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예화ㅣ우화

[선행] 버스 기사의 작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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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0 ㅣ No.340

버스 기사의 작은 사랑

 

 

몇 년 전 바람이 꽤 쌀쌀하게 부는 어느 겨울 밤이었습니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해가 일찍 저문 뒤라 주위는 제법 캄캄했습니다. 버스 안에는 찬 기운 때문에 몸을 잔뜩 움츠린 승객들이 드문드문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버스가 비탈길로 접어들어, 산기슭 정거장에서 중학생 한 명이 내렸습니다. 아마 자율학습을 하다가 늦게 귀가하는 학생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 일이 자주 있는 듯 중학생은 어두운 버스 정류장에서 마을 쪽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익숙한 걸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학생을 내려놓은 버스가 그 중학생이 저만치 갈 때까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출발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인가?'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 얼마 동안 버스는 헤드라이트를 켠 채 가만히 멈춰서 있었습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물론 승객들도 누구 한 사람 출발을 재촉하기는커녕 아무 불평 없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이윽고 멀찌감치 그 중학생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을 때쯤 되자, 버스는 부르릉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앞자리에 앉은 중년 아주머니에게 넌지시 물어보았습니다.

 

"아주머니, 왜 기사 아저씨가 버스를 바로 출발시키지 않는 겁니까? 혹시 배차 시간을 맞추려고 그러는 건가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아까 그 학생이 걸어간 길이 몹시 좁고 가파르거든요."

 

그제야 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좁고 가파른데다 어두운 길을 걷는 그 학생을 위해 얼마 동안 헤드라이트로 길을 환하게 밝혀 준 것이었습니다.('눈물이 나올 만큼 좋은 이야기', 작은 친절 운동 본부)

 

[사목 234호, 1998년 7월,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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