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수도 ㅣ 봉헌생활

양성적 독서의 기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4-27 ㅣ No.410

양성적 독서의 기도1)


거룩한 독서 또는 성독은 영성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수행의 하나로 언제나 교회의 인정을 받아왔다. 특히 복음에 관한 명상적 독서나 반성적 독서, 그러한 독서를 통해 나는 그리스도의 인품을, 그리고 그분이 포용하고 계신 가치들과 태도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성독은 나의 가장 깊은 자아와 영혼을 기르고, 비추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규칙적인 성독 시간이 없다면, 아마도 나는, 지나가는 사건들의 희생물이 될 위기에 휩쓸리며 세상의 지혜에 떠밀려 다닐 것이다. 세상의 지혜란 복음의 지혜나 영적 스승들의 지혜와는 반대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기도 시간의 한 부분으로 성서본문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면, 성독이 성서 연구를 위해 저서나 소설이나 신문을 읽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음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의 교과서나 소설을 읽듯이 한다면, 하느님의 계시와 손길을 방해할 위험이 있다. 어떤 곳에서는, 거룩한 독서 또는 명상적 독서를 양성적 독서라고 부르며, 그 외 다른 독서는 비양성적 독서라 부르고 있다. 독서에 대한 이 두 가지 방법사이의 차이점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잠시 시간을 내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비양성적 독서에서는 우리의 이성적 자아, 어떤 경우엔 우리의 ‘지능컴퓨터’라 불리는 것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독서하면서 정보나 자료들을 모으고, 그것을 분석하고, 비교하고, 정돈된 구획들 안으로 분류해 넣는다. 신문을 훑어보거나, 어떤 회의를 위해 사실들을 수집하거나, 시험을 치르기 위해 정보를 주입 받거나, 또는 가르칠 내용을 익히려 할때 우리는 보통으로 이 독서 방법을 사용한다. 비양성적 방법은 근본적으로 실리주의적 성격을 띠며, 우리의 목적은 일상생활에 유용할 만한 정보를 모으고 관리하려는 데 있다. 비양성적 방법에서는 내게 책임이 있다. 어떤 본문이나 책을 다 익힐 때까지 내가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독서나 사고는 사물을 알고 이해하고 싶어 하는 인식(認識欲)을 만족시키고 양육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 방법을 이용해서 읽거나 공부하도록 훈련되어 왔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태도는 독서와 인생에 대한 많은 유익한 목적들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획득할 수 있게 해주며, 혼돈된 우리 생활에 어떤 질서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비양성적 독서 방법과 대조적으로 양성적 또는 명상적 방법은 우리에게 다른 정신 자세, 전혀 새로운 자세를 요구한다. 양성적 방법에서 나는 삶의 느릿한 오솔길로 들어선다. 한 번에 몇 장 또는 몇 쪽을 읽어 내라는 아무런 요구도 없다. 반대로, 어떤 본문의 몇 줄을 읽는데 30분을 소비해도 괜찮다. 양성적 방법을 묘사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문구는 이런 것들이다: 고요히 머무름, 인내롭게 머무름, 존경스런 마음으로 들음, 겸허한 개방과 수용성이다. 나는 어떤 본문의 어휘나 구절을 읽고 고요히 머무른다. 그리고는 성령께 대한 겸허한 개방과 수용성으로 그 본문에 숨겨진 보화들이 드러나기를 기다린다. 예컨데, 시편 23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내게 “이먼(Eamon), 나는 너의 목자이다 … 너는 아쉬울 것 없으리라 …” 등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성숙한 양성적 독서자는, 주어진 본문으로부터 영성적 양식을 얻고 또 방향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똑똑함이 아니라 성령이심을 잘 알 것이다. 우리 자신이 그 관리자는 아니다. 그 대신, 우리는 스승께서 어느 특정 본문의 보화들을 열어 보여 주시기를, 겸허하고 개방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겸손한 제자들이다. 그러므로 양성적 독서에 몰두할 때, 우리는 스승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민감하고 영적인 귀를 갖도록 성령께 항상 기도해야 한다. 양성적 독서에서 우리의 주요 목적은 어떤 성서구절에 대한 분석이나 비평 또는 정보수집이 아니다. 영적 자양분을 받고 비추임을 받기 위해, 그 거룩한 말씀이 우리의 깊고 깊은 자아를 꿰뚫도록 하는 것, 영적 변모를 촉진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우리가 읽는 그 본문과 매우 다양한 현재 우리의 삶 사이를 관련짓는 것이다.

우리는 비양성적 독서 방법과 양성적 독서 방법 사이에서 제법 다른 차이를 쉽게 볼 수 있다. 만일 우리의 독서 대부분이 비양성적 성격의 것이라면, 우리의 상태는 쉽게 변화되지 않을 것이며 양성적 독서의 느릿한 오솔길로 옮겨 가지 못할 것이 뻔하다. 반캄(van Kaam) 신부도 무토(Muto) 박사도 영적독서가 습득해야 할 기술임을 강조하고 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는데, 읽어 가면서 성령의 자극에 민감하고, 그러한 자극에 응답하도록 훈련하며, 우리의 비양성적 면의 강박과 충동을 물리치면서 가능한 한 많은 양을 읽도록 할 것이다.


