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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 산책18: 육의 행실과 성령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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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9-06 ㅣ No.717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18) 육의 행실과 성령의 열매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할 아홉가지 열매



필자는 지난 4개월 동안 가톨릭 영성 생활이란 무엇이고 영성신학은 왜 필요한지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의 발전 과정을 오늘날 영성 생활 및 영성신학이라는 개념으로 통합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수덕 생활과 신비 생활이 여전히 영성 생활의 기본을 이룬다는 점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가톨릭 영성 생활을 올바로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서 영성 생활의 수덕적인 측면과 신비적인 측면을 차근차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필자는 먼저 영성 생활의 수덕적인 측면을 살펴보고, 이후 신비적인 측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수덕 생활에서 ‘수덕’(修德)의 한자는 ‘덕을 닦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그리스말 어원에는 ‘운동선수가 반복해서 훈련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운동선수가 반복 훈련을 통해 운동 종목의 기술을 잘 익힐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도 덕행을 반복해서 실천해야 몸에 배어 영성 생활이 증진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최선을 다해 달릴 길을 달음질하라고 권고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1코린 9,24; 필리 3,12-14; 2티모 4,7 참조).

초대 교회는 수덕 생활을 두 가지 방향에서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바오로 사도가 갈라티아 교회 신자들에게 한 권고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먼저 그리스도인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는 데 방해가 되는 육의 행실에 대해 경고합니다.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갈라 5,19-21). 그리고 바로 이어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이 성령을 따르면서 맺어야 할 열매를 언급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갈라 5,22-23). 따라서 수덕은 좋은 덕행을 반복해서 실천해 몸에 익히려고 노력하는 방향도 있지만, 몸에 남아 있는 나쁜 악습을 찾아내 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방향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나쁜 악습을 성찰해 끊어버리는 방향을 먼저 권고했습니다. 고대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는 저서 「프락티코스」에서 끊어버려야 할 나쁜 악습 여덟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즉, 그는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인간 경험에서 나오는 논리적 순서를 고려해 ‘탐식, 음욕, 탐욕, 슬픔, 분노, 나태, 헛된 영광, 교만’을 제시했습니다. 에바그리우스의 제자로 알려졌고, 동방 교회에서 시작된 수도 생활을 서방 교회에 잘 알려준 인물인 요한 카시아누스도 저서 「제도서」에서 에바그리우스가 열거한 여덟 가지 악습(팔죄종, 八罪宗)을 다시 언급했습니다. 결국 이 여덟 가지 악습은 인간 생각 안에 자리 잡아 인간의 영적 발전을 방해하기 때문에 무정념(無情念)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중세 들어 교회에서는 특히 수도자를 중심으로 악습을 끊어버리려는 노력이 과도하게(?) 발전하면서 극단적인 고행이나 고신 극기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우리 육신이 무절제한 쾌락에 빠져 영적 발전에 방해를 받게 되는 것을 경계하려는 노력이었으나, 몸에 밴 악습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기보다는 육신을 과도하게 혹사시키는 쪽으로 기우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악습의 목록을 성찰하는 방법은 현대까지 여전히 유효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전까지만 해도 서방 가톨릭 교회는 ‘교만, 질투, 분노, 탐식, 음란, 게으름, 인색’이라는 일곱 가지 악습을 가르치면서 칠죄종에 대항해 싸워야만 죄에 물들지 않고 영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실하게 자신을 돌아보면서 남아 있는 악습을 찾아내 끊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수덕 생활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5년 9월 6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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