 아니라 물질적인 수단들도 적지 않게 요구됩니다. 그래서 역대 교황들과 사도들의 후계자들은 하나같이 선교를 위해 모든 그리스도인이 힘닿는 데까지 물질적 도움을 베풀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선교는 여전히 절박한 과제”라면서 “선교를 위해 우리의 시간과 노력, 재화를 쏟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교황은 그러면서 “선교를 위한 개인적 기부는 먼저 주님을 향하고, 그다음으로 다른 이들을 향한 자기 봉헌의 표시입니다. 이렇게 물질적 봉헌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인류의 복음화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당부하셨습니다.(전교 주일 담화 참조)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과 100만 선교사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서울대교구가 운영하는 한국 교회의 선교 도구입니다. ‘선교’와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설립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일반 언론과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그래서 설립자이신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을 ‘무형의 성전’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오늘날 미디어 환경은 일상처럼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기존의 신문 라디오 TV뿐 아니라 현시대의 자원은 ‘온라인’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교회와 세상을 잇는 ‘고리’로서 세상을 향한 교회의 ‘창’(窓)이 되고자 거듭 쇄신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세상의 도전에 맞서는 교회의 소리로서의 사명을 다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명을 다 하기 위해선 물질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전문 언론인을 양성하고,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방송 장비와 시스템을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100만 선교사들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의 강렬한 증언을 전하는 ‘새로운 복음서’의 저자들입니다. 때로는 복음서 속의 착한 사마라이 사람처럼, 또 주님을 위해 값비싼 향유를 쏟아붓는 여인처럼, 십자가 아래에서 주님의 수난을 지켜보고,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 된 여인들처럼 새롭게 엮는 복음서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마르 1,1)으로 시작하는 기쁜 소식만이 올바른 렌즈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한국 교회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100만 선교사로 활동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0월 24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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