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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14: 에드워드 스힐벡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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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8-24 ㅣ No.345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 (14) 에드워드 스힐벡스 (중)

신앙 진리, 고정된 교의 아닌 살아있는 믿음의 행위



에드워드 스힐벡스는 그리스도교 역사와 인류 역사를 분리하지 않고 모든 역사를 하느님 구원 의지로 봤다.


에드워드 스힐벡스가 신학에 몸담기 시작할 때, 서구에서는 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한창이었다. 신학자들은 '신앙과 경험'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를 다루기 시작했다. 신앙은 '주체와 객체'의 관계 없이는 형성되지 않는데, 근대로 들어오면서 교회 안에서 이 관계를 극단적으로 다루는 성향들이 대립했다.

이에 스힐벡스는 '신앙과 경험'의 관계 핵심이 되는 문제를 광범위하게 다루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의 대표 서적을 통해 그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뤘는지 전반기와 후반기로 구분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전반기에는 '경험'이라는 개념이 명백하게 언급되지 않았고 신학 방법론은 연역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교회의 교리 전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신앙의 역사성에 주의함으로써 인간 경험에 대한 이해가 전반기에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성사는 하느님이 인간 만나는 방법

그는 전반기 대표작 「그리스도, 하느님과의 만남의 성사」에서 주체와 객체의 '만남'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당시 이분화된 신학을 뛰어넘고자 했다.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됐기에 인간은 하느님께로 갈 수는 있으나, 창조물로써 자신의 힘으로 하느님과 관계를 형성할 수 없고 그분을 만나고자 하는 인간의 원의는 하느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 은총을 전달하실 때 인간의 특성인 육체성을 중재로 하셨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강생하셨고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당대 사람들을 만나고 당신의 인간 활동을 통해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인간의 가시성 밖으로 사라진 후에도 강생의 논리로써 인간을 만나신다. 즉 성사로서 인간에게 오신다는 것이다. 스힐벡스는 "성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나시는 방법"이라고 했다.

인간은 육체를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고 만남을 이룬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으로 오시어 동시대인들을 만나고 구원의 현실을 인간이 알 수 있게 보여 주셨다. 승천하신 후에도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오실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성체성사로 우리에게 오시는 이유다. 성사는 예수님 삶의 연장, 즉 강생 논리의 연장으로 그리스도와 인간을 인간적 차원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한다. 성사란 역사 안에 눈에 보이는 하느님 구원의 은총이다. 성사를 통해서 예수님 삶이 연장되지 않는다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강생 신비는 상실되기 때문이다. 특히 18~19세기 성사에 대한 이해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는데, 스힐벡스는 물리적 측면으로 이해하던 성체의 개념을 만남이라는 개념을 통해 새롭게 이해하도록 하는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전반기 대표작 「그리스도, 하느님과의 만남의 성사」(왼쪽)와 그리스도론 삼부작 중 두 번째 저서 「그리스도 : 주님으로서의 예수 경험」.


그리스도론 삼부작

스힐벡스는 1967년에 신학 방법을 바꾸는데 그 이유는 세속화된 사회에 속하는 현대인들의 경험을 이해하고 이들과 대화를 통해 그들의 언어에 적합하게 신앙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당시 가톨릭 신학에 대두되기 시작한 해석학의 부족을 절감하고 이를 신학에 적용, 그리스도교 전통이 어떻게 변천됐는지를 보고 오늘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했다. 문화적 상황이 바뀌면 교회의 진리 또한 그 상황에 맞도록 표현돼야 하는데, 교회의 가르침이 독트린(doctrine)으로 고정화돼 상황에 따라 적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스힐벡스는 세속화가 교리를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새로운 상황에 맞는 신앙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봤다. 그에게 신학은 두 개의 축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계시와 교회의 전통'이고 다른 축은 '인간의 경험'이다. 이 두 축을 연결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만이 신학이 살아있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노력을 그의 방대한 삼부작을 통해 잘 볼 수가 있다.

