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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신앙] 마음의 새로운 변화 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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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6-16 ㅣ No.684

[기억, 아남네시스] 마음의 새로운 변화 회심



회심의 첫걸음

한국방문 일정의 마지막 날이던 8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한반도에서 드리는 미사이기에, 평화와 화해의 은총을 특별히 간구하는 미사를 봉헌하셨다.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드리는 기도였다.

교황님은 앞서 아시아 청년들과 만남(8월 15일)에서도 한국이 두 개가 아니고 하나이며 단지 갈라져 있을 뿐, 가족이 헤어져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일치를 이루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셨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희망이 있음을, 형제를 발견할 수 있는 인간적인 희망은 같은 언어를 말한다는 것이다.

60년 이상 한반도에서 지속되어 온 분열과 갈등의 체험을,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여정에 비교하시면서, 하느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도 희망 가득 찬 약속을 이루어주실 것임을 제시하셨다. 이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하느님께서 주셨던 계명,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너희와 너희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신명 30,1-3)을 들어야 하는 것이 전제된다.

그리고 “화해, 일치, 평화라는 하느님의 은혜들은 회심의 은총과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라는 교황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은총이 이 땅에 이루어지려면, 한반도에 사는 우리 모두, 한민족 전체, 특히 한반도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회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교황님이 말씀하신 ‘회심’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을 돌이켜 먹거나, 과거의 생활을 뉘우쳐 고치고 신앙에 눈을 뜨는 것”이다. 삶 속에서 저지른 죄를 깨달아 반성하고 그로부터 벗어나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교황님은 우리가 해야 할 회심의 행위를 ‘마음의 새로운 변화’라고 규정하신다.

마음을 새롭게 먹고 우리의 삶을 바꾸려면, 지난날의 생활을 뉘우쳐 고치려면, 먼저 지금 우리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 살고 활동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황님도 “회심을 촉구하는 하느님의 긴박한 부르심은 한국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도 하나의 도전을 제시”한다고 말씀하신다.

교황님이 말씀하신 도전은 「복음의 기쁨」 ‘오늘날 세상이 제기하는 도전들’(제2장 참조)에서도 언급한다. 이 도전은 회피하거나 외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교황님은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시며, 우리의 현실을 ‘복음의 빛’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교황님의 권고가 마음에 거슬리기도 하겠지만 현실을 제대로 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다. 우리 삶과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회심으로 가는 첫걸음을 내딛으려면 말이다.


「복음의 기쁨」에서 찾은 회심의 시작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생활을 경제활동과 경제적인 문제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교황님은 부유한 이들이 가난한 이들을 돕고 존중하며 북돋워주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줄 의무가 있으며(58항 참조), 현재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25항 참조)는 심경으로 세상에 대한 도전을 제기하신다.

먼저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경제는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인간을 사용하다가 그냥 버리는 소모품으로 여기게 만든다. 이런 ‘버리는’ 문화는 계속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고통스러운 절규 앞에서 함께 아파할 줄 모르고, 다른 이들의 고통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며, 그들을 도울 필요마저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연민보다 자신의 이익을 내세워 분열과 중상, 비방, 시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여기에 교황님은 교회가 해야하는 우선적인 일은 아파하는 이웃을 위로하는 것임을 몸소 보여주셨다.

돈이라는 새로운 우상을 거부하여야 한다. 돈이 우리 자신과 사회를 지배하도록 순순히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이 최우선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인간을 소비욕의 존재로 전락시키고 결국 부패와 이기적인 탈세로 이어진다.

시장의 이익을 신성시하는 사람들은 윤리와 하느님을 거부한다. 윤리는 인격을 훼손하고 조작하는 것을 단죄하고,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완전한 자기실현과 온갖 시장에 매이는 예속에서 벗어나라고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리는 시장에서 균형을 이루게 해주고 인간적인 질서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윤리적인 요소들을 고려하여 금융 분야를 개혁해야 한다. 여기에는 정치 지도자들의 (회심이 전제된) 강력한 태도변화가 필요하다(57항 참조). 정치 지도자들이 개별 상황의 특수성을 감안하면서도 결단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이러한 도전에 맞서도록 촉구한다.

폭력을 낳은 불평등은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오늘날의 경제운영 체제는 무분별한 소비를 부추기고, 배척과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는 한, 폭력이 뿌리째 뽑히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 구조 안에서 구체화된 악은 사회의 분열과 죽음을 가져올 것이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의 바탕이 될 수 없다.

문화와 신앙 토착화의 도전(61-70항)

문화적인 면에서 무관심과 상대주의는 교회뿐 아니라 사회생활 전체에도 해가 된다. “외향적이고 직접적이고 가시적이고 즉각적이고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우선시된다. 실재적인 것이 외양에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다”(62항 참조). 한국에서는 이미 외모 지상주의가 너무나 보편적인 가치가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취업하려면 성형수술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추세이다.

