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별별 이야기: 왜 사제가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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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2-27 ㅣ No.1058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03 · 끝) 왜 사제가 되셨나요

 

 

신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특히 상담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왜 사제가 되려고 하셨나요?” 사제품을 받을 때나 지금이나 이 질문은 늘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 25주년 은경축을 맞은 사제에게 이젠 그만 물어볼 때도 되었는데도 말이다. 신자분들이야 당연히 현대사회에서 사제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알기에 어떻게 성소를 받았는지, 어떻게 그 부르심에 응답한 것인지에 대해 궁금하실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답변은 한결같기에 간혹 듣는 분들에게는 실망을 안겨드린다. “사제가 된 이유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제 삶인 것 같이 느껴질 뿐,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처음엔 정말 사제가 된 이유를 신자분들이 궁금해하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이 길을 걷게 되었다는 실망스런 답변을 드리는 것이 못내 송구했다. 나에겐 모세가 떨기나무 아래에서 부르심을 받았던 강렬한 체험이나 바오로가 다마스쿠스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회심한 것과 같은 극적인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신학교 면접에서 선배들이 가르쳐 준 모범답안처럼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 “세상에 예수님을 선포하기 위해 희생하는 삶”과 같은 교과서 같은 말로 나의 사제 성소의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냥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의 성장배경에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이 체험할 수 없었던 성소와 관련된 특별함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 집에서 본당의 미사를 지내게 된 3년의 경험은 결국 내가 성소를 얻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경기도 광명성당에서 철산성당으로 분가되는 과정에서 당시 총회장이었던 아버지는 당신의 집을 임시 성전으로 봉헌하셨다.

 

학교를 다녀오면 나는 당연히 신부님과 본당 일을 도와야 했다. 미사 때는 복사의 임무가 당연직이었다. 제대를 차리고 제구를 다루면서 아직 축성되지 않은 제병을 만져보고 신부님의 거양성체를 흉내 내 본 것도 바로 그때였다. 특히 주일 미사 때에는 각 방과 마루에는 물론 마당과 옥상에까지 꽉 들어찬 신자들을 챙기느냐 정신이 없었다.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이 서로 끼어 앉아 미사를 드리는 신자들은 늘 여러 불편함으로 고통스러워했다. 덥다, 춥다, 시끄럽다, 신부님 강론이 안 들린다, 화장실 가고 싶다 등 수많은 요구사항을 해결해 주는 임무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이처럼 하느님은 아마 나의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의 체험을 통해 성소의 길을 마련해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성소에 대한 질문은 점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사제가 된 이유나 배경을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제로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사제의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전과는 달리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점점 명확하게 내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많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든 인연이 되는 사람들과 함께 웃을 수 있고 함께 슬퍼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사람인 것 같다. 삶을 함께 나누며 함께 머물러 줄 수 있는 그 누군가가 바로 사제라면,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의미 있는 삶처럼 느껴진다.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삶의 이야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분들이 계시기에 사제로 살아올 수 있었다고 감히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또한, 지금까지 특별하지도 않은 ‘별별이야기’를 관심과 사랑으로 읽어주신 많은 신자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상담하는 사제로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아닌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어 줄 수 있는 사제로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겸손되이 기도를 청하고 싶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2월 25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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