하느님 말씀은 인간이 말하는 하느님에 대한 말이다. 그래서 단순하게 성경이 하느님 말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느님 계시를 인간이 인간의 언어로 해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하느님 말씀 전달의 매개체가 된다는 의미로, 하느님 계시는 다른 세계가 아닌 인간세계를 매개체로 한 경험을 통해 전달된다. 이는 하느님 계시가 역사라는 매개체를 통하지 않을 수 없고, 모든 신앙 경험은 일반적인 경험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의 이러한 신학적 관점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서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에 이미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그리스도교 메시지는 바로 예수를 근원으로 하기에 무엇보다 우리의 시선을 인간 예수께로 돌려 그분이 누구신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첫 작품 「예수 : 살아계신 분의 이야기」(1974)는 교의(dogma)를 통해서가 아닌, 인간 역사 안으로 오신 인간 나자렛 예수를 재발견하기 위해 복음에 나타난 그분의 삶을 가까이 살펴본 저서다. 또한 복음 메시지는 신앙 고백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제자들이 예수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분석한다. 역사 비판으로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 인간 예수와 그를 고백하는 신앙 공동체와 관계를 재발견한 것이다. 예수를 고백하는 신앙 공동체 없이는 역사의 예수는 없고, 또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사건 없이는 신앙 공동체가 있을 수 없음을 확인하며 성경과 신앙 공동체와 관계를 보여주려고 했다. 이로써 당시 신앙 공동체의 성경 메시지 접근과 역사적 상황을 무시한 채 학구적으로만 성경을 분석하는 성서학자들의 성경 접근과 엄청난 차이를 줄이고, 이를 연결하려 노력했다. 성서학자들은 교의적 문제를 멀리했고 교의신학자들은 현대 성서학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몰랐는데, 스힐벡스는 교의신학과 성서학을 연결하는 노력을 했다.
 
두 번째 저서 「그리스도 : 주님으로서의 예수 경험」(1977)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예수를 만난 제자들 경험에서 시작됐기에 어떻게 이 구원의 은총이 세상을 매개체로 해 이들이 은총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지를 분석했다. 특히 바오로와 요한의 글을 통해 그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 은총을 경험하고 그분이 그리스도시고 주님이심을 고백하는지, 어떻게 주님의 경험이 은총의 경험이자 해방을 위한 구체적 실천이 되는지를 봤다. 그리고 이 분석을 통해 교회의 권위와 전통 앞에서 어떻게 새로운 신앙 경험이 정당성을 부여받는지 분석했다.
 
스힐벡스는 이 두 저서를 통해 새로운 그리스도론을 제시하면서 신성은 인간 밖의 것 혹은 인간 위의 것으로 표현하지 않고 인간 안에서 인간의 것으로 계시됨을 보여주려 했다. 그리스도교는 해석된 구원경험의 역사이지 교회의 관념화된 가르침으로 시작된 것이 아님을, 예수님과 만남을 통해서 시작된 것임을 보여줬다. 이렇게 해서 변화하는 세상의 경험에 교회가 열려있게 하려고 했다.
 
삼부작의 마지막 저서는 교회에 관한 것으로 「크리스천 경험의 실천 : 교회」(1989)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 책에서 교회론은 마지막 장에 나온다. 구원과 계시의 역사, 일반 경험과 계시 경험, 전통과 상황과의 관계, 현대 사회 분석 등을 통해 이를 바탕으로 한 그리스도론을 다룬 뒤 교회 목적과 위치를 보고자 했다. 타 종교와 관계, 생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창조론 등 여러 주제를 다루면서 교회는 교회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이 저서에서 스힐벡스는 신앙의 진리는 고정된 교회 교의로서 신앙인들이 암기해야 하는 진리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에 대한 살아있는 믿음의 행위라고 말한다. 따라서 신앙 고백은 시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다양한 형태의 고백 가운데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바오로 사도, 토마스 아퀴나스, 아빌라의 대 데레사, 로메로 주교 등의 수많은 신앙인이 서로 다른 사회와 문화적 배경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다른 신앙 표현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다양한 신앙 고백에서 우리는 인간과 하느님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동일한 자세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근본주의자가 돼서 신앙을 마치 원칙을 고수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돼 현대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물론 구원의 메시지는 교리를 포함하지만 교리가 우선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이 우선적이다. 따라서 신약성경이 구원의 경험을 그 당시 문화를 통해서 해석한 말씀인 것처럼 오늘 우리의 현대 문화를 통해서 새로운 신앙 언어는 재창출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 저서에서 그의 넓게 열린 신학적 견지는 구체적인 실천과 연관 지어 고찰됨을 볼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교 역사와 전 인류 역사를 분리하지 않고, 후자 안에서 전자의 역사를 보고자 하였다. 왜냐면 모든 역사가 바로 하느님의 구원 의지에 속하기 때문이다. 스힐벡스는 그 어떤 상황도 하느님의 의지 밖에 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인류의 전체 역사를 염두에 두고 고찰한 신학자다.
 
[평화신문, 2013년 8월 25일, 김미정 수녀(프랑스 성 안드레아 수녀원, 파리 예수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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