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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친교의 해와 사회교리: 화해와 용서의 언어, 혐오와 배제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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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8-14 ㅣ No.1953

[친교의 해와 사회교리] 화해와 용서의 언어, 혐오와 배제의 언어

 

 

1. 피해자 폴란드, 가해자 독일에 먼저 손을 내밀다

 

폴란드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가장 큰 희생자였습니다. 숫자로만 보면 구소련의 희생자 2,900만 명보다 적지만 희생자 비율을 보면 폴란드 희생자 600여만 명은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달해 구소련의 희생자 비율을 넘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받은 피해도 컸습니다. 다섯 명의 주교와 이천 명에 이르는 사제들이 강제수용소 등에서 살해됐습니다. 전체 성직자의 약 25%가 희생된 것입니다.

 

게다가 독일은 종전 20년이 지났지만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초까지 구 서독은 오늘날의 이미지와 달리 과거에 대한 성찰과 반성보다는 스스로를 ‘히틀러의 첫 번째 희생자이자 마지막 희생자’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이들의 기억 속에 나치의 잔혹 행위나 홀로코스트는 히틀러를 위시한 소수의 범죄자들이 저지른 일로 뉘른베르크 재판을 통해 역사적 정의는 이미 완결된 것이었습니다. 구 동독은 구 동독대로 나치에 저항해서 싸운 반파시스트 투쟁의 적통을 이어받았기에 사과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었지요. 이렇듯 이웃나라 독일과 폴란드는 각각 사과하지 않는 가해자와 사과 받지 못한 피해자로서 팽팽한 대치 국면을 이어갔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새롭게 그어진 국경 문제도 갈등의 소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1965년 11월 18일, 폴란드 주교단이 독일 주교단에 아주 특별한 사목서한을 보냅니다. “그대에게 용서를 베풀며, 그대의 용서를 청합니다.” (Wir vergeben und bitten um Vergebung)이라는 문장으로 유명한 이 서한에서, 나치 독일의 가장 큰 희생자였던 폴란드 가톨릭교회는 독일의 형제자매들을 용서한다고 먼저 손을 내밀며 전쟁 중에 희생당한 독일인에 대해 용서를 청하는 뜻을 밝혔습니다. 가해자의 철저한 반성과 사과가 있어야 피해자가 용서를 베푼다는 세간의 상식을 뒤엎는 서한이었지요. 당연히 이 서한은 큰 반발을 일으켰습니다. 서한을 주도한 비쉰스키 추기경을 민족 배반자로 몰아붙이며 국외로 추방하라는 구호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과반수의 사제들도 이 사목서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폴란드가 먼저 용서의 손을 내민 이 서한은 역사 화해에 미온적이었던 전후 독일의 사과를 이끌어 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웁니다. 서로에게 들리지 않는 주장만 되풀이하던 상황에서 대화의 물꼬를 튼 이 서한 이후로 양국의 국교 정상화, 독일 통일, 폴란드의 유럽 연합 가입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대격변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서한은 뒤늦게 격찬을 받게 되지요. 국가 간에 풀기 어려웠던 증오와 대결의 문제를 그리스도교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게 한 이 사례는 2005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상호 용서, 2013년 폴란드 가톨릭교회와 정교회가 상호 용서와 화해를 촉구하는 공동의 화해 선언을 발표하는 데까지 그 외연을 넓혔습니다.

 

 

2. 가톨릭교회가 학살의 현장이 되다

 

신앙의 힘으로 화해와 용서를 이끌어 낸 폴란드와 독일과는 반대로 혐오와 대결의 상황을 방관하고 오히려 부추기다가 비극을 맞게 된 사례도 있습니다. 1994년 르완다 내전 이야기입니다.

 

르완다 학살은 1994년 4월부터 7월까지 겨우 100일 남짓한 기간 동안 극단주의 후투족이 투치족과 온건파 후투족 등 8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애초에 후투족과 투치족은 다를 것 없는 이웃이었습니다. 그런데 식민지 지배를 쉽게 하려는 이유로 서구 열강들이 이들을 후투족과 투치족으로 분류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투치족에게 특권을 몰아준 결과 두 부족 간에 갈등이 심해졌습니다. 축적된 증오와 분노를 임계점까지 끌어올린 것은 만연한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혐오 발언)였고, 교회 안에서 조차 공공연히 혐오 발언들이 나돌면서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렸습니다.

 

결국 1994년 후투족 출신의 대통령 암살을 기화로 촉발 된 학살극은 르완다와 이웃나라 부룬디를 휩쓸었습니다. ‘인종 청소’라 불리는 학살은 르완다 외에도 많이 일어났지만 르완다 학살의 잔인함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존경받던 선생님과 목사님이었던 이들이 학생과 신도들을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칼로 베는 참극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대량 학살이 빈번하게 일어난 곳은 종교 시설들이었습니다. 이웃들에게 쫓겨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피신한 성당과 교회에서 목숨을 잃기 부지기수였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인 후투족 아타나세 세롬바 신부의 경우는 참으로 어이없는 사례입니다. 목숨을 구하고자 본당에 도망쳐 온 투치족 2천여 명의 신자가 그에게 기도를 청했을 때 “투치족의 하느님이 아직 살아 계시다는 말인가?”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밖으로 나올 수 없게 성당 문을 잠근 후 불도저로 밀어 떼죽음을 당하게 합니다.

 

그 외에도 1994년 8월 15일 대략 오천 명이 살해당한 느타라마 성당은 오늘날 학살 기념관이 되었습니다. 2017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방관하고 참여까지 한 르완다 교회의 잘못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셨습니다.

 

 

3. 화해와 용서의 씨앗인 교회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잘 모를 먼 나라의 이야기까지 꺼낸 까닭은 신앙인의 언어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뜻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화가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요.” 지난 몇 년간 유난히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거친 말과 맥락 없는 공격적인 태도들을 자주 접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화해와 용서라는 그리스도교 본래의 어휘들을 잃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극단적인 언사로 다른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논리로 이겼다’며 의기양양해 하는 사람들도 봅니다. 특히 사회교리의 영역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그러나 혐오와 배척의 언어를 달고 사는 이의 마음이 자기가 뱉는 말 만큼이나 흉하게 일그러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화해와 용서의 언어가 아니라 혐오와 배척의 언어를 말할 때 영성생활 자체가 무너지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나와 다르다고 낙인찍고, 나와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래서 그를 공격하고 배제하는 것이 마치 정의의 실현이고 선을 추구하는 것인 양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 간에도 그렇습니다. 해방되고 일흔여덟 해가 지났고, 정전 70주년이 되었지만 아직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는 요원한 분위기입니다. 여전히 증오와 혐오의 발산을 정의의 실천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방류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렇습니다. 진지한 토론과 협력은 사라지고, 반일 증오심을 부추기며 눈을 부라리는 사람들과 대중 혐오감을 부추기는 이들이 벌이는 소모적인 논쟁이 그 자리를 대신할 때 따라오는 결과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질 것인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다운 언사를 갖추는 것이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월간빛, 2023년 8월호, 박용욱 미카엘 신부(대구대교구 사목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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