세속화 과정은 신앙과 교회를 사적이며 인간적인 영역으로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다. 초월성은 전적으로 거부하면서 윤리를 더욱 왜곡시켰고, 상대주의를 점점 확산시켰다. 이런 시각으로 볼 때 교회의 가르침은 특정한 편견을 부추기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처럼 여긴다.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려면, 젊은이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고 도덕적 가치들 안에서 우리가 성숙하는 길을 제시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복음화가 된 대중문화는 한층 정의롭고 종교적인 사회의 발전을 증진할 수 있는 신앙과 연대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복음의 토착화는 문화의 복음화, 이미 존재하는 전통의 풍부함을 촉진하고 키우며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가톨릭 신자들이 젊은 세대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수하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원인은 가정에서의 대화 부족, 대중매체의 영향, 상대주의적 주관주의, 시장만 배불리는 무분별한 소비주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목의 무관심, 교회가 사람을 환영하는 분위기를 갖지 못한다는 점, 종교 다원주의 환경에서 자신의 충실한 신앙심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할 수 있다.

도시 문화의 도전(71-75항)

도시의 생활 리듬은 날마다 장소와 사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인간이 사는 지역에서 새로운 문화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넓은 지역에서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변화와 거기서 생겨나는 문화가 새로운 복음화가 이루어져야 할 훌륭한 공간이다.

도시민에게 의미가 있고, 매력 있는 혁신적인 특성을 지닌, 기도와 친교를 위한 공간과 기회를 생각해 내야 한다. 도시의 다양한 문화 안에는 마약과 인신매매, 소수자에 대한 학대와 착취, 노인과 병자 유기, 다양한 형태의 부패와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도시는 만남과 연대의 귀중한 공간이 될 수 있음에도 고립과 상호불신의 장소가 되고 있다. 복음 선포는 인간의 존엄성 회복의 기반이 되어야 하며, 분열과 폭력 사이에서 대화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도시에 넘치도록 생명을 부어주고자 하시기 때문이다(요한10,10참조).

사목 일꾼들이 겪는 유혹들(76-109항)

교황님은 사회전반의 문제에 대해 진단한 뒤 교회 안의 문제를 언급하신다. 곧, 사목 일꾼들이 겪는 유혹, 개인주의의 팽배, 정체성의 위기, 사목활동에 대한 식은 열정을 해악이라고 표현하신다. 교회의 메시지에 대한 회의주의는 실천적 상대주의에 빠지게 한다. 결국은 경제적인 안정에 매달리거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이나 인간적인 영예를 얻으려는 생활방식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복음화 사명에 대한 열정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신의 개인적 자유만을 소중하게 지키려는 경향 속에서, 평신도들은 자신의 자유로운 시간을 빼앗길 수도 있는 사도직의 임무를 맡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 데에만 몰두하는 사제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하신다. 그러나 복음화라는 과업은 하느님의 사랑에 기쁘게 응답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앞서 살펴본 우리 사회 전반의 도전들, 교회 안의 문제들이 우리의 헌신과 열정을 약화시키는 핑곗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앙의 눈으로, 성령의 빛으로 본다면, 죄악도 우리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개인주의가 만연하여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사람을 서로 맞서게 하는 현실에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형제적 친교라는 빛나고 매력 있는 증거를 보여주자고 권고하신다.

“여러분이 서로 얼마나 아끼는지 그리고 얼마나 서로 용기를 불어넣고 함께하는지를 모든 이가 보고 존경하도록 하십시오”(99항). 그리고 누군가에게 화가 나 있다면 “주님, 저는 이 사람 때문에 화가 났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을 위하여 기도합니다.”(101항)라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형제애의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신다.


회심의 은총으로 화해, 일치, 평화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에서 이미 세계교회 전체를 향해 권고하신 그 ‘도전들’을 방한 내내 한국교회를 향해서도 계속 사용하신다. 참으로 정의롭고 인간다운 한국사회를 이룩하는 데에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얼마나 질적으로 기여했는지를 점검해 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교황님은 8월 14일 한국 주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특별히 당부하셨다.

“예언자적인 복음의 증거는 한국교회에 특별한 도전들을 제기합니다. 한국교회가, 번영하였으나 또한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일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목자들은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준보다도 기업 사회에서 비롯된 …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까지도 받아들이려는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 그러한 온갖 유혹을 물리치십시오. 성령을 질식시키고, … 모든 선교 열정을 소멸시켜 버리는 그러한 정신적 사목적 세속성에서 하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빕니다.”

빛이 있어야만 우리는 진실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문제점들을 보는 것은 복음의 ‘빛’으로, 빛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의 ‘빛’으로 보아야만이 세상을 복음화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회심은 새로운 변화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라보려면 비추어줄 ‘빛’을 바꿔야 한다. 진정한 회심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뿐 아니라 우리 역사의 흐름까지도 바꿀 수 있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 성경화 체칠리아 -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학위를 받고, 가톨릭교리신학원과 의정부교구 신앙교육원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6월호, 성경화 체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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