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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4: 오늘의 신학, 그 전망과 원칙과 기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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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4-20 ㅣ No.322

[신앙의 해 · 창간 86주년 기획]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 (4) 오늘의 신학, 그 전망과 원칙과 기준들

신학, 다양한 흐름 속에서도 보편 · 단일성 유지해야



-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모습. 공의회 개최 50주년과 새로운 제3천년기를 맞이하면서 국제신학위원회는 오늘날 신학의 위기와 전망을 제시한 문헌 ‘오늘의 신학:전망, 원칙, 기준’을 발표했다.


현대 신학의 특징적인 흐름과 동향을 잘 살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문헌이 2012년에 출간되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산하 국제신학위원회(International Theological Commission)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준비하여 발표한 최신 역작 ‘오늘의 신학:전망, 원칙, 기준’이 바로 그것이다.

이 문헌이 나오게 된 배경은, 아마도 새로운 제3천년기를 맞이하면서 신학의 위치와 전망, 기준과 원칙에 대해 새로이 점검할 시대적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또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개최 50주년을 맞이할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공의회 이후의 신학에서 그 전반에 걸친 방법론적 성찰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연재의 두 번째 순서였던 지지난주에, 긍정신학과 부정신학의 흐름에 대해 소개하면서 이미 이 문헌의 해당 부분을 인용한 바 있다.

‘오늘의 신학’은 가톨릭 신학의 전망과 원칙 그리고 기준에 대하여 상세하고 종합적으로 다루면서, 신학사적인 통시적 성찰과 신학 분야별 공시적 성찰이 교차되어 드러나는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전통과 현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며 매우 균형 잡힌 통합적 시각에서 오늘날 신학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와 위기를 분석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전망을 잘 제시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는 가톨릭 신학 방법론에 관한 현대적인 교과서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특별히 이 문헌의 출판이 신앙의 해를 의도적으로 겨냥한 것은 아니었지만, 신앙의 해를 시작하는 2012년에 이런 표준 교과서와도 같은 신학 방법론에 관한 문헌이 나오게 된 것은 하느님의 섭리라고 여겨질 정도이다. 이는 오늘날 가톨릭 신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값진 나침반이고 지도이며 등불이라 할 수 있겠다.

국내에서도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소속의 전문 신학자들 3명에 의해 이 문헌이 완역되어 2012년 10월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 문헌의 번역 작업에 직접 참여했던 필자는 금년 가을학기에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이 문헌을 중심 교재로 하여 신학 방법론에 관한 과목을 개설할 예정이다.

‘오늘의 신학’에서 일차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논점은 바로 신학의 단일성과 다수성에 관한 성찰이다.

첫 머리에서, 이 문헌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시기에 여러 다양한 신학적 흐름들이 생겨났음을 다음과 같이 긍정적 관점에서 잘 설명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시기는 가톨릭 신학을 위해 지극히 풍요로운 기간이었다. 새로운 신학의 목소리들이 특히 평신도들과 여성들에게서도 나타났고, 새로운 문화적 맥락들로부터, 구체적으로는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의 신학들이 등장했으며, 평화, 정의, 해방, 생태학과 생명윤리와 같은 새로운 고찰 주제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성서학, 전례학, 교부학, 중세 연구의 부흥으로 기존의 주제들이 더 깊이 있게 연구되었으며, 교회 일치 대화, 종교 간 대화, 문화 간 대화 등 새로운 숙고의 장들이 열리기도 했다. 이들 모두는 근본적으로 긍정적인 발전들이다. 가톨릭 신학은 인류 가족 전체와 대화하고 ‘교회가 성령의 인도로 그 창립자에게서 받은 구원의 힘’을 제공함으로써 ‘온 인류 가족에 대한 연대와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어 놓은 길을 따르려고 노력했다.”(1항)

하지만 이 문헌은 세상의 여러 계층과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학적 흐름의 다양화가 마냥 긍정적인 결과만을 산출하지는 않았음을 또한 지적한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여기에서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은 바로 신학의 단편화와 그로 말미암은 가톨릭 신학의 정체성 위기이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신학에서는 일종의 단편화가 나타나기도 했다. 또한 신학은 바로 위에 언급된 대화에서 언제나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는 도전에 항상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가톨릭 신학을 특징짓고 또한 신학의 다양한 형태들 안에서 그 신학에게 오늘의 세계와 대면하는 데에 있어서 분명한 정체감을 갖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에 이른다.”(1항)

