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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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교리문답 해설 (20): 병자성사, 성품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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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08-28 ㅣ No.34

제 5 절 병자성사

 

 

  세상에 아프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아픈 일이 있습니다. 물론 가끔씩은 꾀병이라고 해서 특정한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아픔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아픔과 그에 따르는 고통은 혼자의 힘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가끔씩 정성 가득한 분들의 도움으로 고통이 감소되는 듯한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느낌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고통의 문제에 대하여 교회는 무슨 말을 하는가? 그 응답에 대한 것을 찾아보는 것이 ’병자성사’의 내용입니다.

 

  제가 위에서 좀 더 직설적인 표현을 쓰기는 했습니다만, 사람에게 닥치는 고통은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씩은 아픔을 겪어낸 당사자를 성장(成長)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기는 합니다.  물론 이런 말을 하자고 이 병자성사에 대한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석가모니도 고통은 인간에게 필연적인 것이고, 그래서 그 고통에 대한 문제를 탐구하다가 해탈의 길을 걸으셨다고 하는 것처럼 고통은 사람을 성장시킵니다.  

 

  천주교회에서 말하는 병자성사는 인간이 느끼는 고통이 단순히 인간만의 것이 아니고, 하느님도 그 고통에 함께 하신다는 것이고,  그 고통을 이겨나가는데 하느님도 고통받는 그 사람과 함께 계심을 알려주는 성사입니다. 또한 하느님이셨던 분도 인간의 육신을 입고 태어나 구원의 길을 인간에게 알려주면서 그와 같은 과정을 겪었으므로 우리도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을 이야기하는 성사입니다. 교회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설명을 이렇게 마치고 나면, 앞서 말씀드린 고통에 처한 사람이 홀로 이겨내야만 한다고 제가 했던 주장은 빛을 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병자성사는 방문성사입니다.  인간적으로 고통을 받거나 그 주변에서 도움을 주기를 원했던 사람의 요청에 따라 사제가 방문하여 영신적으로 돕는 성사라는 것이 말뜻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많은 기적들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기적을 행하여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일이 원하는 만큼 이뤄지지는 않습니다.  저도 병자성사를 하면서 가끔씩 체험하고 경험하는 일이기는 합니다만, 진정으로 병자성사의 효과를 보는 때가 있습니다.  실제 아팠던 당사자가 고통에서 해방되는 경우도 봤고, 그의 마음과 삶의 자세가 달라지는 또 다른 의미의 기적도 체험했습니다. 물론 이런 모습은 하느님께서 병자성사를 통하여 당사자에게 힘을 주시는 모습의 한 가지일 것입니다.

 

358-304.  병자성사는 무엇입니까? : <답> 병자성사는 병을 앓고 있거나 혹은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신자들, 특히 임종의 위험이 있는 신자들을 영신적으로 돕는 성사입니다.

 

358-305. 병자성사의 효과는 무엇입니까? : <답> 병자성사의 효과는 환자에게 은총을 더해주고, 마음을 위로하며 고통 중에 당하는 유혹을 물리치게 하며, 죄의 잠벌과 고통을 감해 주고, 비록 고백을 하지 못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병자가 통회하는 죄를 사해주며, 구원에 유익하면 때때로 육신의 병도 낫게 하는 것입니다.

 

  병자성사의 집전은 사제가 합니다. 교회에서 정한 규정과 예식에 따라 ’병자의 집’ 또는 ’병원’을 방문하여 성유를 바르고 기도하는 일로 이루어집니다.  앞서 시작부분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일부러 아프고 싶어서 눕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일반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입장에 처한 사람이 원한다면 여러 차례 할 수는 있습니다.  또한 거기에 미신적인 힘을 생각하고 많이 받으면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성사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모습의 한 가지 입니다.

 

358-306. 병자성사는 어떻게 거행합니까? : <답> 병자성사는 사제가 성유를 바르며 정한 기도를 바침으로 거행합니다.

 

358-307. 병자성사는 여러 번 받을 수 있습니까? : <답> 병자성사는 같은 죽을 위험에서는 한 번 밖에 받지 못하지만, 다른 이유로 새로이 당하는 경우에는 사정에 따라 다시 받을 수도 있습니다.

