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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43: 알로이시어스 피어리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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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5-11 ㅣ No.395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43) 알로이시어스 피어리스 (상)
 
가난과 종교심의 상호작용 통한 아시아 토착화 신학 제시



가난과 종교심의 교차

아시아 신학을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가톨릭 신학자 중 하나는 바로 스리랑카의 예수회 사제인 알로이시어스 피어리스(Aloysius Pieris, 1934~ )다. 신학자이며 동시에 불교학자인 피어리스는 가난과 종교심이라는 두 가지를 아시아 신학의 핵심 요소로 여겨, 이에 대한 신학적 성찰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강요된 가난’이라는 냉엄한 실재를 체험하며 살아가는 아시아 대륙에서, 전통적 종교문화 유산을 통해 내려오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복음적 요소를 재발견해 그리스도교 신앙적 관점에서 해석함으로써, ‘아시아의 해방신학’(Asian theology of liberation)이라는 통합된 신학적 전망을 제시하고자 시도했다. 국내에서는 피어리스가 발표한 논문들을 한데 모아 번역한 「아시아의 해방신학」(성염 옮김, 분도출판사, 1988)이 출간돼 소개된 바 있다. 이 책이 피어리스의 본격적인 첫 저서라 할 수 있으며, 여기에서 피어리스의 신학적 기조 사상이 잘 드러난다.
 
이처럼 아시아 상황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하는 피어리스의 신학은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전개됐으며, 이후 아시아 신학의 본격적 흐름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므로 이러한 피어리스의 계속된 신학적 작업은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의 1999년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라는 중요한 문헌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부분적으로 그 배경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아시아 교회」는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열린 1998년 아시아 주교대의원회의 후속 문헌으로 발표된 것이다. 이는 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한국 교회를 위해서도 의미 있는 지침과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문헌이다. 아시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선포하는 길은 무엇이며, 또 성령의 인도를 따라 어떻게 복음 선포를 위해 투신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므로 「아시아 교회」는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고 봉사하며 복음의 증인이 돼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안내서이자 길잡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과 구원

알로이시어스 피어리스는 아시아 상황을 규정짓는 첫 특징적 요소로서 ‘가난’을 제시한다. 「아시아 교회」(1999) 역시 통해 아시아의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현실들에 대한 분석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에서 “아시아는 풍부한 자원과 위대한 문명들의 대륙이지만 몇몇 국가는 지구 상의 가장 가난한 나라이며, 인구의 절반 이상이 결핍과 가난 그리고 착취로 고통받고 있는 곳”(34항)임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이렇듯 절박한 상황에서 가난과 소외 속에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돕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교회의 당연한 임무에 속한다. 바로 이러한 기본 사명에 대한 인식에서 피어리스의 신학적 성찰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다.

알로이시어스 피어리스의 주저 「아시아의 해방신학」.


피어리스는 아시아의 종교문화 안에서 명맥을 이어오는 ‘자발적 가난’의 전통에 대한 복음적 해석과 그 보편적 실천을 통해 ‘강요된 가난’이라는 비복음적 실재를 넘어서 하느님 나라의 성장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이것이 참다운 해방과 구원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루카 6,20; 마태 5,3 참조)고 말씀하시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발적 가난을 통해 이뤄지는 해방과 구원 개념은 지극히 성경적이며, 이는 개인의 내면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을 모두 포괄하는 전인적 차원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이러한 가난과 구원의 긍정적이고 역동적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초대 교회 사막교부들의 삶과 그 뒤를 이은 수도생활의 전통이라고 피어리스는 말한다.


종교와 구원

한편, 종교는 가난과 더불어 피어리스의 아시아 해방신학의 중심축을 이루는 또 하나의 핵심적 요소이다. 피어리스는 성경에서 출발해 가난의 영성을 정립했고, 성경에서 발견되는 복음적 가난이 해방과 구원을 매개한다는 신학적 기조 사상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아시아의 종교문화 전통 안에서 발견되는 자발적 가난의 실천을 성경의 복음적 가난과 연결하게 해 재해석함으로써, 이제 아시아의 종교전통들 안에 내포된 구원론적 의미를 신학적으로 성찰해 제시하고자 한다. 이 지점에서 아시아의 가난과 종교심이 이루는 구원론적 교차가 이뤄지며 아시아적 특성을 구성하기에, 바로 여기에서 아시아 신학이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피어리스의 신학적 주장이다.

피어리스는 아시아에서 종교는 삶의 한 기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삶 자체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즉, 종교는 인간 실존의 포괄적이고도 모든 차원에 삼투된 ‘에토스’(ethos)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시아의 종교들이 단지 비그리스도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배척돼 그 안에 담긴 포괄적 구원 사상들이 모두 매몰돼서는 안 된다고 피어리스는 주장한다. 종교는 “구원을 찾는 순수한 노력의 사회-문화적 체현(體現)”이라고 정의한다. 아시아의 가난이 단순히 경제적 문제로 환원돼서는 안 되는 것처럼, 아시아의 종교심 역시 단지 문화적 차원으로 축소돼서는 안 된다. 이 둘은 함께 교차하며 광대한 아시아 대륙에서 아시아 백성들의 실존적 삶의 현실을 구성하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종교심

피어리스는 가난의 차원을 도외시하고 순전히 문화적 차원에서만 이뤄지는 토착화 시도를 ‘문화순응’이라 부르며 비판한다. 반면에 아시아의 종교심을 염두에 두지 않고 경제적-사회적 차원에서만 이루어지는 빈곤 극복의 시도 역시 올바른 토착화를 이룰 수 없다고 비판한다. 피어리스는 문화순응과 해방을 대당시키는 토론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고 말한다. 즉, 아시아의 가난을 간단히 ‘해방’으로, 아시아의 종교심을 단순히 ‘문화순응’으로 환원시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피어리스는 아시아의 가난과 종교심을 함께 통합적으로 볼 때에만, 아시아의 참다운 토착화 신학이 요구하는 문화적 맥락과 구원론적 의미를 모두 함께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피어리스는 아시아의 전통종교들과 만나 영성적 차원에서 대화하고 ‘자발적 가난’을 실천함으로써, 지금 ‘강요된 가난’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게 구원론적 의미를 일깨우고 연대해 봉사하는 것이야말로 아시아 교회의 참된 사명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피어리스는 아시아의 가난과 종교심의 상호작용이라는 아시아적 실재에 대한 기본 인식에서 출발해, 문화순응(inculturation)과 맥락화(contextualization)를 통합시키는 관점에서 자신의 ‘아시아 해방신학’을 형성하고자 하며, 바로 이것이 아시아의 참된 토착화 신학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피어리스는 아시아 신학의 핵심어를 ‘가난한 이들의 종교심’(the religiousness of the poor)이라고 표현하면서, 바로 이것이 성경의 중심 사상이라고 설명한다.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의 인도를 따라 이집트로부터 해방과 구원의 길을 걸어갔던 것처럼, 고난받는 아시아 백성들이 이제 하느님과 함께 참다운 구원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가난한 이들의 종교심’이란 핵심어이다. 광야의 위협과 고통,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절대 굴하지 않으며 하느님을 믿고 ‘인간성의 온전한 실현’(full humanity)을 향해 나아가는 아시아 백성들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다운 해방과 구원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요르단 강의 세례에서 시작해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교회가 걸어가는 고난의 길은 마침내 온전한 자기희생을 통해 부활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피어리스는 믿고 희망한다.

[평화신문, 2014년 5월 4일,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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