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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가톨릭 영성을 따라서2: 하루 첫 문 여는 수도자 기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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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2-10 ㅣ No.364

가톨릭 영성을 따라서 (2) 하루 첫 문 여는 수도자 기도소리

세상 깨우듯 성당 안에 울려 퍼져


성 오틸리엔수도원 전경. 베네딕도수도회 오딜리아 연합회 총원이자 모원 역할을 하고 있는 성 오틸리엔수도원. 비교적 짧은 수도원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20개의 자치 수도원을 둘만큼 유럽 교회 안에서도 위상이 높다.


오전 5시 15분 시작되는 첫 기도에 참석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졸음을 깨우는 차가운 새벽공기. 짙은 어둠속에 들리는 종소리가 피부를 스치는 찬 기운만큼 청량하다.

수도자들의 하루 첫째기도가 시작됐다. ‘해 뜨는 데서 해지는 데까지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첫 기도는 지난밤 자는 동안 지켜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새 하루를 축복해 주시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다.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열려있는 문’이라고 했던 한 수도자의 말이 떠올랐다. 하느님과의 하루 첫 문을 여는 수도자들의 기도 소리가 세상을 깨우는 듯 성당 안에 울려 퍼졌다.

이들은 미사를 포함 하루에 다섯 번, 이처럼 성당에 모여서 기도한다. 수도자들의 의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간전례(성무일도)다. 하루를 여러 순간으로 나누어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바치는 것이다. 하루 일과의 중요 순간들에 기도를 바침으로써 ‘깨어있으라’(마르 13,37)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는 의미라고 했다.

역사관 책임을 맡고 있는 마우루스 브로머 수사. 한국 기자단을 맞아 수도원 설명을 맡았다.


성 오틸리엔수도원에서는 5시15분 첫 기도를 시작으로 정오의 낮기도, 오후 6시 저녁기도를 봉헌하며 그리고 8시에는 밤기도(끝기도)를 바친다. 이러한 시간 전례는 로마교회 안에서, 그리고 수도승들의 전통 안에서 끊임없이 전수되어 왔는데 베네딕도 성인이 그 기초를 세운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베네딕도 성인은 73개 항목으로 된 규칙서를 남겼다. 유럽 수도원 생활의 규범이 된 규칙서에서 성인은 수도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공동기도를 8∼20장에 걸쳐 언급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자 하고, 또 그 모습처럼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신비체를 상징하는 수도자들이 드리는 이 기도는 ‘기도하는 교회’를 구체적으로 증거하는 표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같은 하루의 기도와 함께 수도자들은 각자 소임에 따라서 주어진 업무를 한다.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기도 하고 수도원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또 농장에서 가축을 기르기도 한다.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는 수도회 이념 즉 일하면서 기도하고 생활 안에서 균형을 이루는, 행동하는 것과 침묵 속에 기도하는 것을 잘 조화시켜 하느님께 다가가고자 하는 베네딕도회 수도자들 모습이 그들의 아침기도 음률 속에서 선연히 드러났다.

“노동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또 기도하는 사람만이 영속적인 가치가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와 노동이 함께 있는 곳에서 비로소 인간은 균형을 찾을 수 있지요.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온전한 진리입니다.”

언젠가 수도원 일상을 담은 책에서 베네딕도회 수도사가 ‘기도하고 일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이야기한 부분이 생각났다. 그 책에서는 ‘기도하고 일하라’의 현대적인 해석을 ‘믿으라, 그리고 살라!’로 풀이했었다.

수도원 역사박물관내 한국관. 한국전쟁으로 희생된 수도자들의 사진을 전시한 모습.


기자단과 대화 시간을 가졌던 마우루스 수사에게 질문을 던졌었다. 기도와 노동의 조화로운 양립에 어려움이 없느냐고. 매일 바로바로 처리해야할 잡다한 일들에 둘러싸여 있는 세속 사람들의 선입견으로 볼 때 기도란 일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는, 즉 순위에서 밀려날 수 있는 2차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기도하고 일하라 했던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은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을까.

마우루스 수사는 “일을 하던 중 99%의 업무가 마무리된 상태라 해도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즉각 일을 멈추고 성당으로 달려간다”고 했다. 업무에 치우치게 될 때 기도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런 만큼 더 의식적으로 기도 시간을 지키는 노력을 하게 된다고 들려줬다. ‘기도를 하고 돌아오면 일이 더 잘 풀릴 때가 많다’는 개인적인 경험도 덧붙였다.

기도 종소리에 담긴 의미는 그렇게 ‘가장 중요한 것’, 그 어떤 것도 하느님보다 우선시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리는 경계의 외침은 아닐까.

수도원 떠날 시간이 다가오면서 한 번 더 수도원 경내를 둘러보았다. 수도원내 학교에서 뛰노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생동감을 주었다. 유럽교회가 겪는 성소자 감소의 어려움처럼 이 수도원 역시 회원들의 고령화 문제가 쉽지 않은 고민이라 했지만, 수도자들과 밝은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고 말을 건네는 학생들 광경에서 세상과 소통하고 또 세상에 열린 수도원 이미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수도원 구내에 설치된 기차역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우구스부르크로 향하는 완행기차가 정차하는 역이었다는데, 현재는 간이역 정도의 역할을 맡고 있지만 과거에 선교지로 떠나는 선교사들과 선교지에 싣고갈 물품을 전하는 중요한 장소였다. 특히 한국전쟁 후 독일에서 받은 구호품이 이 역을 통해 함부르크 항으로 운송됐다.

성 오틸리엔수도원과 한국교회의 인연이 새삼 머릿속을 스쳤다. 이곳의 선교사 도움을 받았던 한국교회가 이제는 자못 큰 규모로 성장해서 ‘주는 교회’로 탈바꿈된 현실이 시간 전례 때 수도자들이 시편을 주고 받는 교창(antiphonalis)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도원을 떠나면서 버스 차창 밖으로 다시 한 번 수도원을 뒤돌아보았다. 점점 작아지는 수도원 모습이 마치 친척집을 떠날 때와 같은 정겨움과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수도원의 아침미사 장면. 오전 5시 15분 첫 기도 후 6시 15분에 봉헌된다.



수도원 농장에서 채소밭을 일구는 수도자.

[가톨릭신문, 2011년 12월 11일, 독일 성 오틸리엔수도원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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