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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12: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 -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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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6-27 ㅣ No.689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12)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 -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


인간은 하느님의 계획이 계시되고 실현되는 공간



하느님 계획의 구체적인 실현인 인간 창조(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중에서)


체계적 학문을 바탕으로 신화 과정에 대해 설명

이번 호부터는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다양한 영성 주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영성은 가톨릭 교회 영성의 정수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인간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나 궁극적으로 실현해야 할 소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뿐만 아니라 그 길을 가는 과정에서 어떤 정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또 인간이 걷는 영적 여정의 최종 종착지인 하느님과 합일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실현되는지 하는 점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녀 데레사 같은 경우도 이런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만, 성녀가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 식으로 풀어낸 반면,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상당히 객관적이고 학문적인 용어를 바탕으로 이 주제들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두 분 다 인간이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신비 체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자신의 신비 체험을 두서없이 전하는 성녀 데레사의 작품보다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십자가의 성 요한 작품을 선호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하느님과의 사랑의 일치를 향해 예정된 인간

성인의 영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첫 번째로 봐야 할 것은, 도대체 그분이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근본 메시지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성인이 우리에게 하는 모든 이야기에는 근본 바탕이 되는 틀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이라고 하는 주제입니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근본 이유가 하느님께서 영원으로부터 그를 위해 준비하신 놀라운 계획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의 내용은 다름 아닌 삼위일체 하느님과 인간 사이 사랑의 합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성인은 인간이 그렇게 하느님과 하나됨으로써 참여(參與)로서 하느님이 된다는 ‘신화(神化)’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인간은 참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성인의 가르침이 그분만의 독창적인 사상은 아닙니다. 이미 교부시대부터 십자가 요한 성인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교부들과 신비가들이 이 점에 대해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이 주제와 관련해서 성인의 독창성은 그 신화 과정을 낱낱이 파헤쳐 체계적인 틀로 소개해 주었다는 데 있습니다.

성인이 말하는 신화는 소위 범신론에서 말하듯이 하느님이라는 망망대해 안에 사라져버리고 마는 강물과 같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하나가 된다 하더라도 각자 고유한 인격체는 그대로 남으며 사랑으로 인해 두 사람 모두 충만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듯이 하느님과 사랑의 합일에 이른다 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고유한 인격체로 남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의 사랑으로 인해 자신을 충만히 실현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계획이 계시되고 실현되는 공간인 인간

그러므로 인간은 바로 이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 영원으로부터 예정되었다고 성인은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인간은 영원으로부터 예정 은총을 통해 하느님과 사랑으로 하나 되도록 불림 받은 것입니다. 성인은 자신의 연작시 「로망스」 가운데 ‘창조’라는 부제가 달린 세 번째 시에서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너를 괴어 받들 색시를 / 아들아, 네게 주려 하였노라 / 우리네 한 몫을 네 힘으로 / 그가 얻기 위함이었노라 / 내 먹는 같은 빵을 / 그도 한 상에서 같이 먹어서 / 이런 아들 안에 내가 지니는 / 복락을 그도 알라 함이어니 / 네 사랑, 네 가멸함을 / 나와 함께 즐기기 위함이로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영원으로부터 우리 각자를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과 사랑의 친교를 나누도록 예정하시고 이 시공 안에 우리를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성인은 같은 연작시의 네 번째 시에서 인간이 예정된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 “하느님이 누리시는 같은 복을 게 누리니 / 아버지와 아드님과 이분들로서 좇아 난 님은 / 한 분이 또 한 분 안에 사시느니 / 새색시도 이러하여 하느님 안에 흡수되어 / 하느님의 생명을 살라 하네.”


성성을 향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성사적 존재

그러므로 인간의 창조는 하느님께서 영원으로부터 그를 위해 준비하신 원대한 계획이 실현되는 사건입니다. 이 시공 안에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나’는 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 나를 위해 영원으로부터 준비한 그분의 놀라운 계획이 가시적(可視的)으로 드러난 모습인 것입니다.

내 삶의 역사는 그런 하느님의 계획이 실현되는 장(場)입니다. 그러므로 그 역사는 구원의 역사이자 하느님 자비의 역사이며 사랑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우리 각 존재는 우리 각자를 향한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사랑과 원대한 계획을 담고 있는 그릇입니다. 또한 그분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선사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가는 협력자로 불러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그런 우리 존재의 품위와 소명을 주님의 ‘정배’라는 애틋한 표현 안에 담아냈습니다. 이렇듯 우리 각자는 존재 자체로 이 모든 주님의 일을 품고 있는 성사적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씨앗처럼 담겨 있는 주님께서 선사하신 성성(聖性)을 향한 무한한 가능성을 깊이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평화신문, 2015년 6월 28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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