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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교회 안 상징 읽기: 성당 지붕 위 닭의 상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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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7-03 ㅣ No.4237

[교회 안 상징 읽기] 성당 지붕 위 닭의 상징성

 

 

유럽, 특히 프랑스의 거의 모든 마을에는 교회가 있다. 그리고 그 교회 건물이 오래된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간에, 그 건축 양식이 로마네스크식이든 고딕식이든 간에, 그것이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이든 도시의 대성당이든 간에, 그 건물의 가장 높은 곳에는 대체로 십자가가 솟아 있다. 그런데 교회의 지붕이나 첨탑 위에 솟아 있는 것이 모두 십자가는 아니다. 의외로 많은 교회의 지붕 위에서 닭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교회 건물의 지붕뿐만 아니라 전쟁기념관의 지붕 위에서도, 성곽의 문들에서도, 그리고 오래된 동전에서도 닭을 볼 수 있다.(단어마다 성별을 부여하는 유럽의 언어 습관에 따르자면, 여기서 지칭되는 닭은 ‘수탉’으로 번역되어야 하는 단어인데, 여기서는 그저 ‘닭’이라고 표기한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 건물에 전통적인 십자가가 아니라 닭이 왜 그리 많이 보이느냐고 묻는다면, 그곳 사람들은 무어라고 대답할까? 사실 닭이라는 조형물이 프랑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닭이 교회 안에서 하나의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 것은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의 역사보다 훨씬 오래전의 일이다. 실제로 교회 첨탑이나 지붕 꼭대기에 설치된 닭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진 것은 이탈리아의 브레시아에 있는 어느 성당의 닭이다. 적어도 1000년은 넘었다. 그리고 닭이 지닌 상징적 의미에 대한 해석은 프랑스에 있는 교회의 첨탑들만큼이나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닭은 바람이 부는 방향을 알게 해주는 풍향계 위에도 설치되어 있다. 풍향계 위에 자리 잡은 닭은 대개 화살표 모양의 횃대를 딛고 서 있다. 이 풍향계 위의 닭에는 또 어떤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을까?

 

 

닭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가리키는 상징

 

예로부터 닭은 날이 샐 즈음에 일찌감치 우렁차게 울어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날이 밝아옴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졌다. 우리말 사전에도 ‘날이 샐 무렵에 우는 닭’이라는 뜻의 새벽닭이라는 단어가 표제어로 올라 있다. 이러한 인식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두루 퍼져 있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닭이 아침마다 힘찬 소리로 울어대는 점에 주목했다. 닭이 이렇듯 아침이면 울어대는 것은 낮(빛)이 밤(어둠)을 몰아냈다는 승리의 선언이라고 보았으며, 그런 만큼 세상에 빛을 가져오는 태양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나아가 태양에게 경의를 표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닭이 태양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여겨졌고, 여러 신들 곧 제우스, 페르세포네, 아티스, 아폴로 신 등을 상징하는 신성한 표징으로 받아들여졌다.

 

풍향계 위의 닭

 

 

그리고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도 닭은 일찍부터 여러 가지 상징성을 담은 동물로 인식되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예수님의 탄생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동물이 닭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닭은 예수님 시대에 있었던 한 가지 일로 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친근한 동물이 되었다. 주님의 수난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 곧 그리스도께서 체포되시고 연행되시는 시점에서 닭이 중요한 역할을 맡아 등장한 것이다. 그 긴박하던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충격적이고도 침통한 말씀을 하셨다. 당신의 으뜸 제자인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세 차례나 당신을 배신하리라는 것이었다(마태 26,33-35․69-75; 마르 14,30-31․66-72; 루카 22,34․56-62; 요한 13,36-38․18,25-27 참조).

 

예수님의 이 예고에서 닭은 애초에 오만에 대한 경고를 의미했을 것이다. 그리고 복음서 4권이 모두 전하는 이 이야기로 해서 닭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가리키는 상징이 되었다. 나아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닭을 새로운 날과 새로운 빛을 가져오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차츰 성인들과 신앙인들에게 필수적 덕목인 참회, 잠드는 일 없이 깨어 경계함,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뜻하는 상징으로도 여기게 되었다.

 

그 밖에 닭의 상징적 의미에 대한 가능성 있는 풀이에는 이러한 것들이 있다. 닭은 이제 밤이 물러가고 새벽이 온다는 것을 알리는 동물이며, 그러기에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한다. 그러기에 닭은 그리스도처럼 밤이 지나면 낮이 오리라는 것을, 악의 때가 지나가면 선의 때가 올 것임을 알려 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닭(수탉)은 자존심이 세고 총명하며, 용감하고 경계심이 강하다. 이에 그리스도인들은 닭의 이러한 속성들을 교회가 그 공동체 안에서 신자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덕목으로서 기대하고 희망한다는 것이다. 

 

성 베드로 사도 그리고 닭 

 

 

교만하지 말고 깨어 경계하라는 예수님의 깨우치심

 

그리고 교회에 종탑들이 만들어진 5세기 이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새벽마다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서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기도를 바치기 위해 교회로 모였다고 한다. 그 시절 그리스도인들은 아침마다 교회에 모여서 함께 아침 기도를 바쳤다. 그런데 이제는 아침이면 닭의 울음소리 대신에 교회의 종탑들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사람들을 깨우는 기능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풍향계 위에 자리 잡은 닭이 딛고 서 있는 화살표 모양의 횃대는 바람이 부는 방향을 향하도록 설치되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죄악과 위기에 대응하시는 방식, 곧 정면으로 맞서시는 방식을 나타낸다.

 

이렇듯 닭은 여러 가지 보편적 상징성을 지닌 존재로서 교회 곳곳에 널리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레고리오 1세 교황(540-604년 재임)은 닭을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그리고 성 베드로 사도의 상징으로 여겨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850년 무렵에 레오 4세 교황은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닭의 형상을 설치하도록 명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와 상징성을 그리스도인들이 되새기며 살아가게 하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닭이 지닌 여러 상징성들을 ‘밤이 지나면 새날이 올 것’임을 예고하시며 교만하지 말고 깨어서 정신 차리고, 주의 깊게 살피며, 경계하라는 예수님의 깨우치심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마음일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7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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