양성적 독서의 예

성독의 주요 자료는 성서, 고전적 영적 저술들 그리고 현대의 훌륭한 영적 저서들이다. 이런 책들 그 어느 것이든 주님과 우리의 만남의 장이 될 수 있어서, 주님은 우리의 가장 깊은 자아에게 말씀하시고, 비추시고, 자양분을 주실 수 있다. 양성적 독서의 특성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다. 그 예를 차근차근 들어 보기로 하자.

첫째 단계: 느릿한 오솔길로 접어들어 하느님 현존 안으로 들어가라

우리의 첫 단계는 일상의 빠른 궤도에서 벗어나 명상적 묵상의 느슨한 길로 옮겨 들어가는 것이다. 흔히, 두어 번의 깊은 숨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깊은 숨을 쉬면서 우리는 천천히 가라앉게 되고, 모든 생명과 거룩함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현존을 서서히 의식하게 된다. 당신 내부에서 서성대는 모든 것들 - 생각, 느낌, 움직임 등을 의식하고 대면하라. 만일 당신이 분노, 긴장, 외로움, 쓰라림 같은 어떤 거친 감정들을 느끼고 있다면, 예수님도 그와 비슷한 감정들을 느끼셨고,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주실 수 있는 분에게 큰 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셨음”(히브 5,7)을 기억하고 예수님 앞에 그러한 감정들을 가져가라.

둘째 단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라

예수께서는 당신 아버지께로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주실 성령, 그 협조자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다.”(요한 14,26) 또한 마지막 만찬 때, 예수께서는 당신 없이는 우리가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요한 15,5 참조). 그러므로 거룩한 본문을 묵상하기 전에, 잠시 성령께, 우리의 독서를 인도하시고 감도하시도록, 그리고 본문 안에 숨어있는 보화들을 열어 보여주시고, 그 거룩한 말씀이 우리에게 내어놓은 어떤 도전에도 우리 자신을 열어놓도록 청할 필요가 있다. 봅 와일드(Bob Wild) 신부는 성서 독서의 주된 문제는 훌륭한 방법의 부족이 아니라고 말한다. 문제는 “하느님 말씀이 우리 마음을 차지하고, 우리 삶을 변화시키게 할 사랑과 용기와 너그러움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다. 그 다음 셋째 단계에서 우리는 수세기 동안 내려온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성독으로서 전통적으로 세 부분 - Lectio(말씀을 읽음), Meditatio(말씀에 대한 명상과 묵상), Oratio(말씀에 대한 기도) - 으로 나눈 것을 따른다.

셋째 단계: Lectio - 선정된 본문을 천천히 기도하면서 읽는다

양성적 독서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머무르게 될 본문을 미리 결정할 것이다. 예수회의 안토니 드 멜로(Anthony de Mello, S.J.) 신부는, 우리의 명상을 위해 친숙한 본문을 선정하기를 권한다. 그는 우리가 친숙하지 않은 본문을 선정하면 호기심으로 계속 읽어 보려는 유혹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있어 이 양성적 독서의 목적은 호기심을 만족시키는데 있지 않고,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도록 도와주는데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선정된 본문이 잘 알려진 엠마우스 이야기(루가 24,12-25)라고 해 보자. 먼저, 본문을 천천히 읽기 시작한다. 구절마다 조용히 머물면서 비양성적으로 읽으려는 유혹을 - 이를테면, 본문을 빨리 읽고, 분석하고, 비평하려는 - 물리치면서 천천히 읽는다. 그 본문의 보화를 우리에게 활짝 열어 보이는 것은 우리 자신의 똑똑함이 아니라 성령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는다. 엠마우스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면서 “무언가 그분을 알아 뵙지 못하도록 방해했다”라는 말씀이 우리 마음을 붙잡는다고 하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멈추어서, 하느님이 지금 우리에게 접촉하시고자 사용하고 계신 그 말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할 것이다. 이제 Lectio가 끝나고 Meditatio가 시작된다.

넷째 단계: Meditatio - 말씀에 고요히 머물기

“그렇구나, 그 두 제자들은 자기들 문제에 너무 빠져 있어서 자기들에게 끼어든 그 분을 알아 볼 수가 없었구나” 하는 것을 본다. 예수님은 인내로우시다. 그분은 당신 자신을 제자들에게 밀어 넣지 않으신다. 그들의 눈이 열리기를 인내로이 기다리시면서 근심에 찬 그들과 그저 함께 걸으신다. 그때 나는, 내 삶의 여정에서 어떤 만남, 사건, 사물 한 가운데 계신 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얼마나 자주 내 두 눈이 멀어 있었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막는 내 자신에 대한 선입관 같은 어떤 것들을 깨닫는다. 이렇게 또는 이와 비슷하게 반성한 후에 우리는 다음 단계 즉 Oratio에로 옮겨 간다.

