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예화ㅣ우화

[사랑]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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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0 ㅣ No.335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어요

 

 

"안녕하십니까, 부인."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일을 하는 동안 그녀는 그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전혀 듣지 못했다. 그는 군인이었다. 그는 한쪽 팔을 붕대에 매달고 있었다. 상처에 엉겨붙은 핏자국으로 보아 위생 따위는 깡그리 무시한 채 무작정 동여맨 것이 분명했다.

 

"왜 그러세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 하구요."

 

그가 도움을 자원했다. 그녀의 승낙을 기다릴 사이도 없이 그는 평크난 타이어를 차에다 실었다. 그녀는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희뿌연 카바이트 불빛에 그의 앳된 얼굴이 드러나 보였다. 입언저리를 찡그린 것으로 보아 팔의 상처로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참기 힘들 만큼 아픈 모양이었다.

 

"어떻게 된신 거예요? 어쩌다 팔을 다치셨나요?"

 

"별일 아닙니다. 유탄의 파편에 맞았습니다. 좀 전에 의사 선생님이 진통제 주사를 놓아주셨어오. 그래서 지금은 아픈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당신 혼자 가도록 내버려두었단 말이예요?"

 

"저는 제 힘껏 달려왔어요. 우리가 타고 있던 차가 펑크나 버렸거든요. 가능한 한 빨리 정규병원에 가야한다기에 급한 마음에 이렇게 뛰어가고 있던 중입니다."

 

"그렇다면 길을 제대로 드신 셈이군요. 저도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야 하거든요. 빨리 타세요."

 

그들은 나란히 차 안에 앉았다. 그녀가 차에 시동을 걸자 그는 팔에 통증이 심한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런데 부인은 이런 전쟁통에 무슨일로 도로에 나오셨어요?"

 

그녀는 자기가 알아서 말을 해나가는 편이 그의 고통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수많은 부상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X-선 촬영기를 이동식으로 만들었어요. 총알이나 포탄의 파편 등이 박힌 부상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니까요. 지금 X-선 촬영기를 싣고 병원으로 가고 있는 중이에요."

 

주의 깊게 듣고 있던 병사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놀라는 듯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X-선 촬영기를 이동식으로 만드셨다구요? 그럼 혹시 마리 퀴리 부인이세요?"

 

"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저는 필립입니다. 물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죠. 그러다 전쟁이 터져 이 모양이 되었답니다. 존경하는 부인을 만나뵙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그런데 다친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길가에 나오시다니요. 연구에만 몰두하는 아주 냉철한 분인 줄로만 알았는데 마음도 따뜻한 분이셨군요."

 

[행복, 1999년 9월호,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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