 

  병자성사를 합당하게 받는 데 당사자가 해야 할 일은 올바른 마음과 삶의 자세로 하느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이 세상의 삶에서 받고 그것을 체험하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특별한 어려움을 당하게 된 사람들이 보이는 몇 가지 안되는 공식반응은 ’왜 나만...?’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병자성사를 청하며 이와 같은 삶의 자세를 유지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욕심을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이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힘이 작용하고 싶어도 그 공간을 인간이 빼앗아 버린 것이므로 하느님도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사(聖事)를 청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는 인간의 노력과 더불어 하느님의 뜻에 내가 일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입니다.

 

358-308. 병자가 이 성사를 받기 전에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답> 병자가 이 성사를 받기 전에 해야 할 것은, 고백성사를 받도록 할 것이며, 만일 고백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적어도 진심으로 통회를 발해야 하며, 죽을 위험에는 신, 망, 애 삼덕(三德)을 발하고 생사를 천주께 맡길 것이며, 영성체를 하도록 힘쓸 것입니다.

 

  다음으로 말씀드릴 부분은 병자를 간호하는 사람들이 병자성사를 위한 과정에서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환자를 위하여 환자를 간호하는 사람의 역할은 매우 큽니다. 병을 앓고 있고 도움이 필요한 당사자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마음의 자세는 인간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외형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권장할 만한 자세는 309항의 내용입니다.  환자에 대한 준비, 병실에 대한 준비, 그리고 하느님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도 하는 일입니다.

 

358-309. 병자성사를 받는데 있어서 환자를 간호하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 <답> 병자성사를 받는데 있어서 환자를 간호하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사제에게 미리 알려서 맑은 정신으로 성사를 받게 할 것이며, 환자의 병실을 깨끗이 하고, 영성체를 위한 준비도 미리 해 놓도록 해야 합니다.

 

 

 

 

제 6 절 신품(神品)성사

 

  다음은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사람들 가운데서 선택하여 특별한 일을 하게 하는 성사인, 신품성사에 대한 설명을 할 차례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성격은 ’신품성사를 받은 사람은 중요한 사람이니 그들에 대한 대우가 달라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말로 강조할 성격이 아니라 체득하는 사람들이 행동으로 표현할 고유한 양식이기에 강조할 성격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사제’를 통해서 표현되는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그들이 강조하는 행동을 우리가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알아듣자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을 우리가 올바로 알아듣기 위해서는 우리의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그 성사의 바탕이 되는 요소를 알아들을 필요가 있고, 교회가 표현하고자 하는 정신을 알아듣자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우리의 자녀들이나 여러분이 잘 아는 사람들이 그 성사를 받고 하느님을 따르고자 하는 대열에 합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항목은 ’신품(神品)’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358-310. 신품은 무엇입니까? : <답> 신품은 천주교회 안에 주교와 사제와 기타 성직자들을 세우고, 각기 맡은 성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은총을 주는 성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그 뜻에 일치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람들 가운데서 성별(聖別)해 내어 특별한 임무를 주는 성사입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아직까지 남성에게만 그 자격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마다 신품성사를 받기 위한 시작 연령에 대해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는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달아 알고 우리 삶으로 실천하겠다는 자세가 ’신품성사’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자세가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가끔씩은 신품성사를 받고 일정한 교회의 의도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제들에게서 상처를 받고 자기 삶에 주저앉아 버리고 모든 신앙생활에서 흥미와 용기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이 내용을 이야기하는 사제이긴 합니다만, 그들의 삶과 행동에 지나친 영향을 받고 상처를 입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그들도 같은 인간이기에 어느 정도는 우리의 아량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성서에 나타난 신품성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358-311. 성경에 신품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까? : <답> 성경에 신품에 관한 말씀이 있으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제 직위와 은총을 주신 것과 제자들은 이 권을 다른 후계자들에게 준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서에 대한 바탕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의 사명을 마치시던 때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당신이 하던 일의 의미를 생각하고 그 역할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미사성제’를 세우십니다. 미사성제를 세우신 내용을 가장 처음부터 전하고 있다고 성서학자들이 인정하는 내용이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편지 11장에 나옵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이 미사성제를 세우신 내용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23>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24>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5>  또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6>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하고, 이것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십시오." 몸과 피를 나누어주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같은 지향으로 살 수 있도록 예수님의 뒤를 따른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교회의 설립에 대한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서 16장 13절-20절에 보면, 베드로의 유명한 메시아 고백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의 고백을 수용하시면서 교회를 세우시는 선언을 하십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있을 것이다"(16,18-19)라고 하십니다.