다섯째 단계: Oratio - 주님께 응답하기

Oratio는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다. 우리의 응답은 저절로 솟구쳐 나오는 기도나, 때때로 관상이라 불리는 애정에 찬침묵의 기도가 될 수 있다. 루가 복음 24장 17절에서, 우리는 “주님, 저는 너무나 제 자신과 자신의 관심사로만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삶의 여행길을 걸으면서 주님의 현존에 자주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오늘의 사건들과 사람들 안에 계신 주님의 현존에 눈뜨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제 삶의 엠마우스 여행길에 기꺼이 저와 함께 걸어가시고자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도를 마친 뒤 우리는 그 본문을 가지고 다시 독서를 시작한다. 또 다시 어떤 방법으로든 마음을 잡는 한 마디의 단어나 문장에 이를 때까지 계속 읽는다. 그리고는 멈추어서 그 말씀을 명상한다.

일어남직한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첫째 문제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저항이다. 때때로, 어떤 거룩한 본문에 대해 명상하면서 읽고 있는 그 말씀, 예컨대, 원수를 사랑하라는 단순하지만 어려운 주님의 계명에 저항하거나 겨루게 되는 수가 있다. 이 도전은 거기에 머무르면서 왜 그 본문에 저항하고 있는지 이유를 깨닫도록 노력하라는 데 있다. 본문의 요구가 너무 지나친가? 우리가 원하지 않는 어떤 태도나 행동을 요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 본문의 진실을 믿기가 어려운가? 우리는 본문과 또 그와 더불어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주님께 말씀드리도록 할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의 저항에 대해 수치심이나 당혹감을 느끼게도 되어, 주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러한 때, 우리는 당신 아버지께서 당신께 원하시는 뜻을 고뇌하시던 겟세마니의 예수님은, 우리의 갈등과 저항을 참으로 이해하시리라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기도에서 정직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삶의 유쾌하지 않고 힘든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회피하고 싶은 유혹이 언제나 있다. 그러나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 다른 사람들과 우리와의 관계가 진실한 것이 되려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우리의 카드 전부를 탁상 위에 펼쳐 놓아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성서에 관하여 명상할 때 우리 모두가 여러 번 빠져들게 되는 메마름이다. 때때로 우리는 방금 읽은 본문에서 공허와 메마름을 느낄 따름이다. 말해 주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런 경우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주님께 말씀드린다는 것 역시 도전이 되고 만다. “주님, 이 말씀에서 저는 아무것도 듣지 못합니다. 저는 무척 공허하고 메마르게만 느껴집니다. 이 공허와 메마름에 대처하기가 어렵군요. 저는 주님을 잃지나 않았나, 주님을 언짢게 해 드릴 무슨 잘못을 저지르지나 않았나 겁이 납니다”라는 기도가 우리의 응답 기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응답은 주님을 무척 기쁘게 해 드리리라 믿는다. 그것은 정직하고 또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단계: 감사 기도로 마침

양성적 독서 시간을 감사의 기도로 끝마칠 것이다. 우리는 어떤 깨달음을 받은데 대해서나, 사랑 가득한 주님의 현존을 체험한데 대해 주님께 감사드릴 수 있다. 빈손으로 떠나가게 된다고 느낄 때에도 감사드리는 것은 역시 좋은 일이다. 우리가 빈손으로 떠나 왔음이 드러날 때 오히려 좋은 것들로 가득 채워졌을지도 모른다. 특히 하느님이 현존하시고 활동하신다는 것을 감지할 아무런 표지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도에 충실하고, 사랑하기를 배우는 때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상의 것은 양성적 기도의 독서를 할 때 취하게 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임을 지적하고 싶다. 위의 체제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독자는 위의 체제에서 자기에게 도움 될 만한 부분을 사용하면 된다. 강조할 바는, 거룩한 본문이 주님과 우리와의 만남의 장소가 된다는 것이다. 그 만남을 돕는 것이라면 어떤 방법이든지 다 좋은 방법이다. 그 만남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어떤 방법이든지 다 나쁜 방법이다.

성찰을 위한 질문

1) 당신이 이미 읽은 책 중에서 성서 외에 가장 풍요로운 영적 독서책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2) 당신은 거룩한 본문을 읽을 때 흔히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가? 당신의 방법이 이 글에서 다룬 여섯 단계의 방법에서 도움을 받아 좀 더 풍요로워질 수 있었는가?

- (註) -
1) 이 구별은, 피츠버그에 있는 두케인 대학교 양성 영성학원 창설자 Adrian van Kaam과 동 학원 행정처장 Susan Muto 박사의 저술들과 가르침에서 도움을 받았다.

2) 이 방면에 대한 포괄적인 지도를 위해서는 A Practical Guide to Spiritual Reading by Susan A. Muto, Dimension Books, Denville, NJ, 1976을 참조하기 바란다.

(코이노니아 제14집 86쪽, Eamon Tobin, 김의자 마리로사 옮김)

-------------------------
1) 이 글은 “Review for Religious”, 88/3, p.393-398에서 발췌 번역한 것이다.

[출처 : 코이노니아 선집 5 기도와 전례, 2004년,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파일첨부

2,38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