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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45: 알로이시어스 피어리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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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5-17 ㅣ No.397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45) 알로이시어스 피어리스 (하)
 
불교 전통과 만남 통한 상호 보완과 실천 강조



피어리스는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이 인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전망을 드러낸다. 사진은 스리랑카의 콜롬보 대주교관저에서 성탄절 음식을 나누고 있는 불교 스님들. [CNS 자료사진]


그리스도와 불교의 만남

스리랑카의 예수회 사제 알로이시어스 피어리스(Aloysius Pieris, 1934~ )는 자신의 아시아 신학을 전개하면서,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만남’을 아시아 교회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들 중 하나로 제시한다. 그는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1889~1975)의 말을 인용해,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이 인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전망을 드러낸다. 그것은 이 만남을 통해 ‘반대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라는 결과를 자아내어 매우 풍요로운 결실을 내고 고귀한 종합을 이루게 될 것이란 희망 때문이다.


종교간 대화를 통한 긍정적 결실

그렇다면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을 통해 얻게 되는 효과는 과연 무엇인가? 종교 간 만남과 대화를 통해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서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도전하는 것은, 사물을 보고 해석하는 또 다른 정당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움이라고 피어리스는 말한다. 바로 그러한 새로운 전망에서 자신의 영적 전통을 다시 성찰하고 재발견을 이루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반대의 일치’를 통한 긍정적 효과와 결실이라고 피어리스는 말한다.

예를 들어, 불교와의 진지하고 심오한 만남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불교 전통의 가르침과 업적이 어떻게 인류의 풍요로운 정신적 유산의 한 부분을 구성하게 됐는지를 알게 될 것이고, 또 불교의 지혜 전통이 삶의 의미와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긍정적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제2차 바티칸 공의회, 「비그리스도교 선언」, 2항) 중에 그리스도교 전통과의 공통점 혹은 연결성을 지니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도 있게 된다. 따라서 “그들 안에 감추어진 말씀의 씨앗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찾아내야 하고, […] 진지하고 끈기 있는 대화로 너그러우신 하느님께서 이민족들에게 얼마나 값진 보화를 나누어주셨는지를 배워야”(제2차 바티칸공의회, 「선교 교령」, 11항) 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보화를 복음의 빛으로 비추고 해방해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지배 아래로 돌려 드리도록 힘써야 함”(「선교 교령」, 11항)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즉, 불교와의 만남을 통한 긍정적 수용의 자세와 더불어 비판적 성찰의 자세 역시 반드시 견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 성찰 과정 중에 하느님께서 우리 자신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해 얼마나 큰 사랑과 자비와 은총을 베푸셨는가를 다시금 새로이 깨닫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필자는 로마에서 공부할 때 계시론 과목을 수강하면서 담당 교수의 요구에 따라 이를 불교적 개념과 비교하여 고찰해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신 자신의 고귀하고 무한한 신비를 우리 인간에게 모두 알려주시고 당신 자신을 인간 구원을 위해 송두리째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자기전달(self-communication of God), 즉 하느님의 계시 행업이 다른 종교에서는 정말 찾아볼 수 없는 얼마나 아름다운 신비인가를 이 비교 고찰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됐다. 자연종교인 불교의 가르침에는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한 해탈 개념이 있지만, 하느님 계시의 수용과 응답을 통한 구원이란 차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집을 나가 봐야 비로소 부모님 은혜를 뒤늦게 새로이 깨닫게 되는 것처럼, 그동안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고귀한 무상의 은총을 너무도 당연시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고 반성하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하느님의 깊은 사랑에 대한 체험과 재발견은 곧 그분에 대한 역동적인 선포와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도 4,20).

바로 이런 맥락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는 1990년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을 통해 대화와 선포의 통합을 강조한다. “교회는 구원 경륜에 비추어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일과 종교 간 대화에 참여하는 일 사이에 어떠한 대립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둘을 교회의 만민 선교 안에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 두 요소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 구별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혼동하거나 이기적으로 이용하거나 서로 맞바꿀 수 있는 동등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55항).


신학적 쟁점

하지만 피어리스는 선포보다는 대화와 실천을 더 중요시하는 입장을 취한다. 피어리스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전통의 아가페(사랑)적 언어와 불교 전통의 그노시스(지혜)적 언어가 함께 만나서 영적인 조화를 이루며 아시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투신해야 한다는 점이다. 피어리스는 아가페와 그노시스가 영적 초월과 구원 체험을 위한 인간 언어의 필수적인 두 가지 범주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난과 종교심의 교차’를 강조하며 전개되었던 첫 저서 「아시아의 해방신학」(An Asian Theology of Liberation) 이후, 피어리스는 다른 두 권의 저서 출간을 통해 이러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과 대화에 주된 초점을 맞추며 자신의 아시아 신학을 계속 전개해나간다. 1988년의 「사랑이 지혜를 만나다-그리스도인의 불교 체험」(Love Meets Wisdom: A Christian Experience of Buddhism), 그리고 1996년의 「불과 물-아시아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기본 쟁점들」(Fire and Water: Basic Issues in Asian Buddhism and Christianity)이 바로 그 저서들이다.

물론,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역시 어떤 경우에는 대화에 먼저 주된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많은 선교사와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흔히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대화의 길에서 그리스도를 참되게 증언하고 사람들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발견한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노력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곳에서도 그들이 신앙과 사랑으로 참아나가기를 격려합니다. 대화는 하느님 나라에 이르는 길이며, 아버지께서만 아시는 그 때와 시기에(사도 1,7 참조) 반드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57항).

하지만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은 “구원은 그리스도에게서 오고 대화는 복음화를 대신하지 못한다는 사실”(55항) 또한 명백히 한다. 요한 바오로 2세의 1999년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유일성과 보편성을 분명히 밝힌다. “시간의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께서는 유일한 보편적 중개자이십니다. 비록 명시적으로 그분을 구세주로 믿는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구원은 성령의 통교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으로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시고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믿습니다”(14항).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 종교들의 요람인 아시아 대륙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참다운 구세주로 선포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19-20항 참조).

그러나 불교 전통과의 만남을 통한 상호 보완과 실천을 강조하는 피어리스는 이러한 현대 교회 가르침의 경계선을 다소 넘나드는 것 같은 급진적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그는 계시적 말씀(revelatory word)에 대한 해석에 있어 분명한 구원중심주의(soteriocentrism) 노선을 견지하며 어느 정도의 다원적 입장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가 창안한, 구원을 위한 ‘말씀-매개-길’(word-medium-path) 모델을 통해 그 신학적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피어리스의 아시아 신학은 현대의 첨예한 종교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논쟁 속에서 아직도 열띤 토론 대상 중 하나로 남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알로이시어스 피어리스의 아시아 신학이 앞으로 계속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평화신문, 2014년 5월 18일,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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