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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유럽 수도원 순례: 유럽 선교의 교두보, 아일랜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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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8-13 ㅣ No.351

[전통 영성의 샘을 찾아서 - 유럽 수도원 순례] 유럽 선교의 교두보, 아일랜드 (하)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아일랜드 지부에서

 

 

-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아일랜드 지부 전경.

 

 

아일랜드의 날씨는 ‘비’를 빼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연 강수량이 약 100cm라는데, 가장 건조한 곳도 일년에 150일 정도 비가 내린다. 어느 지역에서는 일주일 내내 비가 오는 때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비와 관련된 용어나 유머도 많다. 이를테면 이곳에서 ‘부드러운 날(soft day)’은 비오는 날을 의미한다. 또 내리는 비를 ‘햇볕이 액체로 내려온다’(It's liequid sunshines)고 표현한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햇볕에 대한 그리움이 잘 드러나는 부분 같았다.

 

더블린에서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아일랜드 지부가 있는 나반으로 향할 때에도 흐렸다가 비가 내렸다 그쳤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였다. 더블린 북서쪽 방향, 버스로 1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한 나반(Navan) 지역의 ‘달간 파크’(Dalgan park)에는 성골롬반 외방선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50여만 평 규모의 푸른 초원 위에 모습을 드러낸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아일랜드 지부. 최근까지도 총 본부 역할을 했으나 이제 그 자리는 홍콩으로 넘기고 지역 센터로서의 임무를 맡고 있다.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회원 묘지. 한국에서 선교한 회원들을 비롯 골롬반 선교회 회원으로 활동한 이들이 묻혀있다.

 

 

건물 규모가 생각보다 컸다. 60~70년대까지 200여 명 규모의 신학생 양성이 이루어졌다고 하니 그 크기와 활동상을 짐작하게 한다. 현재는 40여 명이 거주하면서 은퇴 선교사들의 요양원으로, 또 신자들을 위한 교육 피정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고 했다.

 

약한 비바람이 흩날리는 짙은 회색빛 날씨 속에 순례객들은 우선적으로 선교회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한국에서 선교사 생활을 했던 몇몇 은퇴 선교사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한국 순례객들을 배려, 제대 앞에는 한글 성경 액자가 놓여져 있었다.

 

‘그리스도를 위한 나그네’로 먼 이국땅 한국에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다 이제는 고국에 돌아와 있는 초로의 선교사들은 한국 신자들과 함께 모처럼 한국어 미사를 봉헌하며 그때의 선교 시절을 떠올리는 모습이었다.

 

성당 뒤편 한쪽 벽면에는 특별히 24명의 선교사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한국전쟁때 희생된 7명의 선교사를 비롯 전 세계 선교지에서 순교한 회원들이다. 이들의 죽음에 맞선 신앙이 있었기에 한국교회를 비롯 아시아 남미의 여러 교회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새삼 하느님 안에 일치를 이루게 하는 그 신앙의 도움과 하나됨의 신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노크 성모발현지의 성모발현 기념 대성당. 1963년 제임스 호란 신부에 의해 건립됐다.

 

 

선교회 건물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골롬반 회원들의 묘지를 방문했다. 몇몇 비석위에 흩날리는 하얀 리본들. 한국에서 선교한 이들의 묘지를 알리는 표시였다. 한국 신자들의 방문 소식에 선교회측이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춘천교구장을 지냈던 박토마 주교의 묘지 등을 둘러보며 마음이 애잔해졌다. 익숙함을 떠나 하느님의 자비 사랑을 믿고 낯섦의 역사 안으로 뛰어들었던 선교사들의 생애가 영화 필름을 보듯 머릿속에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한국교회 안에서 나눠진 그들의 희생과 봉사의 역사를 마음 안에 담으며 아쉬운 작별을 나눴다. 원주 광주 부산 인천 교구 등에서 선교했던 브렌단 호반 신부가 버스에까지 올라 배웅 인사를 했다.

 

이제 순례객들의 발걸음은 아일랜드의 성모발현지 ‘노크’(Knock)로 향했다. 3시간 넘게 서쪽으로 달려가 만난 마요 지방(County Mayo)의 노크 마을. 1879년 8월 21일 비오는 저녁 이곳에서 성모 마리아는 마을 주민 15명에게 발현하셨다고 알려진다.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일곱 개의 성모발현지 중 하나다.