이러한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신학의 여러 다양한 흐름 속에서도 그 단일성이 반드시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유일한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할 때 신학적, 사목적 차원에서 어느 정도는 공통된 담화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단일성을 획일성이나 그저 단일한 방식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신학의 단일성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학의 단일성은 신경에서 고백하는 교회의 단일성과 마찬가지로, 보편성의 개념과 긴밀히 상호 연관되고 또한 거룩함과 사도 전래성의 개념과도 상호 연관되어야 한다. 교회의 보편성은 온 세상과 온 인류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자신으로부터 유래한다(에페 1,3-10 1티모 2,3-6 참조). 구세주가 단 한 분이라는 사실은 보편성과 단일성 사이의 필연적인 연관을 보여 준다.”(2항)

그렇다면 왜 신학의 다수성이 생겨나는가? 그 이유는, 보편적 구원의 진리로 드러나는 신적 계시가 지니는 충만함과 풍요로움이 너무나도 방대하여 이를 단 하나의 신학만으로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단일하고 보편적인 구원의 진리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상이한 맥락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체험되기에 다수의 신학들이 생겨나게 된다.

즉, 하느님의 구원 진리에 대한 인간 체험은 언제나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동일한 하느님 신비에 대한 체험이지만, 이는 인간이 처한 시대적, 역사적, 문화적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역동적이고 극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 체험이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이 체험이 매우 일상적이고 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어느 편이든, 그것이 하느님의 신비와 구원 진리에 대한 유일무이한 체험 방식은 아니다. 이처럼 각기 다른 체험을 신학적으로 언어화할 때, 상이하고 다양한 형태의 신학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언제나 동일한 실체의 보석이 그것을 보는 사람의 위치와 각도에 따라, 또 그것을 비추는 조명의 차이에 따라 경우마다 상이한 방식으로 빛나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하느님 신비의 무한성,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이 다양한 맥락들 안에서 구원을 위해 작용하는 수없이 많은 방법들을 탐구하는 신학은 마땅히 그리고 필연적으로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된다.”(2항)

신학들의 다수성과 다양성은 하느님의 신비와 구원 진리 자체의 풍요로움에서 나오는 귀결이기에 매우 정당한 것이다.

“인간은 그 진리의 특정한 면들만을 파악할 뿐 그 전체를 파악할 수 없으며, 더욱이 최종적인 방식으로는 결코 파악할 수가 없다. 말하자면 그 진리를 항상 새로운 눈으로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신학이 숙고하고 해석하는 대상들의 다양성과 인간 질문의 다양성 자체로 인하여, 신학은 연구되는 대상의 본성에 따라 불가피하게 다양한 분야들과 방법들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신학들의 다수성은 실상 모든 장소와 모든 종류의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단일한 복음을 선포하려고 노력하는 교회의 보편성을 반영한다.”(77항)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도 신학은 하느님의 유일한 진리에 봉사하는 데에서 일치되어 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유일한 진리를, 그리고 유일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유일한 구원 계획을 연구함에 있어 이 다수성은 그들을 특징짓는 유사한 특징들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2항)

그러므로 이러한 신학적 다수성은 결코 신학의 단편화나 불일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유일한 구원 진리를 수많은 방법들로 탐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학의 단일성은 획일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직 하느님의 말씀에 단일한 초점을 맞추는 것을 요구하며, 그 헤아릴 수 없는 풍요로움에 대한 신학들의 여러 가지 설명은 서로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5항)

결론적으로, 문헌 ‘오늘의 신학’이 가장 중요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어떻게 다수의 신학들 속에서도 진정한 가톨릭 신학의 단일성을 찾아낼 수 있는가, 즉 진정한 가톨릭 신학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준들이 과연 무엇인가를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내는 과제이다.

그런데 이처럼 “신앙의 이해(intellectus fidei)라는 통일된 계획 안에 다수의 연구와 방법들을 통합하려 시도하며, 진리의 단일성을 주장하고 따라서 신학 자체의 근본적인 단일성을 주장한다는 것”(85항) 자체가 바로 가톨릭 신학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한 가지 주요 기준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박준양 신부는 1992년 사제로 서품,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 전공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신학과 사상학회 편집위원장 및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 FABC 신학위원회 전문신학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3년 4월 21일,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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