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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교부들의 명언: 세례의 물과 참회의 눈물이 죄를 씻어주지만 자선도 죄를 없애줍니다(교황 대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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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03 ㅣ No.325

[교부들의 명언] 세례의 물과 참회의 눈물이 죄를 씻어주지만 자선도 죄를 없애줍니다


“기상! 기상! 이제는 잠에서 깨어나야지!” 동지섣달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과 식물들이 깨어나서 꿈틀거리며 외치는 소리다. 그야말로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다. 그리고 3월 사순시기다.

자선에 관한 내용을 통하여 사순시기의 신학적, 영성적 의미를 되살리고, 신앙생활 안에서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순시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레오 대교황(위 그림 : 440-461년 재위)의 말씀 “세례의 물과 참회의 눈물이 죄를 씻어주지만, 자선도 죄를 없애줍니다.”(ut peccata quae sunt baptismi aquis, aut paenitentiae lacrymis abluuntur, etiam eleemosynis deleantur : 사순시기 「강론」, 11,6)에 대해 기술해 본다.


성경에서 말하는 ‘자선’

구약성경에서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는 ‘자선’은 ‘정의’라는 의미를 포함하여 이해하였다. 칠십인역에서 자선은 하느님의 자비(시편 24,5; 이사 59,16), 동족을 위해 베푸는 인간의 자비(창세 47,29), 드물게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성실한 응답인 정의(신명 6,25) 등을 뜻한다.

이 단어가 물질적인 도움이라는 자선의 의미로 사용된 것은 시대적으로 후대에 쓰인 다니엘서, 토빗기, 집회서 등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지혜서와 예언서에 따르면,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은 직접 하느님께 선을 행하는 일이며(잠언 19,17), 하느님의 보상과(에제 18,7) 죄의 용서를(다니 4,24; 집회 3,30) 가져다준다. 또한 자선은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와 같고(집회 35,2), 자신의 재물을 포기하면서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는 것과 같다(집회 29,12).

이와 같이 구약성경에서 자선은 단순한 인간적 박애를 넘어서서 종교적 행위의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사실을 토빗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누구든 가난한 이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마라.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너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으실 것이다. 네가 가진 만큼, 많으면 많은 대로 자선을 베풀어라. 네가 가진 것이 적으면 적은 대로 자선을 베풀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나누어주어라. 너에게 남는 것은 다 자선으로 베풀고, 자선을 베풀 때에는 아까워하지 마라”(토빗 4,7-8.16).

신약성경에서도 자선을 사랑과 자비에서 우러나오는 종교적인 행위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이 단어는 자비로운 행위라는 관점에서만,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선의 관점으로만 사용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말씀을 통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 것이 곧 주님께 베푼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범위를 뛰어넘는 자선의 가치를 내세우신다.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실천과 동일한 위치로 끌어올리셨던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는 일반적인 수계생활 세 가지, 곧 자선(마태 6,1-4)과 기도(6,5-15) 그리고 단식(6,16-18)을 제시한다. 이와 같이 자선은 사순시기에 신자들이 지켜야 할 중요한 실천사항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물이 불을 끄는 것처럼 자선은 죄를 없앤다

레오 대교황은 자선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차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당위적 차원의 행위라고 역설한다. 더 나아가 자선은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하느님에게서 자비와 용서를 받으려면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레오 대교황은 “물은 타오르는 불을 끄고 자선은 죄를 없앤다.”(집회 3,30)라는 말씀을 근거로 하여 “세례의 물과 참회의 눈물이 죄를 씻어주지만, 자선도 죄를 없애줍니다.”라고 강조한다.

교부들은 세례를 ‘재생의 성사’ 또는 ‘재생의 목욕’이라고 부른다. 원죄와 본죄를 지닌 인간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지은 본죄와 원죄를 용서받게 된다. 그러나 세례 이후에 지은 죄까지 모두 용서받는 것은 아니다.

당시 세례를 받은 신자가 배교나 살인 그리고 간음과 같은 중대한 죄를 지어 교회에서 파문되었다면, 수년간의 참회단계를 거쳐 죄의 용서를 구하였다. 파문된 죄인들은 참회절차를 마치고 나서야 정상적인 신자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이때 주교가 하는 공적인 선언을 ‘화해’라고 말한다.

그만큼 인간이 죄를 지어 잃어버리고 망가진 것을 본래의 상태로 회복하려면, 하느님과 이웃의 용서와 자비를 얻기 위한 참회의 눈물이 필요하였다. 반면 일상에서 가벼운 죄를 지은 경우에는 여러 가지 수계행위를 통해 죄의 용서를 구할 수 있었다. 레오 대교황이 여기서 말하는 ‘죄 사함의 은총’은 파문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에게 해당된다.

사순시기는 죄 사함을 받는 구원의 때이다. 이미 세례를 받은 신자로서 마귀의 꾐에 넘어가 죄를 지은 죄인들도 사순시기에 죄 사함의 성사를 받게 된다. 물론 세례를 통한 죄 사함과 자선을 통한 죄사함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런데 레오 대교황의 이 명언에서 자선은, 세례성사(세례의 물), 참회의 성사(참회의 눈물)와 더불어 사순시기에 가장적절한 수계행위로 승화되어 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지만, 그 구원을 받고자 자신을 정화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우리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지를 똑똑하게 살펴보아, 일그러지고 더럽혀진 부분을 바로잡아 깨끗해지려면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어 하느님께 자비와 용서를 구할 수 있다.


레오 대교황이 말하는 자선 실천의 방법

레오 대교황의 강론에는 ‘오늘’, ‘지금’ 또는 ‘이때’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전례는 하느님께서 과거에 성자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단순히 기념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례에 참석한 신자들이 그 신비에 ‘지금’ 동참하고 생활해야 하는 것이다.

사순시기는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 요약되는 파스카 신비를 준비하는 시기다. 주님의 수난 없이는 부활도 있을 수 없으며, 수난과 부활은 하나의 파스카 신비에 결합되어 있다는 원칙에 따라, 레오 대교황은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부활에 동참할 수 없다고 종종 강조한다.

우리가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길은 사순시기의 수계생활 가운데 하나, 바로 자선을 행하는 것이다. 레오 대교황이 말하는 자선 실천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선을 베풀 때는 재물을 걱정하지 말고 관대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둘째, 자선은 누구나, 곧 부유한 이들뿐만 아니라 궁핍한 이들도 베풀 수 있다. 자선에서 중요한 것은 재물의 양과 종류가 아니라 그 안에 담겨있는 선의이다. 진실한 마음이 담겨있다면 냉수 한 잔으로도 자선을 베풀 수 있다.

셋째, 자선을 베풀 때는 집단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모두에게 베풀어야 한다. 넷째, 자선을 실천할 때에는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다섯째, 자선의 행위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베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선은 세속적인 친절이나 동정과 다를 바 없다.

봄을 맞아 땅속에서 갓 나온 벌레나 갓 자라는 풀처럼,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시작한 그날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날이 갈수록 부의 양극화가 심각해지는 우리의 현실에서, 또다시 신앙생활의 새로운 활력을 얻고자, 우리의 눈과 손발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 안봉환 스테파노 - 전주교구 신부. 교부학과 전례학을 전공하였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3월호,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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