 

  사제가 하는 역할중 한 가지인 ’죄의 용서’에 대한 것은 위의 마태오 복음 16장 18절-19절에도 있었고 또한 마태오 복음서 18장 18절에도 있습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하는 말이 있습니다.  개신교에서 채택하고 있는 일부의 신약성서에는 이 말을 생략한 책도 있긴 합니다만, 이 내용을 근거로 해서 교회에서는 사제들에게 ’죄 사함’의 권한을 허락합니다.  

 

  또 한 가지 사도행전 6장 1절-7절에 보면, 12명의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후에 자신들의 임무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위임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도들의 수효가 늘어나자 사도들이 택한 방법이 ’부제’라는 직무의 신설과 임무의 위임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근거로 해서 교회는 처음에 사도들이 예수님에게서 받았던 직무를 후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사제를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를 말하는 내용입니다.

358-312. 사제의 지위가 존귀합니까? : <답> 사제의 지위가 존귀한 것이니, 사제는 천주께 부르심을 받고 그 직능을 받은 자로서, 홀로 천주께 제사드릴 권이 있고 천주와 사람 사이의 중개자로서 천주의 말씀과 계명을 가르치며 성사를 거행합니다.

 

  쉽게 말할 것은 아닙니다만, 사제의 지위가 존귀하다는 것이 교회의 의도입니다. 그 역할을 하는 인간으로서의 사람 자체가 귀중한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하게끔 허락하신 하느님의 힘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구약성서 민수기(12,1-16)에는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추려서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모세의 누이와 형으로 등장하는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가 이방인 여인을 아내로 맞은 것에 화를 내며 하느님 야훼께서 모세에게만 이야기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이야기한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어폐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신 하느님께서는 하느님과 대면하고 그분의 뜻을 직접 행사하던 모세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성별(聖別)하십니다.  사람들이 드러내는 질투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아론과 미리암) 너희는 내 말을 들어라. 너희 가운데 예언자가 있다면 나는 그에게 내 뜻을 환상으로 알리고 꿈으로 말해 줄 것이다.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나는 나의 온 집을 그에게 맡겼다. 내가 모세와는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한다.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두 말해준다. 모세는 나 야훼의 모습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나의 종 모세에게 시비를 걸다니 두렵지도 아니하냐?"

 

  현실의 사제들이 활동할 수 있는 힘의 바탕을 모세의 경우와 똑같이 성서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모세에 대해서 후견인 역할을 하셨던 하느님의 소리를 똑같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모세와 유사한 방법으로 때로는 모세보다 하느님께 더 친근하고 친숙한 방법으로 그분의 역할을 이 지상에 실현하는 사람들이 바로 사제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에서는 그들의 지위가 존귀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사제들에 대해서 표현할 사제들에게 행동해야 할 본분을 이야기합니다.  이 부분의 내용은 앞서 말씀드린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향하여 항의했다가 하느님에게 혼쭐난 내용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현실적인 의미에서 사제들을 잘못 대우했고 제대로 존경하지 않았다고 해서 모세에 대한 경우처럼 하느님이 행동하시는 일이야 없겠지만,  아끼고 보호하며 도와드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의 교리에서는 언급되지 않습니다만, 제대로 대하지 못한 일에 대하여 ’독성죄(瀆聖罪)’라는 항목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358-313. 신자들이 사제들에게 해야 할 본분은 무엇입니까? : <답> 신자들이 사제들에게 해야 할 본분은 사제들을 존경하고 그 지도에 순종하며 항상 기도하고 또 사회적인 면에서 아끼고 보호하며 도와드리는 일입니다.

 

  다음은 사제나 수도자의 길을 걷는 길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그 길을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고, 방해해도 잘못된 행동이요, 죄라는 내용입니다.  세상 만물을 조성(造成)하시고 다스리시고 이끄시는 하느님의 뜻을 한갓 피조물(被造物)인 사람이 자기 의지를 곁들여서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358-314. 자녀들에게 사제나 수도자 되기를 금하거나 강요하는 부모는 어떤 죄가 됩니까? : <답> 자녀들에게 사제나 수도자 되기를 금하거나 강요하는 부모는 천주의 귄리를 거스리는 중대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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