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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진7: 교리교육 중심의 청소년 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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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1-28 ㅣ No.176

[조재연 신부의 청사진(청소년 사목의 설계도)] (7) 교리교육 중심의 청소년 사목


통합적으로 ‘청소년 사목’ 역사를 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이어받아 지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완성에 이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변화하며 성장하고 있다. 그 변화는 성령의 이끄심을 통해 일어나고 모든 움직임마다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기 때문에 교회의 역사를 성찰하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살피고 따르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청소년 사목도 마찬가지다. 지난 청소년 사목의 역사를 통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하느님 뜻에 맞는 사목의 방향을 모색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보다 넓은 시선으로, 가톨릭교회 전체의 흐름, 즉 보편 교회의 역사 안에서 ‘청소년 사목’ 영역이 어떻게 형성·발전돼 왔는지를 먼저 살펴본다면, 이를 통해 한국교회 청소년 사목의 현 주소를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보편 교회의 역사 속에서 청소년 사목의 최초의 형태는 ‘신자 가정의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교리교육’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교리교육이란 기본적으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 세례를 주고,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 19-20)는 예수의 지상 명령을 받들어, 사람들을 예수의 제자로 가르치고 양육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일컫는다.(현대의 교리교육 제1항 참조)

교리교육은 교회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예비자들에게 신앙의 핵심 내용을 전달하는 일, 그리고 기존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말씀과 교리를 가르치는 일로 크게 구분된다. 초기 교회 시대부터 신자 가정의 자녀들은 그 성장 과정상 자연스럽게 교회의 ‘예비자’로 분류됐고 동시에 교리교육의 당위적 대상이 됐다.

교회 초기부터 15세기까지 이르는 중세 시대에 이 신자 가정의 예비자 자녀들, 즉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교리교육은 주로 가정에서 부모 혹은 대부모가 담당했으며, 본당이나 수도회가 설립한 학교에서 사제 및 교리교사가 가르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의 교리교육은 교사가 그리스도교의 지식을 주입식으로 가르치고, 학생들은 암기를 통해 그 내용을 수용하는 ‘문답식 교육’이었다. 이처럼 당시 교리교육이 주입식 전달, 즉 하향적·연역적 방식으로 이뤄졌던 이유는 중세 시대에 청소년이란 ‘신자 이전의 단계’에 속한 존재로서 지식 주입을 통해 교도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16세기 종교 혁명의 발발로 프로테스탄트 세력이 확산되자, 가톨릭 교리를 변호하기 위한 다양한 교리서가 발표됐고 그 내용을 더욱 철저히 교육·전수하기 위한 노력도 강화됐다. 그 일환으로 이탈리아의 추기경 가롤로 보로메오(Carlous Borromaeus, 1538~1584)는 ‘그리스도교 교리 신심회’(Confraternity of Christian Doctrine, CCD)를 조직해 교리 학교 육성에 주력했다. 이후 유럽을 비롯한 가톨릭교회 전반에 CCD 중심의 ‘교리 학교’ 방식이 확산되면서, 연령대에 맞게 구조화된 교리 내용을 일방적·하향적으로 전달하는 학교 형태의 교리교습 방식이 어린이·청소년 사목의 주를 이루게 된다.

이처럼 교회 초기부터 시작해 가정·교회·사회 전반에 종교적 분위기가 팽배했던 중세시대, 가톨릭의 개혁이 이뤄졌던 16세기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청소년 사목은 ‘가정과 학교에서의 교리교육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 시민사회가 확립되면서 CCD 기반의 교리 학교는 점차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공립학교의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학교 교과 과정에 교리교육이 포함돼 더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교리지식을 교육할 수 있게 됐지만, 이전 시기처럼 종교적인 전례를 함께 전수하거나 신앙을 성숙시키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이에 교리 학교를 담당하던 CCD의 활동은 자연스럽게 약화됐고, 18~19세기에 종교보다 이성으로 진리를 파악하려는 근대 계몽주의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교회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지속적으로 약화됐다. 이에 교회는 본당에서의 교리교육이나 교육 담당 수도회의 활동 등 학교교육 이외의 방법을 보다 강화함으로써 대응하고자 했다.

이러한 흐름 안에서 지식 전달·암기 위주의 기존 ‘교리교육 중심의 청소년 사목’과는 또 다른 흐름인 ‘사목적 사랑의 청소년 사목’이 역사 안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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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연 신부는 가톨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교구 무악재본당 주임, 햇살청소년사목센터 소장,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FABC-OL) 청소년사목위원회 전문위원, 한국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4년 1월 26일,
조재연 신부(서울대교구 무악재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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