 

성모발현기념대성당의 제대 모습.

 

 

5세 어린이부터 75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신자들에게 모습을 보인 성모 마리아는 성 요셉, 사도 성요한과 함께였고 제대와 어린양 주위로 천사들이 돌고 있는 형상을 보였다고 했다.

 

1963년 제임스 호란 신부에 의해 건립된 발현 기념 대성당을 중심으로 넓고 푸른 잔디 위에 조성된 성지는 특별하게 꾸며진 십자가의 길과 소성당, 산책로, 고해소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아일랜드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인지 아무래도 유럽 본토의 성모발현지보다는 찾는 이들의 숫자가 많지 않은 듯했다. 한적하고 조용하고 아늑했다. 수시로 내리는 잔잔한 빗속에서 성모 마리아가 발현 모습을 통해 주셨던 의미들을 다시 한 번 가늠해 보았다.

 

다른 성모발현지와는 달리 노크는 성모 마리아가 특별한 메시지를 남기지 않은 것으로 눈길을 모은다. 교회 관계자들은 말이나 음성으로 들려준 메시지는 없었다 하더라도 제대와 어린양 등의 모습을 통해 미사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노크에는 교황 바오로 6세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한바 있다. 소성당 옆 한쪽 벽면에 유리로 된 장식장이 마련돼 있었고 금으로 된 장미가 놓여져 있었다. 1979년 노크 성모발현 100주년 기념을 위해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물로 기증한 것이라 했다.

 

성지 곳곳에는 2012년 6월 열리는 더블린 세계 성체대회의 포스터들도 눈에 띄었다. 성체대회를 기해 노크의 성모 마리아가 전하는 발현의 의미는 전 세계 신자들에게 보다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듯했다.

 

순례객들이 그 다음 여정으로 향한 곳은 중동부 먼스커주 코크에 위치하고 있는 킬레모어 수도원(Klyemore Abbey). 콘네마라 국립공원 인근에 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호숫가(Lake Pollacappul)를 접하고 있는 수려한 경관으로, 아일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으로 꼽힌다.

 

킬레모어 수도원 안쪽 산책로에 세워진 교회. J.F.풀러가 1877부터 1881년까지 영국의 노리치 성당을 모방해 건축한 것이다. 중세 양식의 교회와 성당의 특징들을 혼합해서 지어졌다.

 

 

이 수도원 건물은 원래 1868년 영국의 사업가 미첼 헨리가 부인을 위해 고딕 양식으로 건축한 성이라고 했다. 부인이 사망한 후 헨리 씨가 성에 대한 관심을 잃고 방치하던 중 1차 대전을 피해 벨기에로부터 아일랜드로 옮겨운 베네딕도 수녀회에 의해 매입됐다. 그 후 수녀들은 정원과 주변 환경을 더 잘 가꾸어 갔다고 하는데, 그러한 수도자들의 노력은 수도원 정원을 아일랜드 서부지역에서 손꼽히는 정원으로 만들었다. 특히 로도덴드론이 피는 7월이면 이곳은 방문객들로 초만원을 이룬다고 한다.

 

이곳 수도원에서 실제 수도자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 경부터이지만 그 뿌리는 15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설립된 베네딕도 수녀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역사만큼 아일랜드교회 안에서 베네딕도 수도회 영성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방문객 출입이 가능한 공간은 헨리 가족이 사용했던 거실 등과 함께 역대 수녀원장들의 사진 액자 및 제의 성구 등을 전시해 놓은 수도원 역사 부분이다. 실제 수도자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봉쇄 구역으로 운영되고 있어 아쉽게도 내부 방문이 허용되지 않았다.

 

수도원에서 10여분 떨어진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고딕 스타일의 작은 교회가 나온다. J.F.풀러가 1877~1881년 영국의 노리치 성당을 모방해 건축한 것인데 호숫가의 풍치와 잘 어울리는 낭만적인 모습이었다.

 

부인을 위해 성을 지은 한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와 수도원의 역사 그리고 빼어난 경치가 얽혀 이름을 알리고 있는 곳, 킬레모어 수도원. 수도원 입구에 쓰여진 ‘PAX’(평화)는 따뜻함과 위안을 갖게 했다. 아마도 담장 안의 수도자들이 이곳을 찾는 수많은 이들에게 보내는 기도의 인사가 아닐까.

 

[가톨릭신문, 2011년 8월 14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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